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칼럼에서 언급했듯이 <금융투기의 역사>라는 책의 번역자 후기를 두편에 나누어 싣습니다. 참고로 이 책은 에드워드 챈슬러(Edward Chancellor)가 지은 을 강남규 기자가 번역한 책입니다.

 

번역자가 이 책을 번역하여 출간한 때가 2001년이었습니다. IMF 이후 천정부지로 치솟던 주식시장도 한풀 꺾이고, 대한민국을 용광로로 만들었던 벤처열풍도 주저 앉아 버린 상황이었습니다. 따라서 번역자는 이런 우리나라의 시대상황을 적절히 언급해가며 투기의 역사를 다룬 이 책의 후기를 썼습니다.

 

한가지 재미있는 것은 그 이후에도 다시 열병과 같은 광풍이 불었습니다. 2002년부터 본격화되었던 부동산 열풍과 2007년의 코스피지수 2,000 돌파였습니다. 그리고 그 틈바구니 속에서 돈을 번 사람이 있고 반면 모든 것을 잃거나 크나큰 상실감에 빠진 사람들도 있습니다.

 

솔직히 투자와 투기의 경계선은 모호합니다. 따라서 저는 이 책이나 번역자의 후기에 나오는 말이 무조건 옳다고 말하고 싶은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투자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투기’라는 단어에 대해 한번쯤은 관심을 가지고 바라봤으면 하는 마음에서 번역자의 후기를 올려봅니다.

 

 

역자 후기 (2/2) – 강남규 씀

 

(전편에서)
저자는 기존 사회의 부와 명예에서 상대적으로 소외되어 있었지만 혜성처럼 등장해 사회의 구성원들을 투기적 광기로 이끌었던 사람들의 에피소드를 자세히 기술하고 있다. ‘투기의 전위대’로 불리는 이들 가운데 대표적인 인물들로는, 18세기 초 영국 사우스 시 버블 당시 존 블런트와 19세기 중반 ‘철도왕’ 조지 허드슨, 1980년대 ‘정크본드의 황제’ 마이클 밀켄 등이 있다. 이들은 선구자인 양 등장해 사회구성원들의 가슴에 투기의 불길을 당기고 불법행위를 일삼다, 투기가 비극으로 막을 내리는 시점에서는 한때 자신을 영웅시 했던 사람들에 의해 철저하게 짓밟힌다.

 

‘투기의 전위대’들은 1999년 이후 우리나라에서도 혜성처럼 출현해 명예롭지 못한 말로를 걸었다. 우선 이익치 전 현대증권 회장을 들 수 있다. IMF 구제금융 사태로 철저하게 짓밟힌 한국인들의 자존심을 “어찌 우리나라 증시의 시가총액이 일본 NTT 시가총액만도 못하다는 것입니까?”라는 말로 일깨운 뒤, “1999년 연말 종합주가지수가 1,600포인트까지 오를 수밖에 없고, 2000년 연말에는 2,000포인트를 넘어설 것”이라는 등의 웅변으로, 우리네 아줌마들을 증권시장으로 이끌어냈던 우리나라 증시의 메시아였다. 하지만 주가조작 등 불법행위가 드러나 ‘투명하지 못한 경영인’으로 공격 받고 무대 뒤로 퇴장해야만 했다.

 

또 ‘벤처와 코스닥 열풍’을 일으켰던 골드뱅크의 김진호 전 사장을 비롯해 수많은 벤처기업들도 꼽을 수 있다. 기존 우리 사회에서의 부와 명예와는 거리가 멀었던 하급공무원 출신인 김진호는 ‘광고를 보면 돈을 드립니다’라는 아이디어 하나로 닷컴기업인 ‘골드뱅크커뮤니케이션스’(골드뱅크)를 설립한 뒤, ‘성공한 벤처기업인’으로, ‘벤처시대의 선두주자’ 등으로 불리며 세인의 관심을 한몸에 받았다. 하지만 그는 다른 벤처기업들보다 빨리 경영권을 내놓고 퇴장해야 했다. 그리고 이후 수많은 벤처기업인들도 ‘투기의 전위대’ 역할을 했다고 볼 수 있다. 이들 모두 코스닥 붕괴 이후 생존을 걱정해야 하는 처지에 놓였고, 정현준과 진승현 등은 금융스캔들로 감옥 신세를 지고 있다.

 

저자는 금융투기의 역사를 기술하면서 당대 최고 권력자와 고위 공직자들이 투기시기에 했던 역할에도 주목하고 있다. 사우스 시 버블 당시 투기에 앞장섰던 영국왕 조지 1세를 비롯해 이후 투기시대의 정치인과 관료들을 상세하게 다루고 있다.

 

1999년 이후 당선자 시절부터 벤처산업의 중요성을 여러 차례 강조한 김대중 대통령을 비롯해 앞다투어 벤처산업 육성방안을 내놓았던 고위관료들, ‘새시대의 기수’ 벤처기업인들과의 친분관계를 과시하며 벤처기업 육성을 지지했던 수많은 정치인들이 ‘한국의 조지 1세’라고 할 수 있다.

 

이 책의 저자 에드워드 챈슬러는 투기를 도덕적으로 비판하지 않는다. 초과수익이 예상되는 ‘새로운 것’이 출현하면 언제든지 투기가 출현할 수밖에 없는 자본주의 속성을 냉정하게 관조하고 있다. 그리고 철도주식 투기 이후 영국의 철도산업이 발전했고, 자동차주식투기 이후 미국의 자동차산업이 발전한 역사적 사실을 지적하며, 투기가 새로운 산업을 한 사회의 주력산업으로 성장시키는 기능을 했음을 밝혔다. 또한 투기는 새로운 주력산업의 성장과 함께 부의 질서도 재편한다는 점도 놓치지 않았다.

 

하지만 저자는 규제를 혐오하는 시대적 분위기에서 싹튼 투기적 광기가 한 시대를 휩쓸고 지나간 뒤에는 반드시 정부의 시장개입을 정당화하는 시대적 분위기가 형성됐다는 점에 관심을 두고 있다. 그래서 최근 세계 경제 흐름에서 주류를 형성하고 있는 신자유주의가 인터넷 버블과 투기를 거치면서 역사의 뒤안길로 퇴장하고 케인즈적 패러다임이 부활할 것이라고 조심스럽게 점치고 있다.
 

역자는 경제분야에서 아마추어라는 사실을 고백해야 할 성싶다. 그저 직업상 필요와 지적 호기심 때문에 금융투기의 역사를 공부하기 시작한 아마추어이다. 그래서 이 책을 번역하는 동안 ‘혹시 내가 오역을 하고 있지 않나’하는 두려움에 끊임없이 시달렸다. 초벌 번역부터 모든 과정을 직접 했기 때문에, 이 책에서 발견되는 번역상의 오류는 모두 역자의 책임이라는 점을 밝힌다.

 

그리고 아마추어의 번역을 흔쾌히 출판하겠다고 해준 국일증권경제연구소 관계자들에게 역자가 품고 있는 고마움을 길게 표현할 수 없다는 게 아쉽다. 그리고 난삽한 원고를 꼼꼼하게 교열해준 편집부 여러분에게도 사의를 표한다.

 

2001년 5월

강 남 규
증권회사의 PEF 운용역으로 있으며, 저서로는 '알기쉬운 금융상식1,2,3', '부자의 첫걸음 종자돈 1억만들기' 등이 있음.

ⓒ 한경닷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