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참으로 오랜만이었다.어느덧 1년이 훌쩍 넘었다.추석 연휴에 수십 년 전통을 자랑하는 시장 뒷골목 순댓국집에서 자리를 잡고 앉았다.평소에 두툼했던 후배 얼굴이 왠지 꺼칠하고 말라 보였다.허름한 식당에서 솔솔 풍기는 냄새도 맡기 전에 후배 녀석은 퉁명스럽게 말을 던진다.“야, 역시 고향이 좋구나, 공부도 때가 있는 법이에요, 나 같은 ‘흙수저’ 주제에 덤비지 말았어야 했었는데, 다시는 안할렵니다.쯔즛...” 누가 질문이라도 한냥 툴툴거리며 답을 내놓는다.순식간에 머릿고기와 순대가 적절하게 섞인 보글보글 끓인 순댓국이 등장했다.“사장님, 박사무관이 해외유학 마치고 얼마 전에 왔어요” 나 역시 한마디 거들었다.그러자 평소에 욕이 걸쭉하기로 유명한 여주인이 모듬 한 접시를 서비스로 내놓는다.“그려, 고생했네.뒤늦게 공부하느라 힘들었겄네.그래서 도통 안 보였구먼.어여, 한잔 혀” 여기가 순댓국집인지 대폿집인지 잘 기억이 안날만큼 밤이 어둑어둑할 때까지 마셔댔다.알고보면 옆 테이블에서 들려오는 자식들에 대한 한숨소리가 큰 탓일지도 모른다.

 

후배는 유학가기 전에 모 국책연구원 석사과정에 입학했다.국제관계에 대한 전문지식과 세계경제 환경변화의 대응능력을 갖춘 고급 전문인력을 양성하는 프로그램이다.그 규모와 수준면에서 국내 최고의 교육과정이다.기간은 총 2년이며 1년차에는 국책연구원에서 교육을 받고 2년차에는 해외 대학에서 교육을 받는다.국내 교육비는 전액 장학금으로 지원한다.따라서 1년동안 학비문제는 크게 걱정은 안됐다.문제는 당장 생활비였다.이참에 가족을 모두 데리고 간 것이 화근이었다.미국 경기가 살아난다고 들었지만 워낙 물가도 비싼데다 특히 비싼 의료비에 발을 동동 굴려야만 했단다.동기생 가운데 어린 자녀가 갑작스럽게 맹장이 터지는 바람에 응급실에서 수술을 해야만 했다.결국 수 천만원을 지불해야 하는 아찔한 순간이었다.최고령으로 영어강의를 듣고 난뒤 리포트 쓰랴 혹시 모를 가족들 건강상태까지 챙기랴 혼쭐났난다.

 

1년동안 중고차량 구입비를 비롯해 생활비 명목으로 5000만원이 지출됐다.우체국에 모아뒀던 알토란 같은 저축통장을 해약해야만 했다.그동안 재테크는 아예 엄두도 못냈다.연로하신 부모님을 모시느라 수년 전에 마련한 48평 아파트 대출금이 아직도 남아 있다.게다가 뇌출혈로 쓰러진 아버지 때문에 매달 병원비도 만만치 않은 상황이다.그래서 박사무관은 한창 젊었을 때 벤처기업으로 이직해 경험을 쌓은 뒤 창업하고 싶은 생각이 간절했다.하지만 유학을 다녀온 뒤로는 생각이 달라졌다.후배는 “이번 공부를 통해서 세상을 보는 관점을 키운데다 좋은 네트워크(인맥)을 형성한 것이 큰 수확”이라며 “남은 공직생활을 통해 빚 없이 잘 마무리하고 싶다”고 솔직하게 털어 놓는다.

 

# 지금은 저성장 시대에 살고 있다.갈수록 돈 벌기가 힘들다.일자리의 양도 줄었지만 수준도 과거보단 형편없는 것이 현실이다.워낙 가진 돈이 없다보니 어쭙잖게 일을 벌이느니 육체가 멀쩡하다면 차라리 몸으로 때우는 것이 나은 편이다.사정이 이렇다 보니까 지금 40대들의 재테크는 꿈도 꾸지 못한다면서 불만 투성이다.이유는 간단하다.한마디로 돈이 없어서다.당장 갚아야 하는 부채에 불어나는 생활비 마련까지 늘상 허덕이기 때문이다.설사 돈이 생긴다고 하더라도 돈을 굴릴 수 있는 재테크에 손을 뻗기는 무척 어렵다.가장 큰 항목은 뭐라고 해도 생활비를 비롯해 교육비와 부채다.가정상황이 절박한데 자기계발이나 문화생활은 물론 해외여행은 생각할 여유조차 없다.당장 생활을 꾸려 나가기도 힘든데 그 나머지는 사치로 느껴진다.매달 자동이체되는 월급만 봐도 걱정만 앞선다.정기적으로 들어오는 급여는 고정적인데 반해 나가는 지출은 날이 갈수록 늘어나고 있으니 한숨만 절로 나온다.적지만 저축을 해서라도 마련한 종자돈으로 주식과 부동산,보험,펀드도 투자해 보고 싶지만 당장 돈이 없다.마땅한 투자처가 없다든지 아니면 경기가 불안하다는 이유로 투자를 꺼릴 입장이라도 된다면 좋으련만 이마저 녹록치가 않다.

