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Pixabay



 

# 사회전체가 온통 돈 타령이다.대체 그놈의 돈이 뭐길래 돈돈돈 아우성이다.사람나고 돈났지 돈나고 사람난 것은 절대 아닌데 말이다.하물며, 돈이 인생의 주인이라는 사실을 주말 저녁 밥상에서 거침없이 토해 낼 줄은 전혀 몰랐다.사춘기에 접어든 중학생 아들 녀석이 대뜸 내게 연봉이 얼마나 되냐며 공개해 보란다.사실 그동안 물어볼 적마다 속시원히 대답해 주지 않은 터였다.이번엔 절대로 기회를 놓치지 않겠다는 작정이었는지 구체적으로 숫자까지 거들먹 거린다.

 

얼마 전 세종시로 이사간 유치원시절 단짝 친구 아버지는 농협과장인데 연봉이 1억5000만원 이란다.정작 아들 녀석은 이 엄청난 금액을 제대로 알고나 하는 소리인지 무척 당황스러웠다.한참동안 이야기를 듣고 있다보니 갑자기 이런 생각마저 들었다.아들 친구 아버지는 자식에게 본인의 구체적인 연봉까지 정직하게 공개한 아주 멋진 아빠였다.늘 그래왔지만 이 대목에선 지지리 궁상을 떠는 나는 이번에도 모호하게 대충 넘어갈 작정이었다.

 

아니, 무슨 농협과장 연봉이 1억5000만원이 되는지도 사실 아리송했다.그렇다고 1억원이 얼마나 큰 돈인지 전혀 알 수 없는 아들 놈한테 따져보고 싶었지만 왠지 쪼잔해 보일 것 같아 대답을 아예 포기했다.맞벌이 부부 연봉을 모두 합치면 몰라도 얼마나 성과급을 많이 받길래 국회의원 세비보다도 많이 받는다는 말인가.아무튼 입을 굳게 다문채 꾸역꾸역 죄없는 미역줄기만 후루룩 목으로 넘긴채 국물로 입가심한다.그렇다고 나는 돈이 많다고 평소에 허세를 부리는 타입은 아니다.더구나 대폿값이 없어서 매일 아침 손 벌려 용돈 좀 더 달라고 궁상떠는 스타일은 더더욱 아니다.적당히 생활비 줄 것 주고 대충 이 정도다 싶을 정도로 여유자금을 가지고 다니면서 경제활동을 은밀히 해 나간다.일일이 그걸 어디에 어떻게 그리고 왜 그렇게 쓰는가에 대해서 일일이 공개하지는 않는다.그래서 가족에게도 속시원히 대답해 주지도 않는 편이다.

 

어쩌다 술에 엄청 취한 채 집에 들어 올때는 상황이 180도 달라진다. 괜시리 자녀들 손에 용돈 몇푼을 쥐어주고는 경제교육 한다는 핑계로 지갑을 ‘까 보이는’ 경우가 종종 발생하곤 한다.그때만은 술 기운을 빌어서 돈에 대해서는 상당히 정직해지는 시간이다.하지만 그전까지는 돈과 관련된 이야기에 대해서는 시시콜콜 털어놓는 형편은 못된다.남자들은 술자리에서 취기가 오르면 성(性)과 관련한 자유롭게 이야기는 털어놓는 반면에 돈과 관련해서는 구체적으로 밝히기를 꺼린다.왜냐하면 철저하게 개인적인 문제로 치부되기 때문이다.그래서 어쩌면 섹스보다 더 은밀하다고 할 수 있을 지도 모른다.

 

아무튼 그날 저녁 밥상머리에서는 결국 나의 금전적인 소유를 절대로 들키고 싶지 않은 터라 그날 역시 입을 굳게 다물어야만 했다.거침없이 고액연봉을 밝히는 아들 녀석 친구 아버지를 속으로 원망하면서 쓸데없이 많은 미역을 꾸역꾸역 삼켜야만 했다.며칠 전 유성 장날에서 사온 혈액순환에 좋다는 미역을 자식에게 걷어 먹이려고 할 심산이었다. 결국 이날 만큼은 느닷없는 ‘연봉’이라는 괴물에 오히려 내가 먹혀 버린 날이 되고 말았다.

 

출처 : Pixabay



# 가장(家長)의 큰 목표는 누가 뭐라해도 병아리 같은 자녀들에게 밥 한술, 반찬 하나 더 걷어 먹이는 것이다.그래서 오늘도 거친 현장에서 땀흘려 가며 둔해 빠진 몸뚱이를 놀려댄다.물론 금수저 계층을 제외하고 대부분의 일 개미들은 거친 숨을 쉬어가며 피똥을 싸가며 밥벌이에 필사적으로 나선다.새벽부터 늦은 밤까지 일하다 보면 어느새 봄꽃이 피고 졌는지 가을 단풍이 언제 물들었는지 아니면 아파트 앞집에 누가 이사 왔는지 도무지 알 턱이 없다.그저 먹고 사는 문제에 늘 허덕이다 보면 소중한 가치를 놓치고 살기 일쑤다.요즘처럼 맞벌이가 흔한 세상에서 특히 아줌마는 대단히 강한 사람이다.남들이 꺼려하는 궂은 일을 도맡아 하는 것은 물론이고 인상 찌푸리는 일도 지긋히 참아내고 남들의 시선따위는 아랑곳 하지 않는다.금쪽같은 자식들 배 곯지 않으려고 불편하고 거친 일마저 결코 회피하는 법이 없다.

