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사도(思悼)’가 직장인에게 주는 3가지 교훈

입력 2015-09-30 15:26 수정 2015-10-21 09:48



‘한중록(閑中錄)’에 충실하게 영조와 사도세자의 슬픈 역사를 다룬 영화 ‘사도(思悼)’를 보면서 비운의 사도세자에게 많은 사람들이 연민을 느꼈을 것이다. 그러나 필자는 연민 이전에 이를 통해 몇 가지 교훈을 깨달아 본다.예나 지금이나 권력욕구나 조직의 메카니즘면에서는 변치 않는 것이 있다. 영조와 사도세자는 결국 자신들의 상반된 성격코드를 서로에게 맞추지 못하고 협업에 실패한 쌍방과실의 리더십 실패사례의 전형이라 할 수 있다. 만일 그들이 조금만 더 신중하고 사려 깊었더라면 부모가 자식을 뒤주에 가두어 죽이는 해괴망측한 역사의 아이러니는 최소한 막을 수 있었으리라.

현대의 직장인들은 사도(思悼)를 통해 명심해야 할 것들이 있다.

첫째, 기다림의 미학을 가져야 한다.

세자에게는 많은 아쉬움이 남는다. 아버지 영조의 숨막히는 요구와 질책에 주눅이 들고 아무리 서럽고 두렵더라도 책잡히는 일을 피하면서 때를 기다리는 것이 현명하지 않았을까? 명색이 세자이니 명분을 축적하며 괴팍한 영조의 코드에 맞춰주고 끝까지 열심히 하는 척이라도 하면서 기다리는 것만이 해답이었을 터이다. 직장에서도 참고 기다리는 자들이 결국 생존게임에서 이긴다. 상사가 맘에 안 들어도 맞추려는 척하면서 기다려야 한다. 그러면 나보다 상사가 먼저 알아서 떠나가 버린다.

둘째, 지나친 논리적 명분의 프레임에서 벗어나야 한다.

영조는 다혈질이지만 매우 치밀하고 냉정한 왕이었다. 사도세자의 죽음을 명분을 따지며 계획한 대로 집행한 것이다. 세손을 역적의 아들로 만들지 않기 위한 최소한의 조처, 세자가 변란을 도모했다는 혐의를 씌어 제거 명분을 확보하면서도 모든 비극을 세자 개인의 병에 의한 광기탓으로 돌려 역모는 피해가게 만들었다. 이같은 영조의 세자에 대한 논리적 이성중심의 사고는 인간적 감성을 무뎌지게 해 의사결정의 독이 되었다. 조직에서도 지나친 논리적 명분 짜맞추기는 자칫 인간성을 상실케하는 그릇된 권모술수를 낳고 유연성을 훼손할 수 있다. 원칙의 딜레마도 이와 무관치 않으니 고착된 논리 프레임은 곤란하다.

셋째, 대체재의 등장을 두려워 해야 한다.

사도세자의 죽음은 사실 세손이 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자신과 맞지 않고 기대에 어긋나게 행동한 세자에게 실망한 영조의 대안으로 뒷날의 정조인 세손은 그야말로 후계교체의 구세주인 셈이었다. 결국 세자가 제거되어 세손이 승계한 것이 아니라 세손의 승계를 위해 세자가 제거된 것이다. 내가 하는 일에서 나보다 더 나은 대체재가 생기면 나의 존재감은 위험하다. 다른 어떤 수단이나 조치가 나를 대체하지 않도록 나만의 영역을 잘 구축해야 할 것이다.

결국 사도사제는 아버지의 권력욕과 과도한 기대감 이전에 스스로 마이웨이(My Way)를 선택하여 결격사유를 자처, 화를 불러일으켰다는 생각이 미치자 영화를 보는 내내 감동보다는 씁쓸함이 묻어났다. 그 옛날이나 지금이나 정치판, 조직판은 비슷한 것처럼 보인다. 때론 정석보다 다소의 편법이 상황돌파에 유리함을 점유할 수 있다.

직장생활, 지치고 힘들지만 이 세가지를 교훈삼아 그때그때 현명하게 대처해 봄이 어떠실지.
롯데인재개발원 자문교수
한양여자대학 외래교수
관세청 교육개편 실무위원회 자문위원
소상공인진흥공단 컨설턴트, 한국교통대학교 외래교수
자치발전연구원 칼럼니스트
아하러닝 연구소 대표 컨설턴트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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