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 배드펀드: 우리가 과연 자본주의를 하는가?

입력 2004-04-23 09:59 수정 2004-04-23 09:59
아시아 2대 불가사의에 대한 우스개 소리가 있습니다. 중국이 공산주의를 하겠다는 것과 한국이 자본주의를 하겠다는 것이 바로 그것입니다.



원래 상업(商業)의 ‘商’이라는 한자도 중국의 ‘商’이라는 지방의 사람들이 하도 장사를 잘해 ‘그들이 하는 일’이라는 말에서 유래되었다고 합니다. 이렇듯 장사 속이 밝은 중국 사람들이 공산주의 혁명에 성공했고, - 지금은 비록 경제에는 자본주의 바람이 불긴 하지만 - 여전히 공산당이 1당 독재를 하고 있는 것은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런데 한국사람 들이 자본주의를 하겠다는 것이 불가사의라는 건 또 무슨 말일까요. 자본주의는 자본의 논리로 움직이는 경제 체제입니다. 사유재산을 인정하고 이를 이용해서 부를 축적하는 것을(물론, 법과 도덕을 지키면서 축적해야 겠지만…) 당연하게 여기는 제도인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나라 사람들은 어떤 면에선 아무리 생각해도 자본주의자들이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회사에서도 수익을 많이 내는 사람이 인센티브를 많이 받아가면 조직에 와해가 생깁니다. 주위 사람들이 쉽게 이를 인정하지 않기 때문이죠.



“지가 뭐 잘났다고 인센티브를 그렇게 많이 가져가. 운이 좋아서 수익 좀 낸 걸 가지고…”



그래서 마치 공산주의처럼 벌어들인 수익을 골고루 나눕니다. 조직에 미칠 파장을 우려하는 거죠.



수익만이 그런 건 아닙니다. 손실이 나도 책임을 지는 사람이 없죠. 그냥 나누어서 유야무야 해버리는 온정주의가 발휘(?) 됩니다. 이 역시 사회에 미칠 파장이 크기 때문인 거죠.



이번에 중기청에서 벤처캐피털(창투사) 육성 방안의 하나로 500억원 규모의 배드펀드(Bad Fund)를 조성한다는 안이 검토 중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그 내용을 보면 이것 역시 ‘과연 우리나라가 자본주의를 하겠다는 거냐?’ 하는 의문이 듭니다.



배드펀드(Bad Fund)란 그 동안 창투사가 투자했던 투자자산 중 부실자산(벤처기업 중 실적이 악화되거나 사실상 영업이 중단된 회사의 주식, CB 등)을 정부가 출현한 펀드에서 사주겠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창투사 부실자산 전문처리펀드’가 되는 셈이죠.



창투사의 투자자산은 지난 99년, 2000년 벤처열풍이 한창일 때 엄격한 심사기준 없이 공격적(?)으로 벤처기업에 투자했다가 경기악화 등으로 사실상 휴지조각이 되어버린 것들이 상당 부분입니다. 이런 부실자산들을 많이 가지고 있는 창투사는 현재 존폐의 기로에 서 있습니다.



중소기업청에 따르면 전체 424개 창투사와 창업투자조합 가운데 올해와 내년 말까지 만기가 도래하는 조합이 총 237개로 1조5천억원에 이른다고 합니다. 이 중에서 적어도 2천~5천억원에 달하는 투자자산이 사실상 회수불능에 빠져 있고 따라서 정부에서 이러한 자산을 대신 인수해서 관리하지 않으면 벤처업계나 창투업계에 미칠 파장이 엄청나다는 겁니다.



그런데 정부가 출현하겠다는 500억원 규모의 배드펀드는 누구의 돈일까요? 궁극적으로 바로 우리의 세금 아니겠습니까? 다시 말해 경제에 미칠 파장 때문에 고통을 분담하자는 거죠. 사실 이런 일들이 우리에게 그다지 새로운 건 아니죠. IMF 이후 투신사가 그랬고, 벤처기업의 프라이머리 CBO가 그랬고, LG카드도 그렇기 때문이죠.



물론, 힘들고 어려운 사람과의 고통을 분담하는 것은 좋은 일입니다. 우리는 이를 선행(善行)이라 합니다. 하지만 이러한 선행이 ‘돈을 벌겠다’고 투자의 세계에 뛰어 들었던 창투사를 구제하는 데까지 적용되어야 하는지 솔직히 의문입니다. (참고로 저는 창투사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만약 이러한 일들이 계속되면 창투사는 더욱더 도덕적 해이에 빠질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투자를 잘못해도 정부가 떠안아 줄 거라는 식의 믿는 구석을 만들어 주는 셈이니까요.



투자의 세계에서 돈을 벌면 그 성과를 있는 그대로 인정해주고, 또 실패를 하면 그 책임을 있는 그대로 져야 하는 게 Fair한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우리 경제 체제는 자본주의임이 확실하니까 말이죠.
증권회사의 PEF 운용역으로 있으며, 저서로는 '알기쉬운 금융상식1,2,3', '부자의 첫걸음 종자돈 1억만들기' 등이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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