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나라 말기의 몽골 백성들은 자신들의 대제국이 왜 망했는지 몰랐을 겁니다. 물론 구한말 한반도에 살았던 수많은 민초들도 나라가 왜 망하게 되었는지 몰랐을 겁니다. 그들은 못 배웠고 소외되었기에 그들의 삶에 치명적인 영향을 끼치게 된 몰락의 원인을 제대로 알지 못했을 겁니다. 당시엔 아무도 가르쳐주는 사람이 없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로 미국의 서민들은 나락으로 떨어졌습니다. 그 동안 무슨 일이 벌어졌길래 자기네들의 삶이 나락으로 떨어졌는지 궁금해 했습니다. 다행히도 21세기 정보화 시대엔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정도는 관심만 가지면 알 수가 있습니다. 설령 미연에 방지하기는 어려웠을지언정 자신들이 왜 이토록 비참한 상황에 빠져버렸나 정도는 알 수가 있습니다. 이러한 사실을 알려주는 많은 매체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한 것들 중 하나가 바로 다큐멘터리 영화 「인사이드 잡 (원제: INSIDE JOB)」 입니다. 2010년 찰스 퍼거슨(Charles Ferguson) 감독이 제작한 이 영화는 글로벌 금융위기가 일어나기 전에 과연 미국을 중심으로 한 세계에 무슨 일이 일어났었는지를 내레이션(narration) 형식으로 이야기해주고 있습니다.

 

특히나 지금까지도 해결되지 않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그 지저분하고 불편한 진실에 대해 영화는 아주 구체적으로 말하고 있습니다. 탐욕스런 미국의 3인방인 금융계, 정치계, 학계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면서 과연 남의 일이 아님을 느끼게 됩니다. 기회가 되면 꼭 한번 보시길 바라며 영화 내용 일부를 소개하겠습니다.

 


 

◆ 첫 번째 풀린 고삐

 

1929년 대공황의 나락으로 빠진 미국은 고객의 예금을 받아 위험한 자산에 투자한 금융기관들을 제재하기 위해 그 유명한 「글래스-스티걸법」(1933년)을 제정합니다. 이법은 상업은행과 투자은행의 겸업을 엄격하게 금지하는 법이었습니다. 즉, 고객의 예금을 받는 금융기관을 ‘상업은행(Commercial Bank)’라 하여 투자행위를 못하게 하고 반면 별도로 ‘투자은행(Investment Bank)’을 두어 이들은 투자를 전담할 수 있게 하되 예금은 받을 수 없으며 스스로 투자금을 조달하도록 하는 법이었습니다.

 

이 법으로 인해 미국의 금융기관들은 자신들의 역할에 맞게 사업을 영위해 왔습니다. 하지만 1999년 수많은 로비스트들을 앞세워 상업은행과 투자은행의 업무를 겸업하는 것을 허용하는 「그램-리치-블라일리법」을 발표합니다. 이때부터 미국의 금융기관들은 손쉽게 고객의 예금을 끌어 들여 위험한 투자에 뛰어들게 됩니다.

 

 

◆ 두 번째 풀린 고삐

 

2000년 12월에는 업계 로비스트들의 도움을 받아 「상품선물거래 현대화법」이 미국 의회를 통과합니다. 이법은 파생상품에 대해 규제하는 것을 금지하는 법입니다. 이듬 해인 2001년 조지 부시가 미국 대통령이 되면서, 미국 금융계는 최고로 돈을 많이 벌었고 막강한 재력과 권력을 휘둘렀습니다. 당시 금융계를 지배한 건 5개의 투자은행(골드만삭스, 모건스탠리, 리만브러더스, 메릴린치, 베어스턴스), 2개의 금융기업(시티그룹, JP모건), 3개의 증권회사(AIG, MBIA, AMBAC) 그리고 3개의 신용평가회사(무디스, S&P, 피치)들이었습니다.

 

이들은 금융업계의 유동성 먹이사슬을 이루었습니다. 이들이 파생상품 규제를 금지하는 법을 이용하여 만들어 낸 ‘새로운 시스템’은 다음과 같습니다.

 

l   몇 조 달러의 근저당 및 대출금을 전세계 투자자와 연결합니다. 예전에는 채무자가 매달 돈을 갚으면 돈 빌려준 사람에게 그 돈이 돌아갔고 다 갚으려면 몇 십 년이 걸리니 채권자도 아무 곳에나 돈을 빌려주지 않고 조심을 했습니다.

