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국가의 종말 : 기업이 지배하는 사회

입력 2005-10-09 09:24 수정 2005-10-08 09:26


네슬레는 어느 나라 회사일까요? 커피, 음료 등을 만드는 세계적인 이 회사는 과연 어느 나라 회사인지 알고 계신지요? 미국 사람들은 미국회사라 생각하고 영국 사람들은 영국회사라고 생각하는 이 회사는 다름 아닌 스위스 회사입니다.

 

하지만 네슬레는 결코 자신이 스위스 회사라고 내세우지 않고도 유럽 8위, 세계 31위의 거대한 기업으로 성장해 있습니다. 글로벌 기업답게 대부분의 생산과 마케팅 그리고 판매도 전세계적으로 일어나고 있습니다. 다만 우리가 이 회사를 스위스 회사라고 하는 것은 본사가 스위스 베베에 위치하고 있다는 이유 하나뿐입니다.

 

하지만 네슬레가 영원히 스위스 회사라는 법도 없습니다. 어떤 이유에서든 본사를 베를린으로 옮기게 되면 그때부터 독일 회사가 될 수도 있으니까요. 특히나 자본의 이동이 자유로운 유럽연합(EU)의 경우 이러한 일은 현실에서 충분히 가능합니다.

 

미국 대기업의 50% 이상이 법률상 본사를 美델라웨어(Delaware)주에 두고 있습니다. 이는 델라웨어주가 기업에게 유리한 법안을 만들어 놓고 대기업 본사를 적극적으로 유치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이주는 주재정의 30%가 유치한 기업의 법인세에서 나올 정도로 거의 기업 유치로 먹고 살고 있답니다. 최근에는 미국 기업뿐만 아니라 외국 기업의 본사도 델라웨어주로 향하고 있다고 합니다.

 

세계적 명품인 구찌(GUCCI)를 만드는 구찌그룹도 적대적 M&A를 피하기 위해 본사를 이탈리아에서 법적 제도가 자신에게 유리한 네덜란드로 아예 옮겨 버렸습니다. 이쯤 되면 이젠 기업을 국가의 경계에 맞춰서 구분하는 것은 점점 더 그 의미가 사라지고 있다고 봐야 할겁니다.

 

요즘 삼성 때문에 나라가 떠들썩합니다. 에버랜드 전환사채(CB) 저가(低價)발행에 대해 기어이 사법부는 유죄 판결을 내렸습니다. 삼성은 분명 대한민국 기업입니다. 따라서 대한민국이 정한 법을 어겼으므로 삼성은 벌을 받아 마땅합니다. 하지만 최근 참여연대나 국회에서의 소위 ‘삼성 때리기’에는 다소 감정적인 면이 없지 않은 것 같습니다. 삼성 공화국이란 말까지 나올 정도로 우리 사회에서 삼성의 독주가 계속 되므로 이를 견제하자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삼성 때리기가 과연 삼성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까요?

 

정부의 독재는 국민이 막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국민이 세금을 내고 국민이 선출하는 것이 정부이므로 그 명분 또한 타당합니다. 하지만 기업의 독주를 주주가 아닌 참여연대나 국회의원이 과연 어느 정도까지 막을 수 있을까요? 이런 활동으로 삼성의 후계구도까지 바꿀 수 있을까요? 그리고 후계구도를 바꾸면 우리 국민에게 무슨 이득이 있을까요? 이번 ‘삼성 때리기’는 많은 질문을 던지게 하는 사태가 아닐 수 없습니다.

 

몇 해전 외국계 펀드에서 삼성의 본사를 미국으로 옮기는 게 어떠냐는 제안을 삼성 측에 정식으로 한 적이 있습니다. 물론, 전문가의 말로는 현재 우리나라 법체계상 삼성의 본사를 미국으로 옮기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고 합니다. 하지만 이미 제품의 생산과 판매의 상당부분이 해외에서 일어나고 있는… 그래서 이미 글로벌 기업이 되어가고 있는 삼성이 언제까지 대한민국의 회사이며, 또 삼성의 발전이 대한민국의 경제적 부로 이어지는 것이 언제까지 지속될 것인지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미 기업은 국가의 경계를 벗어나고 있으니까요.

 

22세기 미래에는 어쩌면 두 가지 부류의 인간이 살게 되는 사회가 오게 될지도 모릅니다. MS나 P&G, 삼성과 같은 글로벌기업에 종사하며 모든 복지혜택을 누리는 1등 시민과 이러한 기업에 들어가지 못한 2등 시민들로 구성된 사회 말입니다. 지금과 같은 국가 개념은 이미 사라진 지 오래가 된 기업지배 사회 말입니다.

 

이런 사회에서 국가는 델라웨어주처럼 기업 본사를 유치하기 위해 기업에 아첨을 하는 신세로 전략하게 될지도 모릅니다. 우리 사회가 삼성의 독주에 두려워 하는 이유가 어쩌면 이런 가능성을 두려워하기 때문이 아닌지 하는 발직한 상상을 한번 해봅니다.
증권회사의 PEF 운용역으로 있으며, 저서로는 '알기쉬운 금융상식1,2,3', '부자의 첫걸음 종자돈 1억만들기' 등이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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