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내커

[재테크] 목돈이 있어야 뭐라도 할 수 있다.

제가 사회에 첫발을 디뎠던 직장에서 알게 된 동료 K씨가 있습니다. K씨는 저보다 6개월 일찍 입사를 한 저와는 동갑인 직원이었죠. 사람이 재바르지 못하고 활달한 성격이 아니라 직장 동료들에게 큰 인기는 없었던 걸로 기억합니다. 하지만 심성이 곧고 근실하며 근무했던 부서도 저의 바로 옆 부서에다 나이도 같아서 그런지 저하고는 참 친하게 지냈습니다.

한번은 K씨가 카드 대금청구서를 보고 있길래 제가 재미 삼아 한번 보자고 하니 ‘너무 많이 나와서 보여주기가 꺼린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도대체 얼마나 나왔나 해서 제가 청구서를 빼앗아서 보았죠. 과연 얼마나 나왔길래 많이 나왔다고 했을 까요? 지금도 기억합니다. 4만5천원…

K씨의 평균 1개월 카드 사용금액이 2만원을 넘지 않았다는 걸 저는 그때에 비로소 알게 되었죠.

그럼 K씨는 월급 받는 돈으로 무엇을 했을까요? 당시 아직 미혼이었고 부모님과 같이 사는 K씨는 자신의 용돈 외에는 별달리 생활비가 필요 없었죠. K씨는 월급날이 되면 항상 그 옆에 있는 투자신탁회사에 가서 수익증권에 가입을 했죠. 자그마치 월급의 80%를 말이죠.

월급날이면(그 당시는 봉투에 넣어 주었거든요.) 저도 종종 K씨를 따라 투자신탁회사에 갔었죠. 그러다 저도 그 지점의 수익증권을 가입하기도 했고요. 물론, 저는 K씨만큼 많은 금액을 예금하지는 않았지만요… 지금도 생각납니다. K씨가 자신의 불어나는 통장을 보며 흐뭇해 하는 표정이 말이죠.

그러다 보니 자연히 K씨에게 빈정대는 직원도 있었죠. 당시만 해도 IMF 전이며 금융기관은 망하지 않는다는 불문율이 있던 때 였죠. 그래서 그런지 저희 또래 직원들은 거의 매일 술집에 갔었고 직장인이면 대부분 잘 아는 `N분의 1`로 한달 월급을 미리 다 날리곤 하던 게 일상 생활이었죠.

그런데 K씨는 결코 소주집이나 호프집 이상을 가지 않았습니다. 그 왜 동료직원끼리 친목 도모하다보면 소주 마시고 나서 분위기가 물이 올라 2차를 가게 될 때도 있지 않습니까? 그런데 만약 2차 장소가 단란주점 같은 곳이면 K씨는 절대로 따라 가지 않았죠.

“저 친구 해도 너무해 남자가 저렇게 쫀쫀해 가지고 어디 출세 하겠어.” 몇몇 와일드한 기분파 직원들은 그를 싫어 했었죠.

그렇다고 K씨가 술을 못 마시는 건 절대 아니었습니다. 거의 말술 수준 이었죠. 하지만 소주집이나 호프집 이상을 안가는 게 그의 철학이었나 봅니다. 특히 단란주점 같은 곳은 남이 쏜다고 해도 따라 가지 않았습니다. “세상에 공짜가 어딨습니까? 결국 한번 얻어 먹으면 한번 사야 되는데요.” 제가 같이 가자고 했을 때 K씨가 했던 말입니다.

지독하다구요? 그래도 적당한 수준에서는 자기가 돈을 낼 때도 있었습니다. 단, 자기가 정해 놓은 선 이상을 넘지 않았죠. 우리는 대부분 남의 눈치 때문에 또는 그날 기분 때문에 종종 도를 넘는 소비를 했지만 말이죠.