 

이 대목에서 위대한 부모의 사랑이 싹 틔워진다는 사실을 어린 자식들이 알아주면 다행이련만 그렇다고 바라지도 않는다.그저 자식들 입에 밥 한 덩어리 집어 넣기위해 이른 새벽부터 달리더니 늦은 시각까지 일터에서 매달린다.참으로 숭고한 행위가 아닐 수 없다.몸도 마음도 애오라지 밥벌이에 집중하다 보니 언제 끊어질지 모르는 자신의 일을 천직으로 삼아보지만 그마저도 신통치가 않다.왜 저항하지 못했냐고 따지는 자가 있다면 사회현실을 몰라도 한참 모른다.흙수저로 살아가다 보면 밥 생각이 가장 최우선이다.아니 지상과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특히 가난과 굶주림에 시달려 본 경험이 있다면 누구나 이해가 될 듯싶다.이 지겹고 고통스런 일상에서 한번쯤 탈출을 꿈꿔보지 않은 이가 없다면 그건 새빨간 거짓말이다.

 

소설 <칼의 노래>로 유명해진 소설가 김훈은 <라면을 끓이며>라는 책에서 “보통 사람들의 삶을 먹고 살기위해 지옥을 헤매고 있는 삶”이라고 무섭게 말한다.그는 “밥이야말로 삶 자체이고 인륜의 기초이며 사유의 토대”라고 힘주어 언급한다.또한 “생의 외경은 밥벌이를 통해 실현된다”면서 “밥은 유교나 노장사상이나 유물론이나 유심론 같은 철학보다 심오하다”고 강조한다.시인 고은은 이렇게 노래한다.두 사람이 마주 앉아 밥을 먹는다∣ 흔하디 흔한 것∣ 동시에 최고의 것∣ 가로되 사랑이어라.이 시에서 보이는 것처럼 사랑이 고상하고나 거창한 것 같지만 사실은 그렇치 않다는 것을 꼬집는다.마주 앉아 밥을 먹는 일보다 더 큰 사랑은 없다는 것이다.어쩌면 가장 고귀하고 숭고한 것은 가장 평범한 밥을 먹는 것이란다.당연히 박수쳐가며 맞는 말이다.

 

# 어쩌면 돈 문제는 간단한 법이다.자기가 가진 돈의 범위 안에서 생활하면 된다.만약에 사고 싶은 물건이 있는데 가진 돈이 없다면 빨리 포기하면 자동적으로 해결된다.가진 것만으로 살면 그뿐이다.그러니까 없으면 없는 대로 만족하면서 살아가면 된다.물론 현실에서 실제로 적용하기란 결코 쉽지는 않겠지만 자기분수에 맞게 살면 충분한 법이다.물론 소비와 소유에 대한 욕망이 목까치 쳐올라 자신을 괴롭히겠지만 이 역시 시간이 지나면 저절로 풀린다.자급자족하면서 절약하고 필요한 것은 생산하며 사는 삶도 좋을 듯 싶다.이번에 강조하고 싶은 대목이 있다면 몸을 잘 써야 한다는 것이다.그래야 중복적이고 불필요한 소비에서 탈출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한 가정에서도 잘 모르는 줄줄 새는 돈들이 생각보다 의외로 많다.그래서 미확인된 자금을 귀신같이 찾아내서 잉여자금으로 만들어 내야 한다.악착같이 이 돈으로 생활비를 보태고 저축까지 할 수 있다면 금상첨화다.엄청난 시세차익을 노리고 주식이나 부동산 투기는 항상 위험을 함께 동반한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된다.원금을 두배 세배 불리겠다는 달콤한 생각에 빠졌다가는 결국 언젠가는 그나마 원금마저 잃고 만다.그래서 재주 부리는 여우보다는 미련해보지만 우직한 곰이나 소처럼 뚜벅뚜벅 살면서 돈을 모으지 않으면 안된다.결국 돈을 잘 쓰기 위해서는 왠만하면 몸으로 때우라는 것이다.그것이 진짜로 돈 문제를 해결하는 지름길이다.그런데 몸쓰기가 귀찮고 시간이 없다는 핑계로 만만한 지갑부터 열면 오늘은 당장 편하겠지만 내일부턴 몹시 괴롭다.
 

TV를 켜면 경치좋은 전원주택, 외제차량, 비싼 음식, 고가 의류, 값비싼 보석등이 욕망을 자극한다.물론 자신들이 마음껏 벌어서 소비하고 소유하려는데 무슨 시비냐고 묻는다면 할 말은 없다.왜냐하면 다양성이 존재하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역행하는 일이기 때문이다.물론 나의 억지일수도 있겠지만 금수저,다이아몬드 수저들도 가끔은 신성스런 밥에서 아주 작은 가치라도 발견할 수 있다면 좋은데 말이다.어쨋든, 오늘도 밥벌이에서 결코 벗어나질 못하는 나 같은 처지에 놓인 일 개미들에게 당부하고 싶다. 가끔은 밥 먹는 짐승에서 벗어날 용기를 가져보라고.
윤국열 한경닷컴 칼럼니스트
•키움에셋플래너 경제교육 본부장
•경실련 상임집행위원 / 대전참여연대 집행위원
•법무보호복지공단 사회성향상 교육위원
•대전시 시민행복위원회 위원
•ING life 부지점장 / Allianz Life 지점장 / TNV advisor 본부장
•대전대학교 경제전문가과정 교수

ⓒ 한경닷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