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정함정과 대한민국

“재정함정”(Policy Trap)이란 정부가 아무리 정책을 시행하더라도 시장이 정부의 의도대로 움직이지 않는 현상을 말합니다. 최근 일각에선 우리나라가 이러한 재정함정에 빠진 것이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가 적지 않습니다.

 

가장 대표적인 것으로는 4.1 부동산 활성화 대책을 들 수가 있는데요. 대책 발표 후 주택시장이 잠시 반짝했을 뿐, 이내 집값은 다시 하락세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아울러 정부의 저금리 정책에 대해서도 금리가 떨어지더라도 소비를 늘리겠다고 답하는 사람이 거의 없다는 것입니다. 정부가 금리를 내리는 이유 중에 가계의 이자부담을 줄여 소비를 진작시키겠다는 의도가 큰 비중을 차지합니다. 그런데 정착 가계는 금리가 떨어지더라도 소비를 늘릴 의사가 별도 없다는 것이죠. 왜냐하면 앞으로 갚아야 할 대출원금이 어마어마한데 이자 좀 줄어든다고 펑펑 돈을 쓸 수는 없는 노릇이기 때문이죠.

 

전세값 60%룰과 대한민국

부동산 업계에서 말하는 이른바 “전세값 60%룰”도 깨지고 있는 것 아니냐는 시각이 팽배합니다. 참고로 “전세값 60%룰”이란 전세값이 집값(매매가)의 60%에 이르면 사람들이 다시금 집을 사려고 하는데 이로 인해 집값이 상승한다는 것이죠. 전세값이 집값의 60%에 이르면 사람들이 전세에 사느니 차라리 내 집을 사려고 할 테니 이런 현상이 벌어진다는 이야기죠.

 

여기서 의문점이 생깁니다. ‘무슨 돈이 있어서?’

그러니까 전세값 60%룰은 어디까지나 (1)주택시장 침체는 일시적 현상일뿐 언젠가는 다시 오를 것이란 인식이 팽배하고 (2)사람들이 대출을 일으키더라도 언젠가는 갚을 수 있다는 자신감이 충만할 때나 가능한 이야기인 것이죠.

 

가계부채와 대한민국

2013년 3월말 현재, 우리나라 가계부채의 규모가 961조에 이른다는 발표가 있었습니다. 여기다 통계에는 잡히지 않는 전세금 및 월세 보증금까지 합치면 그 규모가 약 1,600조에 달할 것이라는 주장도 있습니다. 전세금이라면 어차피 집 주인이 내어주어야 하는 돈이니까 이것 역시 엄밀한 의미에선 빚이므로 가계부채에 포함시켜야 한다는 것이죠.

 

지금 우리경제의 위협요소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가장 큰 위협요소가 바로 ‘가계부채’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과거에는 기업들의 높은 부채비율이 문제였습니다. 그러다 1997년의 외환위기가 닥치자 손쓸 겨를도 없이 우리경제가 폭삭 주저 앉아버렸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시대가 바뀌어 웬만한 기업들의 부채비율은 안정적인 수준이라 할 수 있습니다. 대신에 가계부채가 우리의 발목을 잡고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어떻게 잘 되겠지…’와 대한민국

그냥 넘어갈 문제는 아닙니다. 작금의 가계부채 수준은 반드시 우리 경제에 치명적인 문제를 일으킬 것이라고 봅니다. 이 가계부채 때문에 정부의 정책도 제대로 먹혀 들지 않고, 과거의 상식이었던 전세값 60%룰도 깨어지고 있으며, 아무리 금리가 낮아도 소비가 늘어나지 않는 것입니다.

 

천문학적인 가계부채를 등에 업고 있는 이상, 우리 경제는 비전이 없습니다. 그 결과 한 순간에 폭삭 주저앉거나 아니면 서서히 몰락해 갈 가능성이 농후합니다. 여기에는 ‘경기호황’이란 단어가 설 자리는 결코 없습니다.

 

이런 시점에 그저 잠시 우려만 할뿐, 결국은 ‘하지만 어떻게 잘 되겠지…’라는 막연한 낙관론을 가지고 있다면 정말 큰 일입니다.

 

필리핀이나 아르헨티나나 세계가 부러워하는 경제성장을 하다가 선진국의 대열에 끼지도 못한 채 고꾸라진 국가가 적지 않습니다. 우리도 지금 정신 바짝 차려야 할 때라고 생각합니다. 정부의 정책도 고난이도의 환상적으로 우수한 정책이 필요하겠죠. 하지만 정부만 탓할 수는 없습니다. 우리 가계도 지금까지의 잘못된 소비 패턴을 근절해야 합니다.
 

가계부채가 발생하는 가장 큰 요인의 1위가 자녀의 사교육비, 2위가 주택자금이라고 합니다. ‘빚을 내어서라도 내 아이들 공부를 시키겠어’라는 마인드는 70년대 개발경제 시절에는 적절했을지 몰라도 지금은 전혀 그렇지 않은데도 우리는 그 관습을 못 버리고 있는 것 같습니다. ‘죽을 때까지 번듯한 집 한 채라도 마련했다가 자식에게 물려줘야지’라는 생각 역시 지금은 적절치 못한 생각인 것 같습니다.

 

빚을 내더라도 앞으로 형편이 좋아져 충분히 갚을 수 있다면 이는 투자가 될 수 있겠습니다. 하지만, 지금 현재의 경제상황에서는 전혀 갚을 기약이 없는 데도 이런 행동을 하고 있었다면 이는 결코 투자가 아니라 욕심에 불과한 것입니다.

 

이제 우리 모두 그런 바보 같은 욕심과 잘못된 소비패턴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그게 우리 모두가 살 길입니다.
증권회사의 PEF 운용역으로 있으며, 저서로는 '알기쉬운 금융상식1,2,3', '부자의 첫걸음 종자돈 1억만들기' 등이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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