2013년 대선을 앞두고 겉으로는 평온해 보이지만, 동부 지역을 중심으로 하는 반정부 세력의 군사화로 타지키스탄은 여전히 매우 불안한 조짐을 보이고 있다. 1991년 독립 이후 1992-1997년 동안에 타지키스탄에서 내전이 일어났었다. 이때 구공산권 세력에 맞서 전쟁을 벌였던 반군 중에서는 이슬람 원리주의자들이 있었다. 이들은 전쟁 이후에도 타지키스탄의 특정 지역에서 매우 강력한 독자적인 군사 세력을 나름대로 유지하고 있었다. 대표적인 근거지가 타지키스탄 남동부의 고르노-바다흐샨(Gorno-Badakhshan)이다.

2013년 대선에서 4선을 노리고 있는 라흐몬 대통령은 이 지역에서 반정부 군사세력이 있다는 것에 매우 우려하고 있는 상황이다. 심지어는 라흐몬 대통령의 대선 가도에 가장 큰 걸림돌이 이슬람 원리주의자들 및 지역의 군벌세력이라는 평가가 있기도 하다. 2012년 여름에 고르노-바다흐샨 지역에서 벌어진 정부군과 지방의 군벌 세력과의 전투가 그 대표적인 사건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사건의 발단은 7월 21일에 국가보안위원회의 고르노-바다흐샨 지역 의장인 ‘압둘로 나자로프’ (Abdullo Nazarov)가 예리한 칼로 공격을 당하고 살해된 일이었다. 나자로프는 소비에트시기에 KGB 요원으로 근무한 경력이 있다. 그러나 그는 1990년 2월에 타지키스탄의 수도인 듀산베에서 벌어진 시민들의 평화적 시위 사건 때에 KGB가 시민들을 살해한 것을 두고 KGB를 강력히 비난했다. 그는 이 사건 이후로 KGB에서 해임되었다.

 1992년에 나자로프는 당시 반정부 군사 세력인 ‘개혁연합세력’ (UTO)의 일원으로 참여하고 반정부 군사 활동을 벌였다. 그러나 1992년 이후 내전이 격화되자 나자로프는 해외로 나갔으며, 그는 그 이후로 그 시기 동안에 어디에서 거주했는지를 전혀 밝히지 않았다. 1997년에 정부군과 반군이 평화협정을 체결한 이후에 나자로프는 타지키스탄으로 돌아왔다. 이후 그는 타지키스탄 북부 ‘수그드’ (Sughd) 지역의 보안위원회 수장으로 근무하였고 2010년에 고르노-바다흐샨 지역의 국가안보위원회 수장으로 일했다.



그가 사망한 곳은 고르노-바다흐샨의 주도(州都)인 코루그(Khorugh)에서 100km 떨어진 아프가니스탄 국경 근처로 밝혀졌는데, 이 국경지대를 책임지고 있는 군사책임자가 이 사건의 유력한 용의자로 떠올랐다. 즉 정부는 이 지역에서 자치적인 군사 세력을 소유하면서 국경 경비를 책임지고 있던 ‘톨리브 아욤베코프’ (Tolib Ayombekov)가 이 사건에 연루된 것으로 판단하고 수천 명의 정부군을 파견했다. 그러나 당사자는 이 사건에 관련되지 않았다고 매우 강하게 부인했다. 당시 톨리브 아욤베코브는 이 지역에서 반정부적 성향을 가지고 있던 다른 3명의 유력 인사들과 더불어 정부군에 맞서 전투를 벌였다. 이 전투 결과로 양측에서는 70명의 사망자가 발생했으며, 일반 시민 1명도 목숨을 잃었다.

그렇다면 이 지역에서 이러한 사건이 벌어진 원인은 어디에 있었을까? 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 지역에 대한 특수한 상황을 분석해야 한다. 고르노-바다흐샨은 매우 고립된 지역이며, 산악지대이다. 아프가니스탄, 키르기스스탄, 중국과 국경이 연결되어 있는 곳이며, 상당한 광물 자원이 있다. 그리고 이 지역은 불법적인 마약 유통 지대로 알려져 있는데, 특별히 아프가니스탄 산 헤로인이 유통된다. 인구는 약 250,000 명 정도이며, 그들 중 대부분은 파미르 민족 그룹에 속하고 쉬아 무슬림인데 ‘이스말리’ 파에 속한다. 대부분 타지키스탄 사람들은 순니 이슬람을 신봉하고 있다. 이 지역은 수도인 듀산베에서 수백 킬로미터 떨어져 있으며, 1991년 타지키스탄이 독립한 이후로는 거의 자치권을 누리고 있다. 이 지역의 거주자들은 상호간에 강력한 사회적 네트워크를 가지고 있다. 이 지역의 국경에는 2005년, 타지키스탄 정부의 희망에 따라 러시아군대가 철수하기 까지 러시아군대가 주둔했었다.

