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 관계에서 협상의 결과는 상대방과 우호적인 관계를 목표로 하기도 하지만 궁극적으로는 금전적 가치에 무게를 두는 경우가 많다. 인간관계를 중시하는 관계지향적인 협상보다 경제적 결과를 중시하는 성과지향적인 협상의 경우에는 얼마를 더 벌어야 하는 최소 기준 정도는 조직 내에서 합의를 한다. 여기서 얘기한 최소한의 기준이 바로 ‘BATNA(Best Alternative to Negotiation Agreement)’이다. 즉, BATNA는 협상이 교착상태나 결렬되었을 때 대신 취할 수 있는 ‘최선의 대안’을 말한다.


예를 들어 조직 내에서 부하직원이 상사에게 마케팅 실적이 좋지 않는 내용을 가지고 보고하는 경우 상사는 “이런 상황을 극복할 수 있는 대안은 생각해봤는가?”라는 질문을 던지는 경우가 있다. 이런 상황에서 대안을 가지고 협상에 참여하는 부하직원과 그렇지 않은 부하직원은 상사에게 깨지는 정도가 틀리다. 결국, 모든 협상에서 대안은 필수적인 준비요소이다. 그 중요성을 한국까르푸의 예시로 살펴보자.


프랑스의 가장 큰 유통업체인 까르푸가 2006년 한국에서 완전히 철수하였다. 업계에서는 까르푸가 좋은 값에 매각했다고 했다. 사실 까르푸는 한국시장에 진출하였으나 현지적응에 완전히 실패하였다. 스피드 경영을 하는 한국계 할인점과 한국의 소비자 기호를 따라잡지 못했다는데 실패 원인이 있다. 그런데 실패해서 떠나는 기업이 어떻게 좋은 가격을 받고 매각할 수 있었을까? 바로 배트나를 만들어 적절히 활용했기 때문이다.


1996년 경기도에 첫 점포를 연 한국까르푸는 1조8천억원의 거금을 투자하고도 한국 진출 10년만에 한국에서 전면철수 했다. 전 세계에 무려 만개가 넘는 매장을 가지고 있는 세계 2위의 유통업체가 자존심이 무척 상하는 사건이 아닐 수 없다. 철수 전까지 한국까르푸는 국내 32개 매장에 매출 1조6천억원으로 업체 4위를 지키고 있었으나 영업이익률은 1.57%로 매우 초라한 성적이었다. 고전을 면치 못한 한국까르푸는 국내 유통사와 합병하기 위한 물밑작업을 진행해야 했다.


어느 날 까르푸는 회사를 팔고 떠날 것이라는 생각과 반대로 점포를 계속 사 들이기 시작했다. 2005년 27개인 점포수가 2006년 매각 시점에는 32개로 증가했다. 어려운 회사사정에 당장 팔아도 부족한 상황에 왜 점표수를 더 늘렸을까?


제 값을 받으려면 많은 기업들이 인수의향서를 갖고 나타나야하는데, 당시 한국까르푸의 인수에 관심을 가진 기업은 롯데마트가 고작이었다. 이 상태로는 롯데마트가 원하는 가격에 매각이 될 것이 뻔하며 또 다시 일본에서 겪은 악몽이 다시 찾아올 수 있다. 그래서 한국까르푸는 업계 1위였던 신세계 이마트를 끌어들이고 싶었다. 하지만 이마트는 한국까르푸의 인수에 별다른 관심이 없었다. 이마트는 이미 전국에 70여개 점포를 보유하고 있었고 신규 점포도 상당수가 개점될 예정이었다. 특히, 한국까르푸의 점포 위치가 이마트와 상당수가 겹치기 때문에 지리적인 매력을 느낄 수 없었다. 설사 롯데마트가 한국까르푸를 인수한다고 해도 업계 1위를 유지하는데는 전혀 문제되지 않았다.


한국까르푸는 이러한 상황에서 이마트를 끌어 들일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인지를 궁리하다 결국 배트나에 답을 찾았다. 한국까르푸는 점포수를 27에서 32개로 널려 몸집을 키워 롯데마트가 한국까르푸를 인수할 경우 이마트가 추구하고 있는 ‘대한민국 1등 할인점’의 이미지를 벗길 수 있다고 판단했다. 한국까르푸의 생각은 정확하게 맞아 떨어졌고 인수전이 공식화되자 이마트도 뛰어들었다.
 
그런데 안도의 
한숨을 쉬고 있는 동안 이마트는 한국까르푸와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는 월마트를 설득하여 인수하였다. 이마트는 월마트를 인수하였기 때문에 이제는 롯데마트가 한국까르푸를 인수한다고 해도 큰 위협이 되지 않았다.


