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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에서 왜 인문학에 열광하는가?

  최근 몇년 전부터 기업교육에서도 인문학에 대한 관심이 많이 높아지고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인문학이라고 하면 철학, 심리학, 문학, 미학, 역사학 등을 생각하게 되는데, 이는 인문학의 정의가 인간의 사상 및 문화를 대상으로 하기 때문에 학문의 목적과 가치를 인간에 두는 모든 학문영역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또한 근대적 합리주의와 객관주의에 기초한 자연과학과 달리 인문학은 다양한 해석이 가능한 해석학적 학문영역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인문학을 기업 내에서 직원들을 대상으로 교육하는 이유는 조직 내 의사결정자나 HRD담당자에 따라 다양하며 실제로 인문학을 학습하는 사람들 또한 다양한 목적성을 가질 것입니다.

  그렇다면 인문학이 조직 내 HRD측면에서는 어떤 중요한 의미를 갖는 것일까요? 지금까지의 교육훈련의 교과목 구성에서 뭔가 문제가 있었다는 것일까요? 그것은 물론 아닐 것입니다. 우리가 1900년대 초에 생겨난 테일러의 과학적 관리론의 한계를 얘기하면서도 아직도 실제 경영에서는 그러한 관점과 철학이 지배하는 경우가 많은 것처럼 말입니다. 대표적인 것이 직무분석이죠. 그렇다면 우리가 지금 인문학에 열광하는 것은 인문학이 가져다 주는 또 다른 관점이나 철학 때문이라고 보는 것이 더 맞을 것입니다. HRD를 기업성과와 혁신과 관련된 구성원들의 다양한 학습활동이라고 본다면 우리는 인문학을 통해 이전과는 다른 학습관점과 철학을 가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인문학을 통해 우리는 어떠한 학습을 할 수 있을까요? 즉, 학습을 통해 어떤 지식을 습득할 것인가 하는 측면에서 인문학은 다양한 관점에서 접근될 수 있습니다. 그 관점 중의 한가지로 저는 인문학을 조직의 문제해결을 위한 지식획득 관점에서 바라보고자 합니다. 예를 들어 우리는 어떤 일이 잘못되면 먼저 그 원인을 찾게 됩니다. 그리고 그 원인요인을 처리하여 다른 결과를 기대합니다. 이것이 일반적인 합리성(근대과학이 추구하는 객관주의적 합리성)을 가지고 생각하는 방식입니다. 조직에서는 대부분 이런 식으로 문제를 해결하곤 합니다. 즉 문제가 발생한 것은 그 문제를 발생시킨 핵심요인들 때문이고 그 핵심요인들을 처리하면 문제는 해결될 수 있다는 과학적이고 체계적인 접근방법입니다.

  하지만 그렇게만 하면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일까요? 이렇게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원인 뒤에는 반드시 원인을 낳은 이론이 있고, 이 이론 뒤에는 그러한 이론의 전제가 되는 관점과 철학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보죠. 자동차로 출퇴근을 하는 어떤 사람이 퇴근하는 길이 너무 막힙니다. 이 사람은 막힌 길을 피해 우회도로를 선택하지만 우회도로마저 막힙니다. 명절 전이라 모든 길이 다 막혔던 것이죠. 여기서 원인은 길이 막힌 것이고 결과는 퇴근시간이 늦어진 것입니다. 원인을 해소하기 위해 막히지 않는 길을 찾지만 생각대로 되지는 않습니다. 이 때는 명절 시즌에 차를 가져오지 않고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것이 맞습니다. 하지만 이 사람은 차가 막히기는 하지만 그래도 차를 가지고 가는게 다른 편익을 주므로 이를 더 선호했을 수 있는 것이죠. 이러한 것이 관점이고 철학일 수 있습니다.

  물론 앞의 예가 너무 단순하여 원인과 결과요인 및 그 관계를 다르게 볼 수도 있겠지만 어쨌든, 근대과학의 합리론에 입각하여 원인과 결과의 선형적 관계 속에서 답을 찾는 것은 한계가 있을 수 있습니다. 그 이유는 원인-결과의 미시적 접근으로는 현상을 바꾸기 어렵기 때문이기도 하고, 또는 한가지 원인만으로 결과가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특정 원인을 찾아 결과를 바꾼다는 것은 한계가 있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원인을 생산해낸 이론을 다시 수립해서 적용하더라도 다시 환경은 변화합니다. 그것은 시간의 흐름에 따른 변화가 아니라 그 이론이 적용되는 순간 세계가 변하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주식시장을 예측하고 이것을 많은 사람들이 공유하게 되면 그 순간 다시 주식시장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갑니다. 이것은 행동경제학에서 얘기하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경제도 완벽한 합리성이나 수학적 법칙에 의해 움직이지 않는다는 것이죠.

  그렇다면 근본적인 문제해결을 위해서는 좀 더 근간에 있는 것을 바꾸어야 하는데, 그래서 철학과 같은 인문학이 필요한 것입니다. 특히 사회과학적 현상을 다루는 경우 근본적인 해결을 위해서는 철학적 패러다임이 바뀌어야 가능한 것들이 많습니다. 그것은 모든 작은 시스템들이 서로 연계되어 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자연과학에서는 주체와 객체가 분명하게 인식되지만 인간사회에서는 주체가 객체가 되기도 하고 객체가 주체가 되기도 합니다. 게다가 20세기 이후 자연과학에서도 철학적 패러다임이 필요하게 된 경우도 있습니다. 양자역학이 그런 예이죠. 양자역학에서는 물질의 위치를 어떤 특정한 정답을 가지고 접근하기 어렵다고 합니다. 그럴 수 있다는 개연성의 확률로 접근되는 것이죠.

  다시 제목으로 돌아와서, 이제 근대의 합리론적인 접근만으로는 해결될 수 없는 일들이 우리 주위에는 너무 많아졌습니다. 우리는 이제 근본적인 부분으로 들어가야 할 필요성이 생긴 것이죠. 특정한 목적을 가지는 기업조직의 구성원으로서 인문학을 공부해야 하는 것은 우리가 조직 내에서 일어나는 현상과 문제들에 대한 근본적인 해결이 필요해서일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세상을 바라보고 문제에 접근하는 철학이 바뀌어야 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그리고 그러한 철학은 객관적 합리성을 추구하는 과학이 아니라 오히려 본질을 추구하는 인문학이 제공할 수 있습니다. 특히 복잡계로 여겨지는 요즘의 세상에서는 더더욱 데카르트나 뉴턴식의 과학적 합리론은 더 이상 힘을 발휘하기 어려울 수 있습니다. HRD의 관점에서 생각할 때 인문학은 바로 이러한 목적성을 가지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현재 HRD컨설턴트로 활동 중이며, 대학에서 심리학, 대학원에서 HRD를 전공하였으며, 쌍용그룹 중앙연수원, 쌍용정보통신㈜잠실교육센터장, 삼성SNS㈜ 인력개발파트장 등을 거쳐 현재는 HRD 전문컨설팅기관인 ㈜하나기업컨설팅의 이사로 재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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