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어이 수도권에서 ‘전세값이 집값에 비해 90%가 넘어서는 집’이 나오고 있다는 기사가 인터넷에 떴습니다. 이러한 현상은 그 동안 우리가 가졌던 잘못된 믿음(사람들은 전세값이 집값의 60%를 육박하면 차라리 집을 사는 게 낫겠다고 생각하여 집값이 다시 오른다는)이 얼마나 허황된 것이었는가를 여실이 보여주고 있습니다.

 

(1) 전세값이 집값의 100%를 넘어도 당연할 듯한 기세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빌리는 가격이 원가의 90%를 넘는다는 건 뭔가 문제가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보지만 현재의 상황에선 어찌 보면 너무나도 당연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집을 매수한 순간부터 감당해야 하는 물질적, 정신적 부담이 2년간 목돈을 맡기고 집을 빌려 쓰는 경우보다 더 크기 때문이죠. 부담이 더 큰 행위를 굳이 돈을 써가며 할 사람은 많지 않으니까 말이죠.

 

요즘 같은 상황에선 집을 사게 되면,

l  매수한 후부터 집값이 빠질 것부터 걱정해야 하고,

l  취등록세, 재산세 등 각종 세부담을 걱정해야 하고,

l  감가상각으로 집의 가치가 줄어드는 것을 걱정해야 합니다.

 

하지만 전세의 경우라면

역시 목돈이 들긴 하지만, 2년 후 그 돈을 고스란히 받을 것이니 이자가 붙지 않는다는 것과 물가상승으로 인한 상대적인 비용만 부담하면 됩니다.

 

이 둘 중 어느 쪽의 데미지(damage)가 클까는 굳이 주판을 튕겨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습니다. 따라서 요즘 같은 경우라면, 주택의 매매가에 비해 전세값이 90%가 아니라 100%를 넘어서는 것도 하등 이상할 게 없을 지경입니다.

 

(2) 낡은 집, 감가상각의 굴레

과거에는 집을 사면 오른다는 믿음이 있었기에 위에서 말한 3가지 부담은 다 무시해도 좋을 만큼 경미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사정이 다릅니다.

 

감가상각만 봐도 그렇습니다.

모든 고정자산은 시간이 지날수록 그 가치가 떨어집니다. 그러다가 일정 시점이 되면 그 가치가 거의 제로(0)가 되어버리죠. 이를 우리는 ‘감가상각(depreciation)’이 된다고 합니다. 그리고 고정자산마다 감가상각이 되어 그 가치가 거의 제로(0)가 되는 기간을 ‘내용연수(service life)’라고 합니다.

 

감가상각에서 딱 하나 예외는 토지뿐입니다. 당연히 건물은 감가상각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집은 토지와 건물이 포함되어 있는 고정자산입니다. 따라서 건물 부분은 시간이 지날수록 그 가치가 떨어져 결국은 거의 제로(0)가 됩니다. 참고로 건물의 감가상각의 내용연수는 짧게는 20년, 길게는 40년으로 잡고 있습니다.
 

하지만 부동산 불패신화에 빠져 있던 우리는 이러한, 너무나도 지당한 감가상각의 개념에 눈을 감아왔습니다. 70년대 강남개발로 지어진 아파트단지, 90년대 부동산 시장에 큰 기여를 했던 1기 신도시들의 아파트단지, 이들 모두가 시간이 지나면서 감가상각이 되어 건물의 가치는 줄어들고 있었으나 우리는 그 동안 다른 합당한(?) 가격 상승 요인들로 인해 이를 무시해 왔습니다.

 

그리고 이제 그러한 ‘다른 합당한 이유들’이 없어진 지금,

낡은 집을 꼭 제값 주고 사야 하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겁니다. 부동산 불패라는 안개가 걷히고 나자 낡은 집의 균열이 비로소 보이기 시작합니다. 그 동안 간과해 왔던 감가상각의 영향이 보이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증권회사의 PEF 운용역으로 있으며, 저서로는 '알기쉬운 금융상식1,2,3', '부자의 첫걸음 종자돈 1억만들기' 등이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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