숭례문의 주검과 윔블던 효과

입력 2008-02-20 23:05 수정 2008-02-20 23:05



<숭례문 개방 당시의 모습> (연합뉴스)

지난 토요일 연세대 MBA에 특강이 있어 오랜만에 한강을 건넜습니다. 서울역을 지나 광화문으로 가는 길에 숭례문의 주검이 하얀 장막에 쳐져 있었습니다.

 

정말 부끄럽고 치욕스런 숭례문 화재가 일어난지도 벌써 1주일이 넘었습니다. 서울 한복판에 우람하게 버티고 서 있던 우리의 자존심이 어처구니 없이 타버렸다는 것, 그것도 전소(全燒)가 되었다는 것에 대한 처참한 심정이야 우리 국민 모두가 다 같을 겁니다.

 

“왜 하필 숭례문이었냐?”는 질문에 숭례문 방화범은 “접근이 용이해 불을 지르기 쉬울 것 같아서 그랬다”고 했답니다.

 

그렇습니다. 숭례문은 2006년 3월 3일 시민들에게 개방이 되었습니다.

 

숭례문이 개방되었을 때, 대부분의 언론과 시민들은 숭례문을 시민들의 품에 안겨주었다며 좋아했습니다.

 

우리는 그 동안 많은 개방을 요구해 왔습니다. 개방은 과거 권위주의의 청산과 그 맥락을 같이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이는 점차적으로 실천되어 왔습니다. 청와대 앞길도 개방하고 북악산도 개방을 했습니다. 그리고 그 중의 하나가 숭례문이었습니다. 곧이어 흥인지문도 개방할 계획이었습니다.

 

숭례문의 주검을 지나치던 저는 잠시 동안 ‘개방’에 대해 생각해 보았습니다.

 

개방(開放)!!!

 

어쩌면 ‘쇄국=나쁜, 개방=좋은’ 이라는 흑백논리가 우리들의 무의식 속에 깊이 박혀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흥선대원군의 쇄국정책이 일본 식민지화의 간접적 원인이 되었다는 역사적인 콤플렉스가 우리를 그렇게 만들었는지도 모릅니다.

 

맞습니다. 굳이 흑백논리를 적용해서 개방을 논하라고 한다면, 저 역시 ‘나쁜’ 보다는 ‘좋은’ 쪽에 손을 들 것 같습니다.

 

하지만 세상은 이러한 흑백논리로 설명되지는 않습니다. 개방 역시 좋은 점도 많지만 그만큼의 위험이 따릅니다.

 

숭례문이 개방되어 시민들 누구나 가까이서 숭례문의 아름다움을 자유롭게 만끽할 수 있지만 그만큼 파손과 화재의 위험은 커지는 것입니다. 이는 너무나도 당연한 이야기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간과했습니다. 그게 바로 ‘접근이 용이해서’라며 방화범의 화풀이 대상으로 숭례문이 선택된 이유입니다.

 

금융쟁이인 저의 생각은 어느덧 숭례문이 금융쪽으로 꼬리를 물고 이어졌습니다. 개방의 속성은 금융에서도 예외가 아닙니다.

 

97년 외환위기의 치욕을 당한 우리는 급기야 금융시스템의 상당부분을 외국에 개방했습니다. 당시 국제금융부서에 있었던 저는 외환위기 이전과 이후, 우리 금융이 얼마나 외국인에게 개방되었고 자율화 되었는지 잘 알고 있습니다.

 

당시 정부는 이러한 개방을 통해 선진 금융기법이 한국에 들어오면 우리의 금융시스템은 비약적인 발전을 하게 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우리 국민들도 개방과 자율은 폐쇄와 규제보다 한층 선진적이고 좋은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이로 인해 우리 금융의 많은 부분이 발전한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준비되지 않은 개방은 가늠할 수 없는 위험을 동반합니다. 증권시장의 변동성은 더욱더 커졌고, 론스타와 같은 헷지펀드가 막대한 국부를 가져갔습니다. 당시 국내 부실채권시장에서의 외국계 금융기관의 행태는 감히 ‘유린’이라는 단어를 써도 좋을 정도였습니다. 

 

앞으로 금융개방은 계속 진행될 것입니다. 2009년에 시행될 예정인 자본시장통합법도 그 중 하나입니다. 하지만 벌써부터 국내의 IB산업의 육성보다는 자칫 잘못하면 외국계 IB들에게 안방을 내주는 게 아닌지 하는 우려(윔블던 효과)도 나오고 있습니다.

 

물론, 개방은 해야 합니다. 하지만 개방에는 빛과 그림자처럼 반드시 위험이 따른다는 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우리의 숭례문처럼 말입니다. 그래서 일정에 쫓겨서 진행하는 개방이 아니라 위험에 철저하게 대비를 한 후 개방을 하는 여유와 준비성을 가졌으면 합니다.

 

* 윔블던 효과(Wimbledon Effect) :  경제용어로 쓰인다. 영국 윔블던 테니스대회에서 거의 매번 외국인 선수가 우승하는 것을 빗대어 국내시장에 외국계회사가 대부분 점유하는 현상을 지칭한다.
증권회사의 PEF 운용역으로 있으며, 저서로는 '알기쉬운 금융상식1,2,3', '부자의 첫걸음 종자돈 1억만들기' 등이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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