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라 천리 길 잘 오셨습니다.” 진주성과 촉성루가 상징인 고도(古都) 진주시 초입에서 볼 수 있는 외지 손님을 맞이하는 환영 간판 내용입니다. 필자는 사회 초년생 시절 진주에서 8년을 살았습니다. 생전 처음 밟은 그 땅에서 그 글귀를 보니까 아주 먼 나라에 온 것처럼 아득하게 느꼈던 기억이 생각이 납니다.

 

 만리(萬里)는 천리의 열 배이니까 대략 4,000km 정도의 거리 즉, 서울서 부산 혹은 진주까지 열 번 정도를 왕복하는 거리 쯤 됩니다. 또한 만리(萬里)는 엄청나게 먼 거리를 뜻하는 대명사 혹은 서로 넘나들지 못하게 가로막는 크고 긴 장벽을 비유적으로 일컫는 말이라고도 합니다. 만리(萬里)라고 하면 빼놓을 수 없는 게 바로 중국의 만리장성입니다. 실제거리가 6,400km로 정확히 만리(萬里)가 아닌 1만 6,000리 쯤 되는 셈입니다.

 

 최악의 불황인 출판시장에서 무라카미 하루키와 함께 조정래 작가의 소설 <정글만리>가 출판계 돌풍을 일으키고 있어 큰 화제입니다. 그는 약육강식의 세상 속에서 우리민족의 미래를 조망하기 위해 이 소설을 썼다고 합니다. 작가는 여기서 만리(萬里)는 중국이라는 나라가 넘나들기 어려운 거대한 장벽의 의미로 썼을 거라 짐작이 됩니다. 즉 한국인이 중국에서 살아가는 건 깊은 정글 속을 헤 메는 것 같다는 의미가 들어 있다는 뜻일 것입니다. 우리나라 소설계의 거장 조정래 작가는 이 소설을 쓰기위해 엄청나게 많은 현장답사와 취재 노트를 바탕으로 썼으며 장편소설을 쓰면서 늘 탈장과 팔 염증에 시달리며 쓴다고 합니다.

 

 만리(萬里)라는 단어는 다양하게 쓰이는 것 같습니다. 50여 년 전 찢어지게 가난했던 우리나라는 서독 대통령에게 돈을 빌리기로 하고 그 나라 사람들이 기피했던 광부와 간호사를 파견했던 아픈 과거가 있습니다. 그야말로 이역만리(異域萬里) 먼 타국에서 우리네 할아버지, 할머니들은 오로지 잘살아보겠다는 일념으로 숱한 눈물과 인고의 나날을 보냈습니다. 얼마 전 모 의과대학과 모 사관학교에서처럼 순간의 잘못된 판단이나 행동으로 앞길이 구만리(九萬里)같은 아까운 예비 의사, 예비 장교들이 장래를 망쳤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습니다. 또한 꽃의 향기는 백리를 가고 술의 향기는 천리를 가지만 사람의 향기는 만리(萬里)를 간다는 옛 글도 있습니다.

 

 필자가 <은퇴 만리>를 얘기하는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이제 이자는 제로 금리 가능성에 집값은 계속 떨어지며 세금은 40% 이상 늘어날 가능성이 있습니다. 둘째, 자신이 감당할 수 있는 기간보다 더 오래 사는 ‘장수 위험’이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문제가 되어 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셋째, 복지비용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며 고령화 재원은 부족하고 준비할 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합니다. 넷째, 우리나라는 연령지진이 폭발할 지경인데 냄비 속 개구리처럼 마냥 무대책으로 가고 있습니다. 다섯째, 인풋(Input)이 있어야 아웃풋(Output)이 있는 법인데 정치권의 증세대책 없는 복지 관련 포퓰리즘 정책은 더욱 우리의 앞날을 불투명하게 합니다. 마지막으로 인생 2막에 대한 개념이 없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다는 사실입니다.
 

 회사의 대리, 과장급 중견사원은 물론이고 어제 갓 입사한 신입이라고 은퇴가 구만리(九萬里)같은 먼 얘기가 아님을 알아야 합니다. 또한 이역만리(異域萬里)에 있는 남의 나라 얘기는 더욱 아닙니다. 은퇴자나 은퇴가 임박한 베이비부머들에게 은퇴 후 헤쳐 나갈 세상은 만리장성이나 <정글만리> 만큼이나 한 없이 길고 아득하며 생존투쟁을 해야 하는 세상이 되어 갑니다.

 

 우리나라 부족한 복지제도는 각자도생으로 살아야 하며 <은퇴 만리>는 우리 모두에게 해당하는 피할 수 없고 내 자신의 일임을 심각하게 인식해야 합니다. 각자의 <은퇴 만리>를 상황에 맞추어 슬기롭게 헤쳐 나가는 것은 결국 자신의 액션이 요구되는 자신의 몫입니다. ⓒ강충구20130826
국내 1호 은퇴시공 전문가로 30년간 대형 건설회사 토목부분에서 잔뼈가 자란 이 분야 베테랑 건설인이다.
그동안 VE(Value Engneering)상, 건설기술인상, 대통령표창, 건설교통부 장관상 등을 수상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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