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내커

[경제] “얼마나 우리를 우습게 알았으면…” 진로 입찰을 보며

한번 실수는 병가지상사(兵家之常事)라고 합니다.

그럼 두 번 실수는 무엇일까요? 그건 ‘실수’가 아니라 ‘실력’이겠죠.

 

진로가 하이트맥주로 넘어 가게 되었습니다. 진로 인수에 대한 입찰에서 최고 가격인 3조1,600억원을 써낸 하이트맥주가 우선협상대상자로 되었고 이 돈으로 진로의 빚을 갚게 되면 하이트맥주는 명실공히 진로를 인수하게 됩니다.

 

진로의 채권은 외국계 투자은행인 골드만삭스가 대부분 가지고 있었습니다. 따라서 이번 딜(deal)로 인해 대략 1조원 정도의 차익을 먹게 된다고 합니다. 그렇다고 골드만삭스가 가만 앉아서 1조원이라는 어마어마한 돈을 먹게 되는 건 아닙니다. 나름대로 노력(?)을 했습니다. 진로의 잠재력을 보고 꾸준히 진로 채권을 사 모은 게 그것이고요. 그리고 막판에 정말 멋지고 담대한(?) 액션(action)을 취했다는 걸 들 수 있습니다.

 

진로의 인수가격은 3조를 훨씬 웃돈다.” 라는 말이 바로 그것이었죠.

 

와~ 무슨 근거로 그런 말을…

근거야 대충 얼버무리면 되는 거고요. 중요한 건 당시의 상황이었습니다.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나 애용하는 두꺼비 진로소주. 아 참. 이제는 대한민국뿐만 아니라 현해탄 건너 일본국 국민에게도 인기짱인 JINRO!! 이 진로에 대해 국내 쟁쟁한 기업들이 법정관리에서 졸업하면 반드시 먹겠다고 목을 빼 놓고 기다리고 있던 상황이었습니다.

 

인수가격으로 누가 얼마를 써 낼지에 대해 심리전이 한참이던 그 중요한 시점에서 골드만삭스는 용감무쌍하게도 “내가 계산해 보니 진로 가치는 3조6천억원이나 되더라.” 라는 ‘터무니 없는’ 말을 한 거죠.

 

모두들 대략 2조원 조금 넘으면 될 거라고 생각했는데 이를 완전히 뒤집는 발언이었죠. 모두들 한입으로 골드만삭스가 오버하고 있다고 했지만 그래도 입찰 가격을 써 넣는 기업들 입장에서는 아무리 터무니 없는 가격이라고 해도 은연 중에 마음에 걸렸답니다.

 

‘혹시 입찰 참여 기업 중에서 한 놈이 멍청하게 골드만삭스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고 3조가 넘는 가격을 써내면 어쩌지…’ 불안했습니다. 하기야 실제로 진로의 가치가 2조든 아니면 4조든 상관없이 가장 높은 가격을 써내는 기업에게 인수권은 돌아가는 게 입찰의 법칙 아니겠습니까? … 정말 고도의 심리전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골드만삭스가 의도를 했던 의도하지 않았던 어쨌든, 결과적으로 그 멋진 액션은 성공했습니다. 최고 낙찰가가 3조1,600억원이 되었으니 말입니다.

 

아직 완전한 인수를 위해서 몇 가지 문제는 남아 있지만, 아무튼 진로는 국내 기업의 손으로 들어가게 되어 우리의 마지막 자존심은 지켰다고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러는 사이에 골드만삭스는 엄청난 돈을 벌었습니다.

 

휴~ 정말 맥이 빠집니다.

 

이번 진로 입찰 건을 보면서 예전에 제일은행을 사들여 엄청난 수익을 낸 뉴브리지캐피탈이나, 서울 테헤란로의 스타타워 빌딩을 매매해서 또한 짭짤한 수익을 낸 론스타의 사례들이 왜 자꾸 오버랩 되는 지 모르겠습니다.

 

이쯤 되면 실수가 아니라 ‘실력’이라고 해도 뭐라 할말이 없겠습니다. 그리고 금융 노하우와 전문인력을 키우지 않는 이상 이러한 실력은 계속 될 것이구요…

 

<후일담>

진로의 주채권자이자 법정관리로 가게 만들었던 장본인인 골드만삭스는 하이트맥주가 엄청난 가격을 써내 입찰에서 낙찰되자 이번에도 ‘대담+용감무쌍한’ 발언을 합니다.

 

“하이트맥주가 진로를 너무 높은 가격에 사가게 되었기 때문에 장기적으로 하이트맥주에게 부담이 될 거다” 라며 하이트맥주 주식에 대해 사실상 매도 의견을 낸 거죠.

 

언제는 진로의 적정가격이 3조6천억원이라 해 놓고 막상 하이트맥주에게 넘어가고 나니 이제는 너무 비싸게 샀다고 매도의견까지 내놓다니… 단물 다 빼먹은 껌도 버릴 땐 이렇게 하지 않는데 말이죠. 우리가 얼마나 만만했으면 이러는 지 정말 뭐라 할말이 없습니다.

증권회사의 PEF 운용역으로 있으며, 저서로는 '알기쉬운 금융상식1,2,3', '부자의 첫걸음 종자돈 1억만들기' 등이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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