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내커

빚내기는커녕 돈 안 쓰는 기업

김의경

 

“정부 엄포에도… 30대그룹 사내유보금 1년새 38조↑”

 

지난 7월 22일자 세계일보 기사 제목입니다. 30대 그룹이 회사 내에 쟁여둔 돈이 최근 1년 사이에 40조원 가까이 급증해 710조원을 넘어서고 있다는 겁니다. 특히, 재계 1, 2위인 삼성과 현대자동차 그룹이 30대 그룹 전체 사내유보금 증가액의 80% 정도를 차지하고 있다고 합니다. 이는 지속되고 있는 경기악화와 불투명한 경영환경 탓이라고 합니다.

 

사업환경이 좋고 돈벌이가 된다 싶으면 외부에서 돈을 빌려서라도 대규모의 투자를 하는 것이 기업의 생리입니다. 하지만 점점 더 대내외 환경이 좋지 않은 상태에서 기업의 그런 투자활동은 위축될 수 밖에 없습니다.

 

정부가 아무리 돈을 풀어 독려를 한다 해도 계산이 빠른 기업이 정부 말만 듣고 움직일 순 없겠죠. 그러다 보니 지금 우리나라 기업은, 특히 규모가 큰 대기업일수록 회사에 돈을 쌓아놓고 있는 상황에 이르렀습니다.

 

그렇다면 원래부터 우리나라 기업이 투자는 하지 않고 사내유보금을 쌓아두었을까요? 아닙니다. 1997년 외환위기 이전의 우리나라 기업은 그렇지 않았죠. 20년 전만해도 기업들이 사내에 돈을 쟁여둔다는 것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오히려 외부로부터 너무 많은 돈을 빌려서 문제가 되었답니다.

 

위의 기사를 접한 후, 저는 인터넷을 통해 외환위기 당시 우리나라 기업의 부채비율 현황을 뒤져보다가 이데일리 기사(2013.10.16일자*)에서 다음과 같은 그래프를 찾았습니다.

 

2015_부채비율

 

 

이 그래프는 기업분석 전문업체인 한국CXO연구소에서 지난 2013년 조사한 보고서(**)의 내용입니다. 이 보고서에 따르면 상장기업 중 부채비율이 400%를 넘어서는 기업이 1996년에는 29.8%, 그리고 외환위기가 발생한 1997년에는 무려 32.3%에 이르렀다고 합니다.

 

 

♠ 기업 건전성 지표: 부채비율, 400% 넘으면 적신호

 

참고로 ‘부채비율’이란 ‘부채총액÷자기자본’으로 계산된 비율입니다.

기업의 건전성 정도를 나타내는 지표로 부채비율이 100%이하가 되어야 정상이라고 봅니다. 아무래도 자기 돈(자기자본)에 비해 남에게 갚아줘야 할 돈(부채총액)이 많으면 안될 테니 말입니다.

 

하지만 기업이 사업을 하다 보면 그 이상의 빚을 져야 할 경우가 생기죠. 일반적으로 이 부채비율이 200%가 넘어서면 기업 경영의 불안요소가 높아졌다고 보며, 400%를 넘어서면 기업 경영에 적신호가 켜졌다고 보면 됩니다. 또한 부채비율 400%가 넘는 기업들이 상장기업 전체의 10%를 넘어서게 되면 국가경제 전체에 경고신호가 켜진 것으로 볼 수 있다는 의견도 있습니다.

 

 

♠ 과거엔 빚내어 하는 사업의 위험성에 무뎌졌었다

 

60년대이후 국가 주도의 경제성장에 힘입어, 당시 자본력이 거의 전무했던 기업들은 외부로부터 돈을 빌려 투자를 했고 그 덕분에 우리경제도 급성장을 해왔습니다. 하지만 또 그 덕분에 돈을 빌려서 사업을 함에 따른 위험요인에 대해서는 무뎌진 게 사실이었습니다. 그러다 외환위기가 터지면서 한보나 기아차 같은 당시 대기업들이 몰락을 하게 된 것입니다.

 

당시에도 분명 경고의 목소리는 있었으나 사람들은 애써 무시하고 외면했었습니다.

 

외환위기 이후 기업들은 정신을 차리고 부채비율을 줄이기 시작했죠. 피나는 구조조정의 결과 2002년 상장기업 중 부채비율 400%가 넘어서는 기업 비중은 9.2%로 드디어 10% 미만으로 줄어들었고 2010년에는 4.9%이 이르기까지 했습니다. 하지만 뭐든 지나치면 문제가 생기듯, 요즘에는 기업들이 부채를 늘리기는커녕 아예 사내에 돈을 쟁여둬서 문제라는 기사까지 나올 정도가 되었습니다.

 

이상으로 우리나라 기업들의 부채비율 변화에 대해 알아봤습니다. 부채를 늘리는데 둔감했던 기업들이 외환위기라는 방아쇠(Trigger)에 와장창 무너졌던 과거부터, 빚내기는커녕 돈을 너무 안 써서 문제가 되는 최근의 실태까지 말입니다.

 

 

♠ 과거엔 기업의 과도한 부채가, 지금은 가계의 과도한 부채가 문제로

 

끝으로 한마디를 더 하자면,

당시 많은 우려의 목소리와 경고가 있었지만 결국 기업들은 와장창 무너진 후에 정신을 차리고 피나는 구조조정을 했습니다. 물로 망한 세상에서 살아남은 ‘노아’에게 하느님은 다음엔 불로 망하게 하리라고 말씀하셨다고 하지요. 기업의 과도한 부채로 망했던 1997년의 경고의 목소리가 이번엔 가계의 과도한 부채 쪽으로 돌아선지 오래입니다.

 

기업은 부채비율을 줄여가며 웬만하면 돈을 쓰지 않아서 문제고, 개인은 과도한 부채에 허덕여서 문제인 게 작금의 현실입니다.

 

* 「국내 상장사 부채비율 145%로 IMF 때보다 300% 감소」 (이데일리, 2013.10.16일자)

** 「지난 1996년부터 2012년까지 17년간 국내 상장기업의 부채비율 변동 현황 분석 보고서」 (한국CXO연구소, 2013년)

증권회사에서 PEF 운용역으로 있으며, 저서로는 '알기쉬운 금융상식1,2,3', '부자의 첫걸음 종자돈 1억만들기', '월급쟁이로 살기엔 인생이 너무 짧다', '금리만 알아도 경제가 보인다' 등이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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