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전 청년시절 군 입대를 앞두고 필자는 약간의 겉멋과 우월감에 젖어 있었다. 사관생도처럼 멋있는 모자와 나름 시험을 보고 선발한다는 매력이 내가 대한민국 공군에 지원하게 된 동기였다. 덕분에 교련혜택도 못보고 만35개월 군 사병 시절을 보내야 했고 학교 동기들보다 1,2년 늦게 사회생활을 시작한 이유이기도 했다. 그러나 멋을 부리고 타군보다 다소 편안하게 지내려던 내 얄팍한 속셈은 여지없이 깨여져야 했다. 백령도를 제외하고는 공군의 최전방인 강원도 산골에 있는 00부대 레이더 기지로 자대(自隊) 배치가 된 것이었다.

 

 공군 사병교육 중 가장 혹독하다는 방공무기 통제병 교육을 마치고 눈보라 휘몰아치는 겨울에 전속된 예하부대는 DMZ에서 조금 떨어져 북한군이 지척에 위치한 공군부대였다. 파란 많은 ‘더불백’을 내무반 침상에 내려놓은 그 날, 야밤에 들려오는 각목 구타소리는 ‘공포’ 그 자체였다. 군기 바짝 든 이등병에 지척에 북한군이 있다는 두려움, 가끔 들려오는 포성 등이 겹친 공포의 날 들이였다. 군 생활 초기, 나는 모든 것을 극복하고 온전하게 목숨을 부지해서 밝은 세상(?)으로 나올 수 있을까 하는 염려가 가득했던 시절 이였다. 주기적으로 반복되는 철야근무, 특전사에 버금가는 엄청난 양의 사격훈련, 휴가 때 최소 10번 이상 검문을 거쳐야 갈 수 있었던 귀향길 고통 등을 겪으며 나는 최전방 공군생활을 무사히 견뎠고 추웠던 군 생활을 마감했다.

 

 <우리는 불안이나 고통이 있으면 본능적으로 그 고통을 잊으려고 술을 마시거나 호흡을 하거나 다른 방법으로 이를 피하고 잊으려고 한다. 그러나 이를 피한다고 해서 그 고통이 소멸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 고통은 더 큰 고통으로 남아 있을 뿐이다.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고통을 잊으려고 노력할 것이 아니라 고통의 심연(深淵) 속으로 뛰어 들어가야 하는 것이다. 추위가 찾아올 때는 더운 곳으로 일시적으로 도망칠 것이 아니라 보다 철저히 자신을 춥게 함으로써 추위로 죽이고, 더위가 찾아올 때는 다시 추운 곳으로 피할게 아니라 보다 철저히 자신을 덥게 함으로써 더위를 죽여라> (산중일기 中 최인호)

 

 실존주의 철학자 니체는 “나를 죽이지 않는 한 모든 것은 나를 강하게 만들 뿐이다”라고 말했다. 우리가 살아가는 인생에는 돌아가는 것보다 당당하게 맞서야 하는 경우가 많이 있다. 편법으로 대충 돌아가면 그 순간은 좋을지 모르지만 언젠가는 부메랑으로 돌아오는 경우를 많이 볼 수 있다. 요즘 여러 건설사들이 과거의 입찰 담합으로 곤욕을 치루고 있으며 부정적 이미지를 심화시키고 있다는 보도가 되고 있다. 그 당시는 관행이라고 했지만 순간의 경쟁을 피하고 그나마 조금이라도 원가를 확보하기 위해 당당하게 맞서지 않고 돌아가려다 치르는 업보가 아닐까.
 

 지난 연말에도 어김없이 건설을 비롯하여 각 분야에서 수많은 <은퇴자> 들이 쏟아져 나왔다. 지금은 <은퇴자>들이 당당히 맞서기에는 녹록치 않은 현실이다. 세찬 한파가 몰아치더라도 피하지 말고 철저히 자신을 춥게 함으로써 추위를 죽이자. <퇴직자>라고 주눅 들지 말고 허리를 꼿꼿하게 걸음걸이는 더 힘차게 걸어야 한다. 이를 이겨내고 당당하게 맞서서 살아가면 좋은 날도 있으리라. 힘찬 청마의 새해를 맞이하여 <기은퇴자>나 <은퇴예정자> 모두의 건투를 빌어마지 않는다. ⓒ강충구20140115

 
국내 1호 은퇴시공 전문가로 30년간 대형 건설회사 토목부분에서 잔뼈가 자란 이 분야 베테랑 건설인이다.
그동안 VE(Value Engneering)상, 건설기술인상, 대통령표창, 건설교통부 장관상 등을 수상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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