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내커

신데렐라 딜레마

SBS TV 드라마 「황금의 제국」에서 성진그룹 최동성 회장의 둘째딸, 최서윤(이요원 분)은 1997년 외환위기가 얼어나기 얼마 전, 자신의 측근인 박진태 상무(최용민 분)에게

‘우리나라는 펀드멘탈(fundamental)이 튼튼해서 동남아의 금융위기에 크게 영향을 받지 않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2013년 중순 들어, 미국의 양적완화축소 발표로 인해 글로벌 시장분위기가 뒤숭숭합니다. 특히나 주요 신흥국의 금융시장이 심상치가 않습니다.

6월 이후 인도의 루피 환율은 달러 대비 7.9% 상승했으며, 주가지수는 4.3% 하락했습니다. 인도네시아 역시 같은 기간 루피아 환율이 9.9% 상승했고, 주가지수는 15.1% 하락했습니다.

 

이는 지난 1994년 멕시코와 1997년 아시아 금융위기와 비슷한 양상을 보이고 있습니다. 당시에도 미국이 금리를 올리자 신흥국에 흘러 들어가 있던 글로벌 자금이 급격히 빠져나가면서 사단이 발생했습니다.

 

하지만 이번에도 우리나라는 펀드멘탈이 튼튼하고 위기대응 능력이 뛰어나기 때문에 커다란 영향은 받지 않을 것이라는 게 주요 경제연구소 및 정부의 의견입니다.

 

실제로 우리나라는 현재 외환 보유고가 3000억 달러에 달해 신흥국의 금융위기를 이겨내기에 충분하며, 경상수지 또한 흑자를 기록하고 있어 펀드멘탈 측면에서도 탄탄하다는 것입니다. 물론, 여기서 엄청난 숫자의 가계부채나 GDP에서 차지하는 과도한 수출비중 등 우리 경제의 고질적인 문제는 고려해봐야 할 테지만 말입니다.

 

기억을 되돌려 보면 1997년에 동남아를 중심으로 한 금융위기가 난동을 쳤을 때도 정부나 경제연구소는 우리나라 펀드멘탈이 탄탄하다고 했습니다. 「황금의 제국」에서의 최서윤이 그렇게 믿고 있었듯이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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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에 읽은 Fareed Zakaria의 저서 「The post-American World」(W. W. Norton & Company, 2009)라는 책의 서문을 보면 워런 버핏(Warren Buffett)의 이야기가 인용되어 있습니다.


 

투자자들은 마치 신데렐라와 같다는 것이죠.

파티의 음악은 감미롭고 춤을 추는 파트너인 왕자님은 더 없이 멋집니다. 그야말로 성대한 파티는 그 분위기가 무르익어 가고 있죠.

그렇다고 신데렐라가 전혀 걱정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12시까지 돌아가지 않으면 모든 게 엉망진창이 된다는 걸 잘 알고 있으니까 말입니다. 신데렐라는 생각합니다. ‘젠장, 왜 내가 12시 15분전에 여길 떠나야 하는 거야. 12시 2분전에 이 파티장을 빠져나가도 아무런 문제가 없을 거잖아! 그때까지만 아무런 걱정 말고 이 파티를 즐기자구.’

 

하지만 신데렐라의 가장 큰 문제점은 그 파티장에는 아쉽게도 ‘시계’가 걸려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투자자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주식시장이든, 채권시장이든 또는 부동산시장이든 활황기에 투자자들은 모두 시장의 분위기에 취합니다. 오늘 아침 눈을 뜨면 또 가격이 올라가있고, 다음날 아침이면 또 자신의 평가수익은 플러스가 되어 있습니다.

그러다 창문 밖 초승달이 중천에 떠서 12시가 다가오고 있다는 것을 감지하기 시작하면, 투자자들도 불안해지기 시작합니다. 하지만 여전히 상승장의 파티에 취해 있는 투자자들은 이렇게 생각을 합니다.

‘그래 조금만 더… 조금만 더… 폭락이 일어나기 바로 직전에 팔고 나오면 되는 거야!’

 

그러나 투자자들도 신데렐라가 처한 상황과 전혀 다를 바가 없습니다. 시장에는 폭락을 2분 전에 알려주는 시계 따위는 없기 때문입니다. 결국 그들에게 남는 건 돌이킬 수 없는 후회와 엄청난 손실의 상처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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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현명한 신데렐라라면 창 밖의 초승달이 중천에 떴다는 것을 알아차렸을 때, 아쉽지만 파티장을 떠나야 합니다. 그게 12시 2분 전이 아니라, 겨우 10시밖에 되지 않은 시간일지라도 말입니다.

그리하여 막상 집에 도착해 시계를 보고 너무 빨리 파티장을 빠져 나왔다고 후회를 하더라도 그 선택이 당신에게 있어 가장 현명한 선택이었다고 생각해야 합니다.

 

2시간 더 파티를 즐기지 못한 아쉬움 쯤이야, 2시간을 더 넘겼을 때 닥쳐 올 고통에 비하면 대수로운 게 아니기 때문입니다. 설령 그 동안 파티의 분위기를 익히느라 별로 즐기지 못했다고 하더라도 상황은 크게 달라질 것 없습니다. 여하튼 12시를 미리 알려주는 시계가 걸려 있지 않는 파티장에선 우리 모두 소심할 필요가 있습니다.

 

파티장의 사람들은 초승달이 중천에 뜨자 파티장을 빠져 나오려는 신데렐라의 팔을 붙잡고 말합니다.

“우리나라는 펀드멘탈이 튼튼해서 별 다른 문제가 없는데 뭘 그리 일찍 떠나려고 하시나요?”

하지만 그 말에 현혹되어 파티장에 머뭇거려서는 안됩니다.

 

1997년 겨울 대한민국의 외환위기도 2008년과 2010년 주가폭락도 다 그런 만류의 손을 뿌리치지 못했던 사람들이 당했던 것입니다. 위기는 일단 피하고 봐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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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리먼사태로 인해 우리나라 주식시장도 폭락을 했습니다.

당시 어느 TV 토론 프로그램에서 금융정책을 담당하는 공무원 한 분이 나와서, 우리나라 펀드멘탈은 튼튼하니 크게 동요되지 말라고 주장했습니다. 이 주장에 대해 그 자리에 참석한 어느 경제학자가 강력하게 반발했습니다. 그러자 그 공무원이 이렇게 말하더군요.

“그럼, 무엇보다 시장의 안정을 책임져야 할 공무원이 ‘지금 우리나라도 위험하니 무조건 주식을 팔라’고 이야기하라는 말씀입니까? 그럼 시장은 더더욱 동요할 것이고 급기야 폭락으로 이어질 게 뻔한데 말입니다. 공무원이 여기까지 나와서 그런 이야길 하란 말씀입니까?”

 

결국 우리나라 펀드멘탈이 튼튼하다는 의견은 그런 용도일지도 모른다는 겁니다.

증권회사에서 PEF 운용역으로 있으며, 저서로는 '알기쉬운 금융상식1,2,3', '부자의 첫걸음 종자돈 1억만들기', '월급쟁이로 살기엔 인생이 너무 짧다', '금리만 알아도 경제가 보인다' 등이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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