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치 올림픽은 끝났다. 하지만 우리에겐 브라질 월드컵이 있다. 세계 각국이 경제적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 자국에 이기적인 정책들을 내세우고, 애국심을 자극하는 마케팅도 더 확대되는 와중에 열리는 국가 간 대항전인 월드컵은 더더욱 애국심 마케팅을 촉발시키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국내 사정을 보면 적어도 소비 영역에서 애국심은 현저히 줄어들었다. 나이 든 세대는 외제 담배 피우는 것만으로도 매국노라 불리던 시절을 생생히 기억한다. 지금도 노인들 중에선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들도 많다. 수입 명품이나 수입차에 대해선 더더욱 강경하다. 국산을 써야 우리나라에 도움이 된다는 인식이 뇌리 깊숙이 자리 잡고 있다. 하지만 젊은 세대들은 다르다. 2030은 소비에서 국적을 따지는 사고 자체를 이해하지 못한다. 40대도 이젠 애국심과 소비를 별개로 냉정하게 바라볼 정도다. 국민의 애국심에 기초한 국산품 애용 수혜를 받으며 성장한 대기업에 대한 실망과 반발에 따른 자연스러운 변화다. 그간 애국심에 의존하며 편하게 장사를 해 오던 기업들로선 심각한 불안 요소가 아닐 수 없다. 적어도 내수 시장만큼은 확실히 확보했다고 안심하며 해외 시장 개척에 더 공을 들이던 대기업들 앞에 빨간 경고등이 켜졌다. 자동차 시장이 이를 단적으로 보여 준다. 최근 수입차의 점유율이 가파르게 상승하는 반면 현대기아차의 내수 소비 점유율은 계속 떨어지고 있다. 2013년 8월 월별 점유율에서 처음으로 70퍼센트 벽이 무너졌다. 그리고 9월에는 68.9퍼센트로 좀 더 떨어졌다. 반면 수입차 점유율은 10퍼센트의 벽을 넘어선 지 얼마 안 된 것 같은데 2013년 8월 말 기준으로 12.1퍼센트에 이르렀다. 2016년경이면 20퍼센트 벽을 넘어설 것이란 예측까지 나온다. 국산차로 분류되고 있는 한국GM이나 르노삼성도 엄밀히 말하면 외국 자본이다. GM과 르노의 자동차이지 더 이상 국내차가 아니다. 그렇기에 현대기아차의 내수 소비 점유율의 지속적 하락은 가볍게 볼 일이 아니다. 여전히 나이 든 기성세대에겐 국산차 선호가 있지만 2030들은 다르다. 수입차 선호가 강할 뿐만 아니라, 현대기아차에 대한 불신도 크다. 내수용 차와 수출용 차가 다르고, 내수 소비자를 봉으로 알고 비싸게 판다는 얘기도 2030에겐 이미 상식처럼 굳어졌다. 기업들로서는 다시 애국심을 불러일으킬 방법을 모색하지 않을 수 없다. 가격 경쟁력으로 우위를 가졌던 국산 자동차 회사들이 신차를 출시해도 가격을 올리지 않거나 심지어 마케팅비를 투입해 낮추는 경우도 생기는 것은 이 같은 국내 소비자들의 따가운 눈총을 의식한 탓이다. 물론 애국심이라는 게 일방적으로 홍보한다고 올라가는 것은 아니다. 예전처럼 정부가 강제할 수도 없다. 우리나라 사회 지도층을 자처하는 사람들 가운데 많은 이들이 자녀 병역 문제, 국적 문제, 세금 납부나 투기 문제에서 떳떳하지 못한 것도 큰 걸림돌이다. 2013년 10월 미국은 정치권의 갈등으로 연방정부 업무가 부분 정지되는 셧다운을 겪었다. 모든 공공기관이 폐쇄되고 심지어 국립공원도 관리가 되지 않았다. 그때 미국인을 감동시킨 한 사람이 있다. 혼자서 묵묵히 워싱턴의 전쟁기념관과 링컨기념관 앞뜰의 잔디를 깎은 크리스 콕스라는 중년 남자였다. 우리로 따지면 일부러 시골에서 서울로 상경해 국립묘지나 전쟁기념관을 관리했다고 이해하면 될 것이다. 사실 애국은 거창한 게 아니다. 진짜 애국은 마케팅도 아니고, 생색내기도 더더욱 아니다. 독일이 자국의 이미지를 홍보하는 데 쓰는 광고 문구 하나를 떠올려 본다.“총리는 여성이고, 외부무 장관은 게이이고, 부총리는 베트남계이고, 대통령은 인권 운동가였다.”경제가 잘 돌아가고 돈이 많은 나라라는 걸 강조하는 게 아니라 사회·문화적 수준이 높은 나라라는 것을 내세운 것이다. 이 두 사례는 이 시점에 다시 애국심에 호소하려면 무엇이 필요한지 많은 생각할 거리를 제공한다. 만약 외환 위기를 또 겪는다면 1998년처럼 금 모으기 운동이 벌어질 수 있을지 궁금하다. 불과 10여 년 전에 비해 우리가 가진 애국심은 꽤 많이 바닥난 건 아닐까?
김용섭 날카로운상상력연구소장 www.digitalcreator.co.kr

* <라이프 트렌드 2014 : 그녀의 작은 사치 (김용섭 저, 부키)>http://book.naver.com/bookdb/book_detail.nhn?bid=73638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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