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 리디노미네이션: 이젠 굴비상자에 2,000억원이!?!

입력 2004-09-25 22:34 수정 2004-09-25 22:34
얼마 전부터 우리나라 화폐의 액면금액을 조절해야 한다는 이른 바 ‘리디노미네이션(redenomination)’ 문제가 제기되고 있는 데요. 특히 최근 이헌재 부총리 겸 재경부장관이 이를 검토하고 있다는 발언과 한국은행에서 구체적인 안을 잡고 있다는 이야기로 이젠 본격적으로 논의가 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리디노미네이션 어떤 건가?



원래 영어로 ‘디노미네이션(denomination)’이라 하면 화폐의 단위를 뜻합니다. 여기에 ‘리’ 라는 접두어를 붙인 ‘리-디노미네이션(re-denomination)’은 말 그대로 기존 화폐단위를 새롭게 바꾼다는 의미이죠.



다시 말해 화폐의 실질적인 가치는 그대로 두고 액면을 동일한 비율의 낮은 숫자로 표시하는 조치를 말하는데요. 예를 들어 화폐 단위를 1,000분의 1로 낮출 경우, 5,000원짜리 설렁탕은 5원이 되고 2백만원 짜리 노트북은 2천원이 되고 3억 짜리 집은 30만원이 되는 거죠. 이렇듯 화폐 단위만 바뀌어 모든 자산의 실질적인 가치는 변함이 없는데 액면만 줄어드는 것이죠.



3억 짜리가 30만원이 된다고 하니 신기하기도 하고 재미있기도 하네요.^^ 하지만 이렇듯 단위만 바뀌고 실질적인 가치에는 아무런 변함이 없는데, 왜 굳이 리디노미네이션을 실시하려는 걸까요?



왜 실시하려 하나?



한 국가에서 리디노미네이션을 실시하려는 것은 그 나름대로 이유가 있습니다.



1) 우선 자국통화의 국제적인 위상 제고를 들 수 있는데요.

특히 우리나라의 경우 그 동안의 물가 인상 등으로 외국의 돈과 비교해 볼 때 액면금액이 너무 커 우리의 경제 규모나 위상에 비해 너무 가치가 없어 보이는 면이 없지 않습니다.

모름지기 화폐는 그 나라 경제의 상징입니다. OECD 국가 중 우리나라처럼 달러환율이 1,000원이 넘는 나라는 없거든요.



2) 그리고 화폐의 액면표시가 너무 높아지다 보니, 웬만하면, 몇 백억 몇 조가 되어 버립니다.

따라서 몇 년 후면 우리나라 경제규모를 표시할 숫자가 조를 넘어 ‘경’이라는 생경한 숫자를 사용해야 할 웃지 못할 일이 벌어 지거든요. 또한 10만원권 100만원권 고액권 화폐 발행도 불가피하게 되고요. 따라서 화폐의 액면단위를 낮춰줄 필요성이 있는 거죠.



3) 다른 부수적인 목적도 있는데요. 화폐 단위를 바꾸게 되면 새로운 화폐를 발행해야 하고 이를 구권(舊券)과 교환하는 과정에서 지하에 묻혀 있었던 지하자금을 양성화 할 수 있는 계기도 되겠죠.



문제점도 있다!



하지만 문제점도 있습니다.



뭐든지 새롭게 바뀌면 혼란이 있게 마련이겠죠. 그것도 다름 아닌 화폐의 단위가 바뀌는 중요한 일이면 더욱 그렇겠죠.



1) 일단, 비용이 많이 듭니다.

기존의 화폐를 대신해서 새로운 화폐를 찍어 내야 하고요. 또 현금인출기나 기타 자동화기기에서 화폐를 판독하는 센서들을 다 교체해야 하는데 그 비용만 해도 최소 2조 6천억원이 든다고 합니다.



2) 또한 물가상승 요인도 있습니다.

기존에 900원하던 물건을 만약 1,000분의 1로 줄이면 0.9원이 되는데 이 경우 사람들의 습관에 의해 우수리 절상으로 1원이 될 가능성이 많겠죠. 그러다 보면 자연스럽게 물가가 올라가는 결과를 초래하게 되겠죠.



3) 그 외에도 기존 체제에 대한 변동으로 인한 국민들의 불안 심리도 무시 못합니다.

특히 요즘과 같은 경기불황시기에는 더욱더 그러하겠죠. 최근 들어 리디노미네이션의 논란이 본격화 되면서 불안심리와 착시현상을 반영해 발 빠른 투자자들이 현금자산을 대신해 부동산 투자에 나서고 있다고 합니다. 게다가 그림이나 골동품 등 실물자산 투기 움직임도 감지가 되고 있습니다.



4) 그리고 가장 크게 우려되는 문제가 부정부패에 사용할 미끼돈(?)의 운반이 쉬워진다는 겁니다.

최근 이슈가 되고 있는 안상수 인천시장의 굴비상자 뇌물 사건에서 볼 수 있듯이 현재의 화폐 체제로는 굴비상자에 기껏해야 2억원 밖에 들어가지 않습니다만, 앞으로 1,000분의 1로 리디노미네이션이 되면 지금 화폐가치로 2,000억원이 들어가게 됩니다. 이제는 차떼기 같은 거 할 필요가 없습니다. 조그마한 담뱃값 속에도 현재 화폐가치로 1억원은 충분히 들어갈 테니 말이죠.



이렇듯 말 많고 탈 많은 리디노미네이션!!!



하지만 무조건 불안해 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정부에서도 과거 화폐개혁 때의 혼란을 경험 삼아 큰 충격이 없는 리디노미네이션 실시에 대해 연구하고 있습니다. 그 한 예가 만약 이 제도가 실시되면 향후 1년간은 신분을 묻지 않고 무조건 신권과 구권을 바꿔 준다든지 그 이후에도 언제든지 구권을 교환할 수 있게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아직은 논란 중인 리디노미네이션을 정부가 실시한다고 하더라도 하루아침에 실시하지는 않을 겁니다. 사전 공론화 과정과 준비과제 들이 많기 때문에 현 시점에서 추진해도 적어도 3~4년 정도 이후에나 가능하겠죠. 따라서 괜한 불안으로 동요하실 필요도 없으며, 또한 이를 의식해서 성급하게 부동산이나 실물투기 분위기에 편승하여 그릇된 의사결정을 하시는 일도 없으시길 바랍니다.
증권회사의 PEF 운용역으로 있으며, 저서로는 '알기쉬운 금융상식1,2,3', '부자의 첫걸음 종자돈 1억만들기' 등이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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