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투기의 역사-역자 후기(1/2)

입력 2008-01-09 21:35 수정 2008-01-09 21:37


지난 칼럼에서 언급했듯이 <금융투기의 역사>라는 책의 번역자 후기를 두편에 나누어 싣습니다. 참고로 이 책은 에드워드 챈슬러(Edward Chancellor)가 지은 <Devil Take The Hindmost - A History Of Financial Speculation>을 강남규 기자가 번역한 책입니다.

 

번역자가 이 책을 번역하여 출간한 때가 2001년이었습니다. IMF 이후 천정부지로 치솟던 주식시장도 한풀 꺾이고, 대한민국을 용광로로 만들었던 벤처열풍도 주저 앉아 버린 상황이었습니다. 따라서 번역자는 이런 우리나라의 시대상황을 적절히 언급해가며 투기의 역사를 다룬 이 책의 후기를 썼습니다.

 

한가지 재미있는 것은 그 이후에도 다시 열병과 같은 광풍이 불었습니다. 2002년부터 본격화되었던 부동산 열풍과 2007년의 코스피지수 2,000 돌파였습니다. 그리고 그 틈바구니 속에서 돈을 번 사람이 있고 반면 모든 것을 잃거나 크나큰 상실감에 빠진 사람들도 있습니다.

 

솔직히 투자와 투기의 경계선은 모호합니다. 따라서 저는 이 책이나 번역자의 후기에 나오는 말이 무조건 옳다고 말하고 싶은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투자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투기’라는 단어에 대해 한번쯤은 관심을 가지고 바라봤으면 하는 마음에서 번역자의 후기를 올려봅니다.

 

 

역자 후기 (1/2) – 강남규 씀

 

우리나라가 투기적 광기에 휘말려 있던 1999년 이후 역자는 <한겨레신문> 경제부에서 금융을 맡은데 이어 현재는 국제부에서 국제경제를 담당하고 있다. 당시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증시의 거품을 바라보면서 역자의 관심은 ‘언제쯤 저 거품이 파열할 것인가’에 쏠려 있었다. 역자는 외국인 투자자와 국내 기관투자가들의 파상적인 매수공세를, 국내 언론들이 ‘쌍끌이 장세’로 표현하면서 들떠 있던 분위기와는 다소 거리를 두고 있었던 축에 속했다. 당시 우연한 기회에 읽기 시작한 에드워드 챈슬러의 Devil Take the Hindmost에 빠져 있었기 때문이다.

 

17세기 네덜란드 튤립투기에서 20세기 인터넷 버블까지 인간이 자본주의라는 시스템을 알게 된 이후 일확천금을 뒤쫓았던 이야기를 생생하게 기록한 이 책은,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던 국내 증시의 버블과 투자자들의 투기행태를 한 걸음 떨어져 음미할 수 있는 여유를 갖게 했다.

 

이 책의 제목을 굳이 우리말로 옮긴다면, 품위 있는 말은 아니지만 ‘동작 빠른 놈이 장땡’ 정도가 될 것이다. 이는 인간이 자본주의와 증권시장이라는 메커니즘을 활용하게 된 이후 일확천금을 노리고 투기에 뛰어든 인간의 행태를 가장 적절하게 표현하는 말일 성싶다. 버블을 이용해 일확천금을 벌기 위해 모든 자산을 걸고 투기를 벌이는 인간들이 하나같이 품고 있는 착각, 즉 “우둔한 자들에게 (주식을) 팔아넘기고, 나는 버블이 파열하기 직전에 탈출할 수 있다”는 것을 표현하는 말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파국은 예상했던 것보다 빨리 도래해 극소수를 제외한 대부분의 인간들을 파멸로 몰아넣는다.

 

1999년 4월 이후 우리나라 증시의 주가가 급등하자, 가정주부들은 한푼 두푼 아껴 불입한 적금을 해약했고, 대학생과 농민들은 각각 등록금과 영농자금을 들고, 이마저도 할 수 없었던 건달들은 카드 빚을 내 증시에 뛰어들었다. 주가가 급등하자 일상적인 직장생활을 포기하고 수많은 젊은이들이 전업 데이트레이더로 나서, 서울 여의도를 비롯해 전국에 오락실 수만큼 트레이딩룸이 생겨났다.

 

그리고 이들의 활약에 힘입어 도입된 지 몇 년 안된 사이버트레이딩 비율이 세계 최고가 되는 ‘명예’를 얻기도 했다. 수많은 젊은이들이 ‘비전 없는 구시대 굴뚝기업’을 뛰쳐나와 ‘새시대 기업’들이 모여 있는 테헤란로를 향해 떠났고, 한평생 철강이나 섬유사업만 하던 기업인들은 줄지어 인터넷과 바이오산업으로의 진출을 선언했다. 또 서울 명동 등에서 세금을 피해 자금을 굴리던 사채업자들이 대거 벤처투자가로 변신하는 촌극이 벌어지기도 했다.

