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_국민연금 vs. 한국의 거의 모든 상장기업들


 

이 기관의 대표가 떴다 하면 거의 모든 상장기업들이 나서서 응접합니다. 이 기관의 대표가 해외에 출장을 갔다 하면 어마어마한 글로벌 기업 CEO들이 줄지어 미팅을 요청하곤 합니다. 흔히 들어본 ‘잘 나가는’ 금융기업들 – 메릴린치라던지, 골드만삭스라던지 – 또한 이 기관 앞에서는 작아질 수 밖에 없습니다.

이 기관은 다양한 별명이 있습니다. 가장 잘 알려진 별명들로는 ‘자본시장의 슈퍼갑’, ‘주식시장의 큰 손’, ‘금융투자업계의 생명줄’ 정도가 있습니다. 그야말로 금융권의 갑(甲) 중의 갑 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기관은 한국 기업들에 미치는 영향이 상당합니다. 국내 투자시장에서 갑 노릇을 톡톡히 할 뿐만 아니라 나아가서는 글로벌 금융투자 시장에서의 입김도 굉장합니다. 이 기관, 대체 어디일까요?

NPS (National Pension Service), 즉, 국민연금공단 입니다.



 

국민연금공단은 거의 모든 기업들에게 갑입니다


 

'잠깐, 국민연금공단이라면 직장인들의 월급을 떼어가는 정부기관 아닌가요?' 라고 묻는 분들이라면 국민연금공단의 아주 작은 부분만 본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마치 텀블러를 사는데 텀블러 뚜껑만 들여다본 격입니다.

금융업계에 큰 관심을 갖지 않는 이들에게는 국민연금은 그저 연금을 거둬가는 공무원 집단일 뿐일 수 있습니다. 특히 요새 불거진 소득대체율 50% 논란의 중심이 되어 있기에, 일반 국민들이 볼 때에는 ‘공무원들이 다 그렇지 뭐...’라고 넘겼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국민연금의 막강한 파워는 바로 이렇게 거둬들인 막대한 기금에 있습니다. 생각해봅시다. 국민 모두에게 거두어 들인 돈을 가지고 은행 예금에 넣어둘까요? 아니죠. 엄청난 규모의 기금을 형성한 국민연금은 기금운용본부를 통해 이 막대한 자금을 자본시장에 투자합니다. 국내 주식을 사기도 하고, 해외 빌딩을 사기도 합니다.

얼만큼 큰 규모의 운용 금액을 갖고 있는지 감이 잘 안 올 수 있습니다. 다들 들어보았을 법한 미래에셋자산운용의 운용자산규모가 65조원*이니, 국민연금은 투자자로서 규모가 미래에셋자산운용의 일곱배 정도 되겠네요.

국민연금공단 조직도 (출처: 국민연금공단 웹사이트)



 

세계 3대 연기금인 국민연금: 자본시장의 슈퍼갑(甲)


 

세계 3대 연기금 중 하나이자 총 469조원**의 운용 자금을 굴리는 국민연금. 2015년 대한민국 정부예산이 376조원이니 그 규모를 상상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국민연금이 자본시장의 슈퍼갑이 될 수 있는 이유는 단순히 투자규모가 크기 때문만은 아닙니다. 투자액이 큰 것 뿐이라면, 다른 금융투자회사 회장님들이 국민연금을 경쟁자로 생각하고 견제를 하겠죠. 수익률을 따져가며, '국민연금보다 우리 자산운용사가 투자수익을 더 잘 낸다'는 등의 경쟁을 할 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앞서 이야기 했듯이, 글로벌 금융기업 CEO을 포함한 금융투자회사 임원들은 국민연금에게 철저히 을(乙)이 되어 버립니다. 국민연금과 수익률 경쟁을 하는게 아니라 국민연금을 찾아가고, 눈치보고, ‘슈퍼갑’으로 떠받들죠. 그 이유는 바로 국민연금의 자산을 위탁받아 운용하는데서 나오는 수수료 수입이 어마어마하기 때문입니다.

 

운용수수료를 먹기 위한 을(乙)의 치열한 경쟁


 

가지고 있는 돈(운용액)이 엄청난 국민연금은 다른 연기금과 마찬가지로 스스로 모든 투자결정을 내릴 수 없습니다. 개인이 소일거리로 주식투자를 할 때에도 어떤 포트폴리오를 짜야할지 고민되는데, 500조원에 달하는 투자결정을 내리려면 각계 각층의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게 당연할지도 모릅니다. 따라서 국민연금은 다양한 위탁운용사를 선정하여 기금을 운용하는데요, 이렇게 위탁운용사에 선정되면 운용수수료를 받을 수 있기 때문에 위탁운용 계약('mandate')을 따려는 업체들 간의 경쟁이 치열합니다.
치열한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서는 당연히 국민연금의 '예쁨'을 받아야겠죠? 위탁운용사를 뽑기 위해 국민연금은 다양한 기준을 마련하여 정량적/정성적 평가를 하는데요, 이를 통과하기 위해 자산운용사와 투자자문사 등은 오늘도 열심히 국민연금 투자운용역을 찾아갑니다.

국민연금의 갑의 위상을 잘 보여주는 금융권의 인사이드 조크가 있습니다. ‘일 하다가 짤리면 전주 가서 커피집 해야겠다’는 것입니다. 왜 전주에 내려가서 커피집을 하느냐면, 2016년에는 국민연금공단의 본부가 전주로 이전하기 때문입니다. 국민연금공단이 전주완주혁신도시로 옮겨가면 당장 모든 금융회사 담당자들이 전주로 기차타고 내려가서 줄을 서야할 판이니, 기다리는 길목에 커피집 하나 열면 돈을 벌겠다는 자조적이지만 국민연금의 위상을 잘 드러내는 이야기 입니다.

 




* 2014년 9월 말 기준, 미래에셋자산운용 홈페이지

** 2014년 12월 말 기준, 국민연금공단 홈페이지

 
'갑을사전'을 통해 순진하게만 바라보았을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를 조금 더 적나라하게 드러내고자 합니다.
작은 것에도 집착하고 보이는 모든 것을 한 번 더 의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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