IMF 이후 저희 회사도 구조조정이 있었고 급기야 합병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런 분위기 속에서도 주가는 급등을 해서 너도 나도 주식 투자를 했었죠. 없는 돈에 대출까지 해서 수천만원을 배팅하는 직원들도 많았습니다. 하지만 K씨는 절대 주식을 하지 않았죠. K씨의 행태는 한결 같았습니다. 여전히 급여 날이 되면 은행을 찾았죠. 이제는 수익증권이 불안하다며 은행의 예금으로 바꾼 것만 달라 졌을 뿐이죠.

저는 얼마 후 새로운 직장으로 자리를 옮겼죠. 처음에는 새 직장에 적응하느라 예전 동료들과의 연락이 뜸했었죠. 그러던 어느날 K씨로부터 연락이 와서 한번 만나게 되었죠. 제가 근황을 물어 보니 그 동안 모아 놓은 돈으로 아파트를 하나 샀다는 거 였죠.

당시에 송파구의 모 아파트였는데 1억6천 정도 주고 샀다고 하더군요. K씨 같은 성격에 대출을 받아 샀을 리는 없고 대체 얼마를 모았었냐고 물어보니 아주 자랑스럽게 이야기 하더군요.

“제가 원래 2억을 목표로 돈을 모았거든요. 그 동안 주식이다 뭐다 해서 우여 곡절도 많았지만 그래도 딴 짓 안하고 저축만 해서 목표를 채웠죠. 금리 한창 높을 때 재미도 좀 봤고요. 그래서 이번엔 살집 마련을 목표로 했죠. 집을 사려고 부동산도 기웃거려보니 그것도 몰랐는데 참 재미있더라구요. 물론, 살 집이니까 가격 오르고 내리는 건 별로 신경 쓰지 않지만…”

그때 저는 정말 부러웠죠. 같은 월급 받아 가며 살았는데 누구는 2억을 모으다니(당시 제가 다니던 종금사의 급여수준이 좀 센 편이긴 했지만요. 참고로 K씨가 2000년에 구매했던 그 아파트, 지금은 3억대 입니다.)

그리고 작년 즈음인가 당시 기분파 였던 동료 직원 중에 한명이 늦깍이 장가를 간다고 해서 모임에 나간 적이 있습니다. 그 자리에서 그 직원이 하던 말이 참 새삼스럽게 와 닿더군요.

“요즘 K씨 근황 들어보니 참 부럽더군. 예전에 내가 쫀쫀하다고 계속 씹었는데 말이야. 이번에 장가 갈려고 하니 뭐 모아놓은 돈이 있어야지 전부 빚으로 가는 거야. 예전에 월급 팍팍 주던 때 모아 놓는 건데 말이야…”

결국 30대 중반의 전반전에서는 K씨의 판정승이었던 겁니다.

재테크의 테크닉을 아는 것도 중요합니다. 하지만 때가 되면 자연스럽게 관심이 가게 되고 재미를 붙이게 됩니다. 그런데 재테크의 세계에서는 그 때라는 것이 을 의미하는 게 아닙니다. 10년이 지나도 잔고가 마이너스인 사람은 때가 오지 않은 것이죠. 목돈을 2억 정도 모았는데 어느 누구라도 부동산이나 좋은 투자처에 눈길이 안가겠습니까?

주변에 보면 재테크를 어떻게 해야 잘 하느냐? 하고 물어 보는 분이 많습니다. 하지만 그전에 그냥 무식(?)하게 돈을 모으는 게 더 중요합니다.

구두 살 때가 되면 주변 사람들의 구두만 보이고, 취직하려고 하면 신문에 취업광고만 보입니다. 일단 인내와 끈기로 대략 1억원만(지금 살고 있는 전세 값 빼고 말이죠.) 모아 보세요. 그런 다음엔 자연스럽게 경제신문의 부동산 지식도 투자방법도 눈에 속속 들어 올 것입니다.

증권회사의 PEF 운용역으로 있으며, 저서로는 '알기쉬운 금융상식1,2,3', '부자의 첫걸음 종자돈 1억만들기' 등이 있음.

ⓒ '성공을 부르는 습관' 한경닷컴,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