이마트가 배트나로서 효력이 떨어지자 한국까르푸는 또다시 새로운 배트나를 개발했다. 의류업계에서 성공을 거두고 유통업의 사업확장을 도모하고 있는 이랜드의 뉴코아를 인수전에 끌어들였다. 결국 한국까르푸는 이랜드에 매각되었다. 이 과정에서 한국까르푸는 롯데마트를, 이마트는 한국까르푸를 배트나로 활용하였다.


유통업계의 1위에서 4위까지 인수전에 뛰어들은 기업들이 배트나를 만들어 활용하는 것이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보여준 중요한 사례다.



한국까르푸의 사례와 같이 배트나는 협상의 결과를 유리하게 이끌어 가는데 매우 중요한 요소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면 배트나를 좀 더 잘 활용할 수 있을까? 다음의 세 가지를 중심으로 살펴보자.


첫째, 배트나는 주어진 것이 아니라 만드는 것이다. 결국 내가 얼마를 더 양보하느냐는 상대방의 배트나가 어떠냐에 따라 크게 좌우된다. 예를 들어 통신장비를 처분하기 위한 가격 협상장에 납기문제로 인해 통신장비를 사고자 하는 회사가 있는 경우보다 다른 곳에 마땅히 팔 곳이 없는 경우 협상력은 크게 떨어진다. 현명한 판매자는 항상 팔 수 있는 곳을 찾아 구매자의 배트나가 무엇인지 조사하고 분석한다. 자신의 배트나를 개발하고 개선하는 것은 가지고 있는 유리한 조건을 효과적인 협상력으로 전환 시킬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협상가들은 자신의 상황에 몰두하느라 상대방의 배트나를 분석하는 일에 소홀하다. 협상당사자들은 끊임없이 자신의 배트나를 개발하는 노력을 해야 한다. 협상의 승패는 배트나의 유무에 따라 확연히 달라진다.


둘째, 나의 최종결정이 배트나보다 나쁘면 결정을 미뤄라. 배트나는 협상 당사자가 진행하고 있는 협상이 실패했을 때 선택할 수 있는 최선을 대안을 말한다. 즉, 의사결정의 최저선이 현재의 배트나인데 개발된 배트나가 최저선인 배트나보다 바쁘다면 결정을 보류하라는 의미이다. 예를 들어 100만원에 물건을 팔려고 하는데 구매자가 80만원에 산다고 한다면 100만원 이상의 구매자가 올 때까지 그 물건을 팔지 말고 기다려야 한다. 100만원의 금액에는 판매자로서 남길 수 있는 이윤의 마지노선이기 때문이다.


셋째, 강력한 배트나가 있으면 빨리 상대에게 알려라. “우리에겐 사실상 다른 충분한 대안이 있습니다”라는 표현을 통해 상대보다 강력한 배트나가 있음을 알려서 상대를 내 편으로 끌어들이기 위한 방법이다. 실제 협상에서는 상대방도 확실한 대안이 있으므로 우리 쪽 대안의 강점을 적절히 드러내어 상대의 입장에서 우리의 대안을 선택하지 않을 경우 심리적 부담과 조급함을 느껴 제1의 대안으로 선택할 수 있는 가능성을 확장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중국의 N사가 일본진출을 준비하면서 A사와 B사를 놓고 저울질을 하고 있었다. N사는 이 사실을 그들에게도 알렸다. A사가 중요한 정보를 보내오면 그 중에서 N사에게 유리한 내용만 추출해서 B사에게 보내주고, B사가 정보를 보내와도 똑 같은 방식으로 A사에게 정보를 보내주었다. N사는 내심 1순위 후보였던 A사로부터 좀 더 좋은 조건을 얻어 내기 위해 B사를 적절하게 활용하여 결국 원하는 A사와 원안 이상의 계약을 이끌어냈다.


프로 협상전문가는 자신의 배트나를 개발하기 위해서 끊임없이 연구한다. 그리고 상대 배트나와 비교해 어떤 것이 큰 힘을 갖고 있는지 항상 고민한다. 협상은 일방적인 것이 아니라 나와 상대가 함께하는 댄스와 같은 게임이기 때문이다.


  정인호 VC경영연구소 대표(www.vcm.or.kr) / 협상의 심리학 저자


정인호는 경영학박사 겸 경영평론가다. 주요 저서로는 『협상의 심리학』, 『다음은 없다』, 『HRD 컨설팅 인사이트』, 『소크라테스와 협상하라』, 『당신도 몰랐던 행동심리학』, 『화가의 통찰법』등이 있으며 협상전문가, HR 컨설턴트, 강연자, 칼럼니스트, 경영자, 전문 멘토, 작가로 활동 중이다.
http://www.ggl.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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