 

l   그런데 새로운 시스템에서는 채권자가 근저당권을 투자은행에 넘기고, 투자은행은 수 천 개 근저당과 다른 융자들을 결합합니다. 예를 들면 자동차 할부, 학자금 융자, 신용카드 연체 등을 모아서 결합하고 이를 이용해 파생금융상품을 만드는 겁니다. 이것이 바로 ‘부채담보부증권’(Collateralized Debt Obligation, CDO)이라는 괴물(?)이었던 거죠.

 

l   투자은행은 이 증권을 투자자에게 팝니다. 주택 소유자가 대출금을 갚으면 그 돈은 전세계 투자자에게 돌아갑니다.

 

l   그럼 투자자들은 왜 이들 CDO증권을 아무런 의심 없이 사들였던 걸까요? 그 당시엔 믿을 수 있다고 착각했기 때문입니다. 투자은행은 신용평가회사에 CDO에 대한 평가를 의뢰했는데 그 결과는 대부분 ‘AAA’등급이 많았습니다. 이 등급은 신용도가 가장 높은 등급이죠. 그래서 퇴직 연금 공단에서도 CDO를 선호했습니다. 왜냐하면 퇴직기금은 높은 등급 증권만을 구입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l   이 새로운 시스템은 시한폭탄과도 같습니다. 투자은행을 통해 증권 투자자에게 전량 다 팔리기 때문에 최초의 채권자는 채무자의 대출상환에 대해서는 전혀 신경을 쓸 필요가 없습니다. 따라서 더 위험한 대출상품을 만들게 됩니다. 투자은행도 위험에 대해 관심이 없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증권을 많이 팔아 이익만 챙기면 되죠. 신용평가회사는 투자은행에게 돈을 받는데 그 신용평가가 잘못돼도 책임지지 않습니다.

 

2000년~2003년 사이 미국의 근저당 설정 대출금액은 매해 4배로 증가했습니다. 괴물 같은 이 ‘새로운 시스템’은 위험에는 신경을 안 쓰고 될 수 있는 한 많이 팔아 수수료를 챙기면 되는 구조이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채무자의 상환위험에 관심이 없다 보니, 결국엔 대출해 주어서는 안될 사람들까지도 대출하게 되었고 그게 바로 ‘비우량주택담보대출’인 ‘서브프라임’이었습니다. 2000년대 초부터 급증한 수 천 개 서브프라임 대출은 수많은 CDO증권으로 만들어졌는데 이 또한 대부분 ‘AAA’등급을 받았습니다.

 

결국엔 ‘빵’하고 터지게 된 거죠.

 

 

◆ 정말 정의란 어디 있는 건지…

 

2006년 후반, 골드만삭스는 한 단계 더 나가 문제의 CDO가 손해를 보면 자신들이 보상받는 상품에 투자를 하면서도 자사 고객에겐 CDO가 여전히 유망투자상품이라며 계속해서 이를 팔았습니다.
 

다시 말해 골드만삭스는 CDO증권을 잔뜩 들고 있던 AIG에서 최소 220억 달러의 ‘신용부도 스왑(CDS)’을 샀던 겁니다. 만약 AIG가 파산하면 이 돈을 보험금처럼 받을 수 있는 거죠. 다시 말해 당시 골드만삭스는 CDO증권에 문제가 생겨 AIG가 파산할 걸 짐작했을 것으로 추론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1억5천만 달러로 AIG 사태에 보험을 든 것입니다.

 

2010년 4월에 있었던 골드만삭스 경영진의 의회 증언을 보면 더욱 가관입니다. 2007년 골드만삭스가 판매한 CDO증권인 ‘팀버울프’에 대한 내용인데요. 당시 골드만삭스의 영업부 직원들이 이를 매도하기 전인 6월경에 “팀버울프 주식은 쓰레기입니다.”라고 경영진에 이메일을 보냈음에도 불구하고 7월에 ‘팀버울프 주식 권장할 것’이란 지시를 내렸다는 겁니다.



그저 착잡할 따름입니다. 정말 정의란 어디 있는 걸까요?
증권회사의 PEF 운용역으로 있으며, 저서로는 '알기쉬운 금융상식1,2,3', '부자의 첫걸음 종자돈 1억만들기' 등이 있음.

ⓒ 한경닷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