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북한 <평양>시내의 한적한 서점에서 눈길을 끄는 책 하나를 발견했습니다.
 

이 책을 한권사와서 차근히 읽어보니 그 속엔 그동안 우리가 생각조차 못했던 <사실>이 적혀 있었습니다. 이 책 내용엔 항상 일본측이 주장하는 <임나일본부>가 <실제로>있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임나일본부는 한반도에 있었던 것이 아니라 일본의 빗쥬지역에 있었다는 겁니다.



 더욱이 당시 5~7세기엔 신라인들이 경제력으로 세운 영주국가와 백제인들이 문화력으로 세운 영주국가가 인근에 자리잡고 있었다고 합니다.
 

요즘처럼 독도가 일본땅이라고 우기는가 하면 역사교과서를 끊임없이 왜곡하고 있는 상황에서 일본에 한민족이 세운 <소국가>들이 자리잡고 있었다는 사실은 우리에게 관심을 끄는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북한의 역사학자들이 일본의 <성잔성씨록> 등 문헌과 조사를 통해 논술한 이책 <고대 일본 가나이 지방의 조선계통문벌(조선 사회과학출판사 발간)>에 나오는 내용을 그대로 옮겨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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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객관적 립장에서 <일본서기>의 신라정벌 관계기사를 잘 따져보면 야마또왕정의 힘이 가해진 것은 남부조선이 아니라 조선밖의 <신라> 즉 일본렬도내 신라소국이였다.



 <신라정벌>은 6세기이후 야마또왕정이 진행한 국토통합의 중요한 일환이였으며 여기서도 백제, 가야를 위주로 하는 조선계통 문벌이 주동적 역할을 하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조선의 주민들은 일찍부터 일본 렬도내에 진출하여 도처에 조선계통 소국들을 세웠다.



 그러한 소국들가운데서 신라소국들은 셋쯔(오사까부), 하리마(효고현), 기비(오까야마현) 일대에 있었다.



 우리학계는 야마또왕정에 의한 서북일본통합에 가장 지장을 주었던 신라소국(6세기~7세기중엽에 가장두각을 나타내던 소국이다)은 비젱국(오까야마현 동부) 오꾸군에, 신라소국의 위협을 받던 임나소국은 빗쮸국(오까야마현 서부) 소쟈시일대에, 백제소국은 빙고지방에 있었다는 것을 밝혔으며
 
 이에 기초하여 <일본서기>의  <신라정벌>기사가 기비지방의 신라, 임나 소국과의 관계를 반영하였다는데 대해 여러번 론증하였다.



 야마또왕정이 6세기이후 령토통합에 착수하면서 조선계통 소국들과 활발한 접촉을 가졌던 시기 일본렬도내의 기본 배길과 남부조선과의 통로가 세또나이해였다는 것을 고려하면 이 제기는 타당하다고 생각한다.



 이에 근거하여 신라와 가라, 백제 소국들의 분포를 보면 야마또왕정(나라현)에서 세또나이해 연안을 따라가면서 북안으로 신라소국, 가라(가야)소국, 백제소국의 순서로 놓여있었다고 볼수 있다.

 이렇게 놓고보면 <일본서기> 권10 응신기 16년 8월초에 반영된 <신라정벌>에서 가라에 머무르고 있던 소쯔히꼬가 신라 때문에 야마또에 돌아가 지 못한 것도 리해된다.

 즉 빗쮸지방에 있던 임나소국에 가있던 소쯔히꼬가 그 동쪽 야마또와의 사이에 있는 비젱지방의 신라소국이 가로막아서 야마또로 갈수 없었다고 보면 이 <신라정벌>내용은 비슷이 맞아 떨어진다.


 일본렬도내의 이러한 신라소국, 임나소국, 백제소국은 제2신라, 제2가라, 제2백제로 될 것이다.


 일본렬도안의 제2의 신라, 가라 백제가 소국들이므로 남부조선의 신라, 가라, 백제는 그 이름의 유래로 보나, 남부조선과 일본렬도사이의 정치문화적 영향관계로보나 이 소국들의 본국으로 불수 있다.


이렇게 놓고보면 허위와 조작이 많은 <일본서기>의 <신라정벌>관계기사들은 조선반도의 신라소국과의 관계로 보면 하나도 통하지 않지만 일본렬도나, 신라소국과의 관계로 보면 론리가 통하는 점을 찾아낼 수 있다“



대학 4학년 2학기 때 지하철역에서 난생 처음 '한국경제신문'을 샀는데, 거기에 난 '기자모집'이란 걸 본 게 팔자를 완전히 바꿔버렸습니다.
그로부터 '기자'란 꼬리표를 떼지 못한 채...오히려 '중소기업전문'이란 딱지를 하나 더 붙여서....어언간 36년이란 세월을 흘려보내고...그 산전수전 이전구투를 거쳐 오늘에 이르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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