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즈음 경제민주화 바람과 함께 ‘갑’의 횡포를 규탄하는 목소리가 많은 것 같습니다. 여기서 ‘갑’은 납품을 받는 대기업을 의미하고, ‘을’은 납품업자를 말하는 것 같습니다. 과거 2~30여 년 전에 건설현장에 근무할 때 필자는 ‘갑’이 참으로 부러웠습니다. ‘갑’이 마음먹으면 안 되는 일이 거의 없던 시절 이었습니다. 그런데 건설현장의 ‘갑’은 대기업이 아니라 발주자인 주로 공무원 아니면 공기업 직원 이였는데 아무리 대그룹 건설사라 하더라도 이들에게는 영원히 ‘을’일 뿐입니다.

 

 공사현장에는 ‘갑. 을. 병’ 세 바퀴의 수레가 잘 굴러가야 그 사업을 성공적으로 마칠 수 있습니다. 여기서 ‘병’은 하도급자나 자재 납품업자 등을 말합니다. 물론 ‘을’보다 훨씬 열악한 ‘병’도 수두룩한데 무슨 사치냐 한다면 할 말이 없습니다만 필자는 ‘병’에게 그렇게 큰 행세를 한 적은 별로 없는 것 같습니다. 하여간에 현장 생활 10여 년을 하면서 막대한 권력을 행사하는 ‘갑’이 참으로 부러웠습니다. 시공사 생활이 너무 힘들어 ‘갑’은 아니지만 ‘갑’과 유사한 감독업무 등을 하는 감리회사에 남몰래 이력서를 내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20년 이상 세월이 흐르니까 우리 국민들이 조국에 대한 애국심이 생기듯이 필자도 회사에 대한 남모를 충성심, 애사심 비슷한 게 생겨서 발을 못 빼고 어느덧 30년 가까운 세월이 흘렀습니다. ‘갑’에 대한 미련을 못 버렸는데 드디어 ‘갑’이 되는 길을 찾았으니 그것은 바로 <글쓰기>였습니다.

 

 작년에 출간 18종, 계약 40종을 한 ‘별종 多작가’ 김병완 씨는 삼성전자 연구원 출신으로 회사를 그만두고 도서관에서 하루 종일 책만 읽었다고 합니다. 3년간 1만 권을 읽었더니 물이 흘려 넘치듯 글이 쏟아져 나왔다고 합니다. 파란만장한 삶을 살아온 정치인 유시민은 홀연히 정계를 떠나 자연인으로 돌아와 첫 번째 한 일이 삶과 죽음에 대한 고민을 담은 책 ‘어떻게 살 것인가’을 출간했습니다. 75세의 나이로 일본의 최고 권위 신인문학상 아쿠타가와 상을 수상한 구로다 나쓰고는 글쓰기와 결혼했다고 하며 그녀로 인하여 일본에서 은퇴 후 글쓰기 붐을 일으켰다고 합니다. 모두 스스로 ‘갑’의 위치를 찾은 게 아닌가하는 필자의 생각입니다.

 

 글쓰기는 정신적 상처와 불안정한 심리를 치유하기도 한다고 합니다. 또한 마음속에 억압된 감정의 응어리가 글쓰기 수단을 통해 외부에 표출돼 심신건강을 도와준다고 합니다. 여의도 성모병원 재활의학과 원선재 교수는 “치매 환자가 꾸준히 글쓰기를 하면 대뇌 전체가 활성화돼 인지기능이 향상 된다”고 말했습니다. 말을 몸 안에 가두고 참기만 하면 욕이 되거나 짜증. 폭력. 병. 괴물이 되지만 내 안의 이야기를 글로 쓰는 일은 <내면에게 햇빛을 쐬어 주는 일>이라고 합니다. (김기택 시인) ‘치유의 글쓰기’ 저자 셰퍼드 코미나스는 글쓰기 습관에 충분한 시간을 부여하는 것이 <최고의 자기 배려> 라고 합니다.
 

 자신이 쓴 글을 타인이 읽어주고 느낌을 전해올 때 발주처 ‘갑’이 아닌 진정한 내 자신의 ‘갑’이 되었다는 뿌듯함이 생겨납니다. 늘 새로운 상상에 몰두하고 신문 방송뿐만 아니라 사소한 광고판 하나도 허투로 지나치지 않게 됩니다. 글을 쓰면서 필자도 현직에서 못다 이룬 ‘갑’의 길을 찾은 것입니다. 특히 퇴직자들에게 <글쓰기>는 인생 2막의 참 좋은 놀이로 적극 추천할 만합니다. 못 다 이룬 현업에서 ‘갑’ 으로의 꿈, 이제 글쓰기에서 이루어 보시기 바랍니다. 참 쉽습니다.                     ⓒ강충구20130417
국내 1호 은퇴시공 전문가로 30년간 대형 건설회사 토목부분에서 잔뼈가 자란 이 분야 베테랑 건설인이다.
그동안 VE(Value Engneering)상, 건설기술인상, 대통령표창, 건설교통부 장관상 등을 수상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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