 

투기적 광기에 들뜬 투자자들 가운데 역자가 취재를 위해 만나본 사람들은 하나같이 “국내 주가가 버블이고, 자신들은 투지를 하고 있다”고 인정했다. 또한 언젠가는 버블이 파열해 주가가 폭락할 것이라는 데도 동의했다. 하지만 자신들은 “파국의 직전에 주식을 우둔한 투자자들에게 떠넘기고 일확천금을 챙겨 주식판을 떠날 수 있다”고 자신만만해 했다.

 

하지만 그들은 ‘동작 빠른 놈’이 되지 못했다. 2000년 초 고점을 기록한 국내 양대 증시인 증권거래소와 코스닥을 비롯해, 남들보다 빨리 주식을 매수해 더 큰 시세차익을 얻기 위해 뛰어들었던 장외주식시장에는 그들의 예상보다 빨리 파국이 찾아왔다. 그리고 수많은 가정이 파산했고, 많은 투자자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특히 역자는 이 책을 통해 1990년대 후반 미국에서 시작되어 전세계를 뒤흔든 ‘신경제(new economy)’ 패러다임의 허망함을 알게 되었다. 자본주의가 인터넷 혁명을 통해 숙명과 같은 ‘생산요소의 한계생산성 체감법칙’과 ‘경기변동’으로부터 자유로워졌다는 이 신경제 논리가, 새로운 커뮤니케이션 수단의 출현으로 투기적 광기가 기승을 부리는 시대에는 어김없이 출현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기 때문이다.

 

자동차와 라디오의 등장으로 투기열풍이 불어닥친 1920년대 미국 경제학자들은 “자본주의가 영원한 번영을 구가하는 ‘신경제’의 시대에 들어섰다”고 목청을 돋우었다. 또한 철도투기 시대인 1840년대에도 당시 학자와 언론인들은 “철도가 인간 사이의 갈등을 해소해 ‘하나의 인류’로 통합시켜줄 것이기 때문에 시장이 무한정 확대될 것이고, 따라서 생산과 소비가 급증해 영원한 번영의 시대가 도래할 것”이라며, 동시대인들의 투기를 부추겼다.

 

하지만 두 시대의 종말은 비극적이었다. 1929년 자본주의 종말과 같은 대공황으로 재즈의 시대는 끝났고, 1840년대 철도투기는 무사한 영국 중산층들을 파산상태에 몰아넣는 것으로 막을 내렸다. 과거를 통해 현재를 이해하고, 미래를 예측할 수 있도록 해주는 역사서의 참맛을 느끼게 하는 대목이었다.

 

이 책의 저자는 금융투기를 분석하는 데 찰스 킨들버거(Charls Kindleberger)가 <투기적 광기와 공황>(Manias, Panics and Crashes)에서 제시한 ‘투기분석 모델’을 준용하고 있다. 새로운 산업의 태동이나 기존 산업의 수익률 변화, 새로운 기술의 출현 등 사회구성원들의 눈에 ‘새로운 것’이 출현하면 ‘투기적 광기(speculative mania)’가 발생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자산가치에 거품이 발생하고, 수많은 순진한 투자자들이 일확천금을 위해 투기대열에 뛰어들고, 끝내는 버블과 투기의 희생자로 전락한다는 것이다.

 

다소 도식적인 면이 없진 않지만 이는 우리나라 경제상황에도 적용할 수 있다. 증시가 출범한 이후 1997년 외환위기와 IMF 관리체제를 거치면서 ‘한국적 자본주의’의 몰락을 경험했던 우리의 눈에 인터넷을 중심으로 한 정보통신 혁명은 ‘새로운 것’으로 비쳤다. 물론 새로운 것이 출현했다고 해서 바로 투기적 광기가 발생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IMF 관리체제를 겪으면서 평생을 바쳐 헌신했던 직장에서 쫓겨나고, 피땀 흘려 모아 마련한 아파트 등 자산가치가 폭락하는 초유의 경험을 했던 우리는, 폭락한 뒤 서서히 회복하는 주식시장과 새롭게 떠오르는 정보통신 벤처에서 과거의 손실을 단 한번에 만회할 수 있는 기회를 포착했다고 볼 수 있다.

 

(다음 편에 계속)
증권회사의 PEF 운용역으로 있으며, 저서로는 '알기쉬운 금융상식1,2,3', '부자의 첫걸음 종자돈 1억만들기' 등이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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