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내커

[금융] 적대적 M&A에 대한 변명

작년 8월초 정몽헌 회장의 사망 소식으로부터 시작해서 거의 8개월을 끌었던 현대그룹과 KCC(금강고려화학)간의 경영권 분쟁이 지난 3월 말로 현대측의 승리로 일단락을 지었습니다.

당시 KCC측은 BNP파리바투신운용에서 운용하는 사모펀드 등을 이용해서 현대그룹의 수장(首長)격인 현대엘리베이트 주식 20.63%를 매입하면서 규정 위반여부를 두고 한창 문제가 되었던 걸로 기억합니다.

원래 주식매집시 5%이상의 지분을 보유한 주주가 1% 이상의 지분변동이 발생하면 5일 이내 공시를 해야하는 5%룰이 있는데 이를 어겼기 때문이죠.

결국은 올해 2월 11일, 증선위에서 KCC가 그 동안 매입한 현대엘리베이트의 지분 20.78%를 전량 장내에서 매각하라는 명령이 내려지면서 정상영 명예회장을 필두로 한 KCC의 현대엘리베이트 M&A는 사실상 무산되어 버렸고, 현대엘리베이터 주총에서 현정은 회장의 이사선임이 가결되면서 8개월간의 치열한 전투(?)는 대단원의 막을 내리게 되었답니다.

비단 현대그룹과 KCC 뿐만 아니라 최근 들어 M&A(기업 인수, 합병)에 대한 기사들을 자주 접하게 됩니다. 대형 은행간의 합병이나 SK그룹을 뒤흔들었던 소버린의 SK㈜ 지분매집도 그렇고요. 그 외에도 작은 규모의 M&A까지 합치면 꽤 많은 숫자가 될 것 같습니다. 지금도 어디 선가 M&A의 물밑작업이 일어 나고 있는 지도 모르죠.

서로가 원해서 하는 우호적 M&A의 경우엔 별다른 이견이 없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피합병되는 회사(Maiden)는 원하지 않는데 어쩔 수 없이 M&A를 당하게 되는 적대적 M&A의 경우, 우리 사회에선 이를 바로 보는 시각이 대체적으로 비판적인 것 같습니다.

열심히 피땀 흘려 일구어 놓은 회사(Maiden)를 돈으로 밀어붙여 잡아 먹는 적대적 M&A 추진세력(Raider 또는 Black Knight)을 마치 피도 눈물도 없는 기업 사냥꾼처럼 보는 시각이 바로 그것이죠.

그런데 과연 적대적 M&A가 나쁘기만 한 것일까요?

과연 피합병당하는 Maiden은 순수한 눈망울을 꿈뻑거리는 한 마리의 연약한 사슴이며, 이를 먹으려고 호시탐탐 노리는 Raider는 간악하고 사나운 승냥이 일까요? 불행히도 우리가 사는 세상은 그러한 이분법이 그대로 적용될 만큼 단순하진 않겠죠.

적대적 M&A의 경우 경영의 효율화에 많은 기여를 합니다. 부정직하거나 무능한 경영진을 축출하고 보다 정직하고 효율적으로 회사를 경영할 경영진으로 보충함으로써 경영효율을 증대시킬 수 있습니다. 시장에서 언제든지 M&A 당할 수 있다는 잠재적 위험이 없다면 대주주나 경영자는 다른 주주의 의견을 무시한 채 방만한 경영을 일삼을 수 있지 않겠습니까.

일반적으로 적대적 M&A는 회사의 내,외부적인 이유로 인해 주가가 많이 떨어졌을 때 당할 위험이 큽니다. 아무래도 주식을 매집하려는 Raider의 입장에선 주가가 조금이라도 쌀 때 일을 도모하려고 할테니까요. 소버린이 SK㈜를 매집한 것도 주가가 많이 빠졌을 때였거든요.

이런 이유로 기업의 경영진들은 주가관리를 통해 높은 주가를 유지하려고 노력하겠죠. 그러다 보면 다른 주주들도 경영자를 신뢰하게 될 것이니 아무리 그 회사를 인수하려는 세력이 있다 해도 높은 주가에 주식을 한꺼번에 대량으로 사기도 부담스러울 테고 주주들도 함부로 그 회사 주식을 팔지 않겠죠.

다시 말해 미꾸라지도 메기라는 천적이 있어야 행동도 빠르고 건강해 진다는 논리와 마찬가지죠. 자신이 대주주라고 그 상황에만 안주해서 아무렇게나 회사를 경영한다면 항상 적대적 M&A를 통해 회사를 뺏길 수 있다는 긴장감이 기업을 더욱 더 투명하고 건강하게 만드는 거죠.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 동안 투명하지 못한 기업지배구조로 말이 많았던 국내 대기업의 고질적인 문제에 대해 적대적 M&A는 좋은 채찍이 된다고 하겠습니다.

우리나라의 경우 대기업에는 수장(首長)이 되는 모회사라는 개념이 있습니다. 이 회사에서 계열사를 좌지우지할 수 있는 지분을 다 가지고 있고 그룹의 오너는 이 모회사의 지분만 가지고 있으면 전 계열사를 지배할 수 있는 시스템으로 되어 있죠. 현대그룹의 경우에도 현대엘리베이트가 그런 회사이며, SK그룹의 경우 SK㈜가 그런 역할을 했죠.

그렇다 보니 이 모회사들이 적대적 M&A의 표적이 되기 쉽습니다. 그룹의 오너가 쉽게 지배할 수 있는 만큼, Raider 역시 적대적 M&A를 통해 모회사만 지배한다면, 나머지 계열사는 줄줄이 사탕으로 먹을 수 있기 때문이죠.

따라서 우리나라의 경우 이러한 적대적 M&A가 좀더 원활해진다면, 대기업의 얽히고 설킨 지배구조를 개선할 수 있는 강한 채찍이 되지 않겠습니까?

물론, 적대적 M&A에 대한 부정적인 의견도 있습니다. 실제로 적대적 M&A의 대상이 되는 기업은 경영의 효율화 여부보다는 재무적 요인에 의해 결정되는 경우가 많다는 거죠.

예를 들면, 합병을 원하는 Raider는 피합병 회사인 Maiden이 많은 현금을 보유하고 있는 회사이길 원할 것입니다. 현금만큼 안전한 게 어디 있겠습니까? Maiden의 주식을 매집해서 새로운 최대주주가 되면 현금이 고스란히 자기 수중에 들어오는 거나 마찬가지니까요. 다른 자산은 평가하기도 힘들고 나중에 그 가치가 어떻게 될지도 모르기 때문에 현금보다는 못하죠.

그렇다 보니 기업의 경영진들은 적대적 M&A를 당하지 않기 위해 현금보유를 하지 않으려 하는 경향이 있고 또한 단기적인 경영성과에만 초점을 맞추려는 경향이 있다는 거죠.

이렇듯 세상엔 무조건 옳고 무조건 그른 일은 없답니다. 다만 저는 우리나라에서 적대적 M&A가 무조건 터부시 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적대적 M&A도 우리 기업에 좋은 역할을 하니까 말입니다. 채찍도 필요할 땐 필요하니까 말이죠.

증권회사의 PEF 운용역으로 있으며, 저서로는 '알기쉬운 금융상식1,2,3', '부자의 첫걸음 종자돈 1억만들기' 등이 있음.

ⓒ '성공을 부르는 습관' 한경닷컴,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