 

직장에선 중간 관리자로 열심히 일하고 가정에서 학부모인 40대들이 왜 이렇게 불안할까.지난 1997년 외환위기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거치면서 은퇴연령이 점점 낮아졌다.게다가 최근 조선,해운업종을 비롯해 기업 구조조정 소식이 신문지면을 온통 장식한다.내일이라도 퇴출명단에 포함되질 않을까 걱정이 이만저만 아니다.그렇다고 당당하게 수억 원을 빌려 자영업 대열에 들어간다고 해도 결코 성공확률은 갈수록 낮아지고 있다.왜냐하면 저성장에 따른 움쳐려든 소비심리 탓에 경기가 신통치 않기 때문이다.그렇다고 입에 풀칠이라도 할려면 마냥 놀 수도 없는 노릇이다.이런저런 고민 탓에 밤잠 설치기 일쑤지만 불안감만 늘어날 뿐이다.월소득의 대부분을 생활비와 자녀교육비로 지출되는 상황에서 노후준비는 아예 생각도 못하는 지경이다.

 

직장에서 그렇게 열심히 일을 하는데 왜 돈이 없냐고 물어볼 수도 있다.하지만 답은 뻔하다.돈을 버는 족족 나가는 돈이 더 많기 때문이다.오히려 빚이 더 늘지 않는다면 감사할 뿐이다.그렇다고 언제까지 일할 수 있을지 늘 불안에 떨 수도 없는 노릇이다.머리 속으로 계산기만 두들겨서는 도무지 해결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칼만 있을 때는 칼집에서 칼을 꺼내야 한다는 생각보다 먼저 휘두르자는 생각이 앞선다.실제로 은퇴 희망연령과 은퇴연령 시기와는 격차가 매우 크다.따라서 직장에서 언제 나오더라도 20~30년을 먹고 사는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안된다.이 대목에서 대책이 시급한 실정이다.
 

# 내가 늘 강조하지만 우선 자신의 몸값을 높이는 것이다.바쁜 직장 생활이지만 틈틈이 자기계발에 힘써야 한다.그래야 회사를 나와서 자신만의 핵심역량을 통한 평생 직업을 선택할 수 있다.눈높이를 낮춘 직장도 좋겠지만 전문가로 거듭나서 투잡(2job), 쓰리잡(3job)도 거부하지 않아야 생존할 수 있다.둘째는 일할 수 있는 시기를 최대한 연장해야 한다.지금은 평균수명 100세 시대다.노인의 나이 기준도 70세로 늘리려는 사회적 분위기다.자신의 건강이 허락하는 한 최대한 일할 수 있는 시기를 늘릴 필요가 있다.이제는 어정쩡한 시세차익보다는 안정적인 매월 현금흐름이 중요하다.따라서 적은 급여지만 매월 소비를 줄여서 생활하는 것이 현명한 법이다.

 

결국 평소에 자기 몸값을 높이려는 꾸준한 프로의식과 최대한 현역으로 일하려는 자세가 이런 불안감을 해소하는 해결책이다.지금 당장 생활이 팍팍하고 재테크는 아예 꿈도 꾸질 못하는데 어떻게 10년, 20년 뒤를 예상하겠느냐고 반문할 지도 모른다.하지만 이런 불안감을 떨쳐 내는냐 여부는 결국 자신의 몫에 달려 있다.제아무리 불평해봤자 자신에게 이롭지 못하다면 주어진 오늘에 감사하고 작은 준비라도 하는 것이 최고의 상책이다.

 
윤국열 한경닷컴 칼럼니스트
•키움에셋플래너 경제교육 본부장
•경실련 상임집행위원 / 대전참여연대 집행위원
•법무보호복지공단 사회성향상 교육위원
•대전시 시민행복위원회 위원
•ING life 부지점장 / Allianz Life 지점장 / TNV advisor 본부장
•대전대학교 경제전문가과정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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