  2014년에 아프가니스탄에서 미군이 철수하게 되면, 이 지역은 매우 심각한 안보 위험 지대로 분류되고 있다. 타지키스탄 내전 시기에 고르노-바다흐샨은 동부 산악지역으로 반정부 세력이 매우 강했다. 내전의 마지막 시기에 이 지역의 반군 사령관들은 타지키스탄 정부와의 평화 협정을 받아들였다. 그러나 그 대신에 이들은 정부의 내각에도 참여할 수 있게 되었고, 상당할 정도의 자치권을 대신에 부여받았다.

당시 강력한 용의자인 아욤베코프는 이미 2006년에 경찰 청사, 그리고 2008년에도 일선 검사 사무실에 대한 군사 공격을 주도했다는 이유로 기소된 바 있다. 살해 사건이 일어났을 때 그는 아프가니스탄 국경 경비대 부책임자였다. 타지키스탄 정부는 아욤베코프를 비롯하여 이 지역에서 군사 사조직을 거느리고 있던 ‘마마드보키르 마마드보키로프, 이몸나자르 이몸나자로프, 요드고르 마마다슬라모프 등 4인을 반정부 세력으로 강력히 규정하였다.

  정부는 이들 4인을 마약을 밀수하는 범죄도 저지르고 있는 것으로 보고 이들을 체포하고자 했다. 이들은 과거 타지키스탄의 내전에서 반군의 군사 사령관으로 전쟁에 참여했던 인물들이다. 이런 와중에서 이몸나자르 이몸나자로프가 자신의 집에서 자동화기로 무장한 미상의 사람들에 의해 살해당하는 사건이 발생하게 되었는데, 이에 대해 코루그의 시민들이 매우 강력히 반발하였다. 8월 중순에 그의 시체가 도시 광장으로 운구 되었을 때에 시민들은 집단적으로 돌을 투척하고 시청의 창문을 부수는 등의 시위를 전개했다. 이에 맞서 경찰들은 공중으로 총을 쏘면서 발포 위협을 가했다. 시민들은 정부가 이 지역에서의 안전을 보장해야 한다고 요구하였다. 


                                   (살해당한 이몸나자로프)

  현재 금년 가을로 예정되어 있는 대선에서 현 라흐몬 대통령은 거의 재선이 확실하지만, 동부지역을 중심으로 하는 군벌세력들에 대한 통제력을 가져야 하는 과제가 놓여졌다. 과연 라흐몬 대통령은 이 지역에 대한 통제권을 어떤 방식으로 이루어나갈것인지가 향후 타지키스탄 내정의 관건으로 보인다.

  중앙정부의 입장에서 본다면, 이 지역 사람들은 정부나 군사 사조직들의 양쪽으로부터 위협을 받았을 수 있다. 그러나 이 지역의 유력자들은 공식 정부의 행정관들, 법관들, 경찰 관리들에 맞서 시민들의 보호자로 간주되었으며, 지역 실력자들의 행동에 동의하는 행동을 취해왔다. 즉 국가 권력은 이 지역을 완벽히 통제하지 못했다. 2006년에 이들 4인 중 2인은 경찰서를 공격하였으며, 이들을 구금하고자 시도했던 경찰들을 무장해제 시켰다. 그리고 2008년에는 세금을 회피하였다는 이유로 아욤베코프를 조사하던 검사들을 이들 군사 사조직이 공격하는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당시에도 이 지역 사람들은 정부가 지나치게 이 지역을 간섭한다고 시위를 벌였다. 이들을 시위하도록 이끈 주역들이 바로 이 4명의 지역 실력자들이었다. 2011년에는 시위대들이 공공기관인 시 법정을 공격하여 황폐화시키는 일도 벌어졌다. 2012년의 일련의 사태로 일부 실력자들은 아프가니스탄으로 피신했다는 설이 있다. 

(본 글은 2013년 1월 18일자 Central ASia Forum에 게재된 글임을 밝힙니다)
현재는 한양대학교 아태지역연구센터 HK 교수로 복직중.
현재 러시아와 중앙아시아, 유라시아 관련 연구에 전념하고 20편의 논문을 학술지에 발표하고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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