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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에 무슨일이 일어나고 있는것인가? 혁명인가? 자유의 외침인가?

<이란에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인가? 혁명인가? 자유의 외침인가?>

  1989년 동유럽에서 시작된 민주화 물결은 소련연방의 해체라는 대사건으로 진화되었다. 이후 국제 질서는 새롭게 재편되었다. 헌팅턴은 재편성된 국제질서의 핵심으로 ‘문명의 충돌’ 이라는 그의 기념비적인 저서를 통해 국제 역학 관계는 동일한 문명권을 중심으로 재편성될 것이며, 서구 사회와 이슬람 사회의 문명의 충돌을 예상하였다.  생전에 그의 식견은 다양한 학자들에 의해 비판받았지만, 전세계적으로 매우 강력한 영향력을 끼쳤다.

  그러나 최근의 시위는 이슬람 사회 내부의 정치적 변화에 대해 보여주고 있다. 이란의 국민들이 서구화에 관심을 보이면서 근본적인 혁명을 외치고 있는 것인가? 혹은 단순한 자유에대한 열망을 보여주고 있는지는 많은 시간이 경과되어야 알 수 있을 것이다.   

  대통령 선거 이후 이란은 엄청난 변화의 와중에 있다. 물론, 이러한 대 변혁의 분위기는 1979년 이란의 호메이니 회교 혁명과는 비견될 수 없을는지도 모른다. 그 때는 체제 전복의 혁명이 있었다. 왕조가 종식되고 이슬람 신정 체제가 등장했다.

  대통령 선거 이후 이란 국민들과 반정부 인사들은 “나의 투표용지가 어디에 있는가?” 라는 슬로건을 외치고 있다. 이는 민주주의에 대한 열망이 이란 사회에 증폭하고 있다는 논리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CNN은 지난주 “지금 이란에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인가?” 라는 제목으로 이란의 테헤란에서 일어나고 있는 반정부 시위에 대해 연일 보도하였다.

 최근의 국제 사회에 대한 다양한 사건을 들여다보면, 어떤 국가이든지 정치적 반대파들의 투쟁이 존재하는데, 국민들의 정치적 의지가 어느 정도의 수준에 이르렀는지에 따라 그 정치적 저항의 강약이 전개되어진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슬람 국가를 상정해본다면, 가장 강력한 신정 체제 국가는 사우디아라비아와 이란을 들 수 있다. 사우디아라비아는 이미 18세기에 와하비주의라는 신정국가 이념을 아랍권 국가에서 최초로 도입하면서, 샤리아라는 이슬람법을 엄격히 적용하는 국가 통치 체제를 보여주고 있다. 무슬림들의 메카 순례의 핵심 국가는 결국은 사우디아라비아인 것이다.

 이란은 1970년대 말에 회교혁명으로 이슬람 최고 지도자가 국가의 최고 통치자로 실질적으로 군림하고 있을 정도로 이슬람 통치 체제가 정착된 국가이다.

 이란의 정치적 상황은 1979년의 이란 회교 혁명의 새로운 버전의 형태로 해석되기도 한다. 즉 서구화와 자유를 외치고 있는 이란 국민의 정서는 왕조 국가 “샤”의 통치를 종식시킨 1979년의 혁명적 저항 정신의 확대로 해석할 수 있는 여러 가지 가능성들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이란의 향후 국내 정세는 다음의 3가지 중에서 하나가 될 가능성이 있다.

첫째, 현 대통령인 아마디네자드와 정치적 반대파인 무사비 전 총리 간에 근본적인 차이점이 없다고 하더라도, “내 투표용지가 어디로 갔는가?” 와 같은 정치적 외침으로 중요하고, 긍정적이고 바람직한 정치적 변화가 외형적으로 나타날 가능성이 존재한다는 것. 기본적으로 시위에 참여한 이란 국민들은 일반 사회생활에 있어서 회교 성직자들의 지나친 간섭에 반대하며, 이란이 다양하고 열린사회를 지향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둘째, 이란의 권력 지도자들은 마치 1989년 6월 중국의 천안문 사건처럼 유혈 진압을 할 가능성을 열어놓고 있다는 것.
 
셋째, 이란 국민들이 정치적 의지를 가지고 현 정부에 지속적으로 저항을 하게 된다면, 이란의 권력 체제는 1970년대의 ‘샤’의 체제처럼 기본적으로 군부의 힘으로 국민들을 압박하고 봉쇄할 것이라는 가능성인데, 만약에 이란 국민들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1970년대처럼 시위, 파괴행위, 파업 등을 전개한다면 이란의 통치 지도자들이 권력에서 물러날 가능성이 있다는 것 등이다.

 만약 역사를 통하여 일정한 교훈을 얻는다고 한다면, 1989년의 천안문 사건과 비슷한 기간에 소련연방에서 일어난 사건을 비교하는 것도 좋을 듯하다.

 중국 공산당은 1989년의 천안문 사건을 강력히 유혈 진압함으로써 중국 공산당 체제를 유지할 수 있었다. 그러나 비슷한 기간인 1989년 당시 소연방에 속하던 발트해 3국인 리투아니아, 라트비아, 에스토니아의 수도인 빌니우스, 리가, 탈린에 이르는 총 길이 620km에 걸쳐 100만 명 이상의 발트 3국의 국민들이 참여한 ‘인간 사슬’ 시위에 대해 소연방 정부는 이를 막지 못하였다. 그리고 그루지야의 수도 트빌리시에서도 그루지야 국민들은 소련 연방에 반대하는 강력한 시위를 전개하였다. 당시 소련 서기장인 고르바초프는 발트해와 코카서스에서 벌어진 국민들의 시위에 속수무책이었다. 결국 소련공산당은 해체되었고, 이후 소연방은 붕괴되었던 것이다.

 중국과 소련에서 있었던 이러한 시위를 평면적으로 이란에 대입할 수 없지만, 이란 지도자들이 이란 국민들의 시위에 어떤 대응을 할 것이며, 향후 이란의 정치 체제가 어떤 방식으로 발전해 나갈 것인지에 따라서 이슬람권의 미래의 정치 체제의 일단의 방향성을 가늠할 수 있을 것이다.  

 

현재는 한양대학교 아태지역연구센터 HK 교수로 복직중.
현재 러시아와 중앙아시아, 유라시아 관련 연구에 전념하고 20편의 논문을 학술지에 발표하고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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