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모르핀: (morphine): 아편의 주성분인 알칼로이드. 마취제로 진통 · 진해(鎭咳) · 진정 · 최면에 효력이 있으며, 부작용으로는 구토 · 발한 · 발열 · 설사 등이 나타난다 <두산 세계백과사전에서>

 

몇 년 전에 이곳 칼럼에다 쓴 글 중에 <모르핀 이론>에 관한 것이 있습니다.

 

물론, 이 용어는 제가 만들어 낸 것인데요. 내용인즉슨 다음과 같습니다.

 

여러분이 종종 봐왔던 베트남전 영화의 장면을 생각해 보면 됩니다.

 

<장면 1>

신병이 오랜 행군 끝에 발바닥에 물집이 잡히고 지쳐서 쓰러집니다. 그럼 소대장이 찾아와 이렇게 말하죠.

 

“이봐 최이병, 자네 그렇게 쓰러지면 우린 자넬 버리고 갈 수 밖에 없네. 이 정글에서 혼자 낙오되면 어떻게 되는지 아는가? 눈깜짝할 사이에 베트콩들이 달려들어 자네를 없애버릴 걸세. 그러니 여기 낙오되어 죽든가 아니면 힘들어도 우릴 따라오게.”

 

그럼 더 이상은 죽어도 못 걷겠다던 신병은 겁에 질려 허겁지겁 소대원을 따라 가게 됩니다. 혼자 낙오되었다가는 그날이 자신의 제삿날이 될 테니까 말입니다.

 

<장면 2>

치열한 전투가 벌어집니다. 포탄이 퍼붓고 총성이 굉음을 내는 전투입니다. “쾅!!!” 불행히도 최이병 앞에 포탄 한발이 떨어졌습니다. 최이병의 하반신이 날아가 버렸습니다.

 

옆에 있던 소대장이 황급히 뛰어옵니다. 최이병은 숨을 헐떡이고 있습니다. 일단, 최이병에게 모르핀을 한대 놓아줍니다. 고통을 없애주기 위한 임시방편으론 모르핀이 최고이니까요.

 

“이봐, 최이병 정신차려, 자넨 살 수 있어. 심호흡을 하고 고향에 어머니를 생각해, 어머니가 해주신 따뜻한 밥상을 생각해. 용기를 가져 자넨 정말 살 수 있어.”

 

물론, 소대장의 말은 거짓말입니다. 최이병은 모르핀의 약효에 취해 고향의 어머니를 상상하며 아쉬운 미소를 지으며 싸늘하게 죽어갑니다.

 

<모르핀 이론>

모름지기 위기 상황이 심각하지 않을 때 위정자들이나 전문가들은 오히려 위기론을 조장합니다. ‘경제가 어렵다. 자칫 잘못하면 금융위기가 찾아올 수 있다. 허리띠를 졸라매지 않으면 죽는다.’ 이런 식으로 말이죠. 마치 장면 1에서 봤듯이 ‘너를 낙오시켜 버리겠다. 그럼 넌 바로 베트콩한테 죽는다.’ 라는 것과 마찬가지죠. 그럼 겁이 나서라도 얼른 자리를 털고 일어나듯 경제 주체들도 정신을 차리고 위기 상황을 해결해 나갈 수 있는 거죠.

 

하지만 상황이 너무 심각하여 더 이상 손을 쓰기 힘들 때는 위정자들이나 전문가들은 오히려 안심을 시키려는 발언을 합니다. 장면 2에서 보듯이 어차피 살 가망이 없는 신병에게 고통이라도 들어주는 게 마지막 도리이니까 말입니다.

 

그러고는 모르핀 한방을 놓아줍니다. 전장(戰場)에서 포탄을 맞고 참을 수 없는 고통으로 신음하는 병사의 고통을 잠시나마 들어 주기 위한 고육지책인 거죠.

 

이렇듯, 모르핀은 전쟁과 같은 비상시국에서 어쩔 수 없이 사용하는 마약성분의 마취제일 뿐 부상자의 상처를 치료해 줄 수 있는 치료약은 아닌 거죠. 순간의 고통만 없애 줄 뿐입니다. 게다가 고통스럽다고 해서 과다한 양의 모르핀을 투여 받게 되면 심한 부작용으로 죽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대안이 없는 데 어쩌겠습니까?

 

이러한 모르핀 이론이 맞다면, 어떤 상황이 벌어졌을 때 그에 대응하는 정부나, 전문가들의 말을 액면 그대로 믿어서는 안 된다는 겁니다.

 

1950년 이승만 정권은 수도 서울을 북괴로부터 반드시 지키겠다는 방송을 한 직후 한강철교를 폭파시키고 도망을 가버렸습니다.

 

1997년 하반기 어수선한 상황에서 정부는 ‘우리 경제는 여전히 건재하다’는 말로 경제 주체들을 안심시켰지만 결국은 외환위기와 IMF 구제금융의 나락으로 빠져버렸습니다.

