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장님, 제가 도대체 왜? 무엇 때문에? 그렇게 해야만 하는지 도저히 모르겠습니다.”

“그건 바로 회장님의 방침일쎄!!!”

 

SBS <웃찾사>의 <회장님의 방침>이라는 코너에 나오는 장면입니다. 아무 이유도 모르고 시키는 대로 참고 해야만 하는 직장인의 애환을 비꼬아 만든 개그 코너죠.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직장에서 생활해 본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한번쯤은 이런 불합리한 상황에 처한 적이 있을 겁니다.

 

이러한 현상은 직장에서만 접하는 게 아닙니다. 군대에서도 비슷한 상황이 벌어집니다.

 

“위에서 까라면 까야지, 무슨 잔말이 그리 많아!!”

 

군 복무를 한 사람이라면 한번쯤은 들어보고 한번쯤은 해본 말일 겁니다.

 

그렇습니다. 아무래도 조직생활을 하다 보면 상사의 뜻대로 결정된 일을 무조건 복종해야 할 경우가 있습니다. 물론 상사가 결정한 일이 무조건 잘못된 것은 아니겠죠. 그리고 특히나 군대와 같이 신속하고 과감한 결정을 내려야 하는 조직에선 이런 무조건적인 명령 복종이 필요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조금이라도 아랫사람을 배려한다면, 결정에 대한 이유라도 알려줘야지 이렇듯 막무가내로 지시를 내리면 아랫사람 입장에선 환장할 노릇이 아닐 수 없습니다. 특히 구성원의 창의성을 최대한 발휘해야 하는 조직에서는 더욱더 그러합니다.

 

그래도 직장은 조금은 이해가 됩니다. 어차피 돈을 받고 다니는 곳이니 시키는 대로 따르라는데야 어쩔 수 없는 노릇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내가 직접 돈을 내면서도 이런 푸대접을 받는 곳이 있습니다. 바로 펀드투자의 세계입니다.

 

자신의 알토란 같은 돈이 펀드에서 어떻게 운영되고 있는지, 왜 그렇게 운용 되었는지, 정말 아무 이유도 모른 채 펀드투자의 결과를 받아들여야 하는 그런 터무니없고 기가 막힌 상황이 버젓이 자행(?)되어 왔던 것입니다.

 

‘내가 투자한 펀드에선 왜 그 종목을 샀을까? 하필이면 왜 이 시점에서 그 종목을 팔았을까?’ 이런 의문을 가지고 펀드 판매회사(증권사, 은행 등)나 자산운용사에 따져 물어봤자 돌아오는 답변은 영 시원치 않습니다.

 

펀드에 가입하면 기껏 고객에게 통보되는 것이라곤 A용지 4~5장 정도되는 보고서뿐입니다. 그곳에는 각 종목별 수익률만 담겨져 있을 뿐 ‘왜? 무엇 때문에?’ 그 종목에 투자했으며, 팔았는지에 대한 아무런 설명도 되어 있지 않습니다. 마치 ‘그게 다~ 회장님의 방침일쎄’ 라고 말하면 모든 이유가 다 설명되는 것처럼 얼버무려 버리는 게 태반입니다.

 

저도 3년 전에 그런 경험이 있습니다. 외국계 은행을 통해 가입한 지 2년째 되는 펀드였습니다. 수익률을 보니 수수료 떼고 나면 남는 게 하나 없었습니다. 그래서 왜 이렇게 운용이 되었는지 물었더니, 해당 은행의 직원은 “그게 설명하려면 상당히 복잡합니다. 펀드매니저들이 어련히 알아서 했겠습니까” 하며 얼버무리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자산운용사의 이런 성의 없는 태도가 앞으로는 변할 것 같습니다. 첫 테이프를 끊은 것이 바로 <한국밸류자산운용>입니다. 이 자산운용사는 지난 5월경, 특이한 ‘자산운용보고서’를 내놓았습니다. 자사에서 운용하는 펀드에 대해 총 24페이지에 달하는 자산운용보고서 책자를 만들어 고객에게 배포한 것이죠.

 

여기에는 펀드에서 운용하는 종목의 수익률뿐만 아니라, 종목에 투자하게 된 이유를 저PER주, 자산주, 성장주 등으로 나누어 설명해 놓았습니다. 게다가 그 동안 자사의 펀드매니저들이 잘못 운용하여 투자실패를 본 부분에 대해 비교적 진솔하게 인정해 놓은 대목도 있습니다. 펀드 선진국인 미국에서는 이미 수백 페이지짜리 자산운용보고서가 고객들에게 배달되고 있는 상황에서 우리는 이제 변화의 첫걸음을 뗀 것이라 할 수 있겠죠.
 

모름지기 펀드상품은 간접투자상품입니다. 우리가 자산운용사를 믿고 돈을 맡기면 펀드매니저들이 이를 운용합니다. 그리고 그 대가로 펀드수수료를 받아 갑니다. 우리가 돈을 내고 누리는 서비스가 그 동안 이 정도도 못해 왔다는 건 정말 억울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한국밸류자산운용의 변화된 자산운용보고서가 다른 자산운용사에 미칠 파급효과는 클 것으로 예상됩니다. 시장과 소비자는 현명해서 이런 움직임에 부응하지 않는 회사들을 외면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펀드 투자 수익률이 상승하든 하락하든 그 이유만큼은 알고 싶은 게 인지상정일테니까요.
증권회사의 PEF 운용역으로 있으며, 저서로는 '알기쉬운 금융상식1,2,3', '부자의 첫걸음 종자돈 1억만들기' 등이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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