 

또한, 2007년 중순, 서브프라임모기지론 부실이 불거졌을 때, 전문가나 미 정부의 반응은 ‘별 문제 없다. 곧 정상으로 회복할 것이다’ 라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2008년 현재 서브프라임 부실의 끝을 알 수 없어 전 세계 경제가 공포에 떨고 있습니다.

 

반대의 경우도 있습니다. 삼성이 엄청 잘나가던 요 몇 년간 이건희 회장은 ‘메기이론’을 내세워 위기론을 강조했습니다. 계속해서 변하지 않으면 삼성도 망할 수 있다며 조직원에게 겁을 준거죠.

 

하지만 최근 들어 삼성이 흔들리기 시작하자, 이건희 회장은 삼성의 위기설은 근거 없는 낭설이라고 했습니다.

 

오늘 9시 뉴스 예고편을 보니 부시 대통령이 17일 금융정책담당자들과 긴급대책회의를 연다는 소식이 있었습니다. 미국의 5대 투자은행인 베어스턴스가 유동성 위기를 인정했고 뉴욕연방준비은행으로부터 긴급자금지원까지 신청했습니다. 이렇듯 사태가 심각해지니 모르핀이라도 한방 놓아야 한다고 판단했나봅니다.

 

하지만, 미국의 경제는 더욱 불황으로 빠질 것이라 봅니다. 서브프라임 달랑 하나 때문만이 아닙니다. 그 동안 미국은 빚을 내어 과소비를 하는 취약한 경제구조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정부는 국채(TB)를 발행해서 한국이나 중국, 일본 등의 나라로부터 달러를 조달해 그 돈으로 국책사업이나 복지사업을 해서 돈을 풀었습니다. 미국 국민들은 그 돈을 받아 다시 한국이나 중국, 일본 등에서 물건을 수입해다 써 재꼈습니다. 미국 국민의 과소비 덕에 수출을 많이 해서 달러를 벌어들인 이들 국가들은 다시금 미국 정부에 돈을 빌려주고 그 대가로 미국국채를 받아 외환보유고를 높여왔던 겁니다.

 

이런 악순환의 구조로 미국 정부는 날로 빚더미에 올라가고 미국 경제는 항상 수입초과로 적자를 보는 이른바 쌍둥이적자(재정수지적자 + 경상수지적자)의 위태로운 구조를 이끌어 왔습니다.

 

서브프라임 부실 문제는 쌍둥이적자라는 미국의 화약고에 불을 붙인 역할을 한 겁니다. 이제 모두가 미국경제가 불안하다 생각하게 되고 모두가 달러를 신뢰하지 않게 된다면 그 동안 미국국채를 잔뜩 가지고 있던 국가들이 일제히 국채 상환을 요구하게 될지도 모릅니다.

 

전문가들이나 미국 정부는 이게 무서울 겁니다. 그러니 서브프라임 부실이 발발하자 ‘별 일 아니다’라며 사람들을 안심시킨 겁니다. 예상되는 파장이 너무 어마어마하니 어느 누구도 ‘그래 문제가 있다’라고 말을 못했던 거죠.

 

하지만 모르핀 이론은 이 상황에서도 그대로 들어 맞았습니다. 숨을 헐떡이는 미국경제에 별 문제 없다고 하다가 이제는 다급해지니 대책 회의를 열어 모르핀을 몇 방 놓으려나 봅니다.

 

주변의 사람들이 가끔 서브프라임의 부실 문제가 언제쯤 끝날지 저에게 물어보곤 합니다.
 

저는 건방지게도(?) 조금은 무서운 생각이 듭니다. 서브프라임은 서브프라임에서 끝나는 게 아니라 어쩌면 그 동안 백척간두에 서 있었던 미국의 쌍둥이적자 문제로 이어져 팍스아메리카나의 시대의 종말을 야기시키는 도화선이 될 것 같기 때문입니다.

 

로마제국도 그랬고 대영제국도 그랬듯이 한 시대가 다시 저물어 가는 것 같습니다. 다만 저물어 가면서 전 세계 경제에 상당한 충격을 끼칠 것 같아서 걱정입니다.

 

하지만 아주 장기적으로 본다면 새로운 맹주가 부상하겠죠. 그리고 경제는 다시 회복할 것입니다. 기나긴 겨울이 지나면 어김없이 봄이 오듯이 말입니다.

 이육사 선생의 시 <광야>처럼 지금 눈 내리고 매화향기 홀로 아득하더라도 여기다 씨를 뿌려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증권회사의 PEF 운용역으로 있으며, 저서로는 '알기쉬운 금융상식1,2,3', '부자의 첫걸음 종자돈 1억만들기' 등이 있음.

ⓒ 한경닷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