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테크] 초원의 얼룩말이 달리는 이유

입력 2002-10-25 00:31 수정 2002-10-25 00:31
TV 프로그램 중 꾸준한 인기를 타고 장수하는 프로그램은 뭐니 뭐니해도 ‘동물의 왕국’이겠죠. 저도 즐겨 보는 편인데요. ‘동물의 왕국’을 보면 아프리카 초원의 풍경이 자주 등장합니다. 더 넓은 초원에서 무리를 지어 풀을 뜯고 있는 초식 동물들과 그 옆에서 배를 깔고 엎드려 있는 사자의 눈초리… 서로 생존을 위한 끊임 없는 신경전이 벌어 집니다.




그런데 왜 초식 동물들은 그렇게 무리를 지어서 초원을 다닐까요? 처음엔 저는 소위 말하는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는 아주 기본적인 교훈을 저러한 미물들도 다 알고 있구나 하고 생각했죠. 다시 말해 초식 동물들이 저렇게 무리를 지어 풀을 뜯고 있으면 제아무리 사자라고 해도 쉽게 근접하지 못하는 게 아닌가 하고 말이죠. 얼룩말 한 마리일 때는 나약한 존재지만, 저렇게 뭉쳐 있으면 사자의 기습에도 손쉽게 대응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생각 말이죠.




하지만 이내 저의 생각이 잘못 되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배가 고파진 사자 몇 마리가 협동을 해서 얼룩말을 쫓아 가면 얼룩말 떼들은 서로가 사자의 공격에 견제를 해주고, 이쪽이다 저쪽을 조심하라 코치를 해주며 달아나는 게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그냥 막무가내로 달아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다가 한 마리가 사자의 날카롭고 육중한 앞발에 한대 맞고 스러지면 그 동안 막무가내로 달아나던 얼룩말들은 달리기를 멈추고 다시 유유히 풀을 뜯는 게 아니겠습니까!




그들은 알고 있었던 거죠. ‘다행이다. 이번의 사냥감은 내가 되지 않았구나. 이제 저 사자의 배가 다시 꺼질 때까지는 안심하고 풀을 뜯을 수 있겠구나’ 그곳에는 불쌍하게 사자의 먹이감이 된 죽은 동료에 대한 애도의 심정은 전혀 없었던 것입니다. 이게 바로 무정한 ‘초원의 법칙’ 아닐까요? 그제서야 저는 아프리카 초원의 초식 동물들이 무리를 지어 다니는 의미를 알게 된거죠. 그들은 본능적으로 생존의 법칙을 안 것이죠. 혼자서 풀을 먹게 되면 사자의 눈에 띄기만 하면 영락없이 죽은 목숨이 되지만, 이렇게 무리 지어 움직이면 사자가 달려 올 때 수백마리의 무리 중 무조건 한 마리 보다만 빠르게 뛰면 된다는 것이죠. 즉, 꼴등만 하지 않으면 살 수 있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터득한 거죠.




사자가 달려 드는 이유는 배를 채우기 위해 초식 동물 한 마리만 잡으면 되는 것이지, 재미로 여러 마리의 초식 동물들을 죽이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죠.




그래서 초식 동물들은 유유히 풀을 뜯다가 동료들이 갑자기 뛰기 시작하면 자신도 화들짝 놀라 무조건 동료들과 같은 방향으로 뛰기 시작하죠. 사자가 어디서부터 공격을 하기 시작하는지 알 필요도 없고, 알 경황도 없죠. 무조건 죽어라고 꼴등만 하지 않고 뛰면 되는 거죠. 그러다가 뒤쪽에서부터 달리는 속도가 줄어들면 ‘아 어느 놈이 잡혔겠구나. 이제 그만 달리고 풀이나 뜯어야지’ 하면서 달리기를 멈추는 거죠. 오늘은 누가 사자의 밥이 되었는지 그 또한 알 필요도 없고 알 경황도 없습니다. 풀 뜯어야 되니까요.




우리는 이러한 초식 동물의 습성을 보고 바보 같다고 나무랍니다. 좀더 머리를 쓰면 서로의 힘을 합해 사자의 공격을 막을 수 있는 경보체계나 무기를 만들 수도 있을 텐데 하고 말이죠. 하지만 불행히도 얼룩말과 같은 초식 동물은 인간처럼 뛰어난 두뇌도 서로 의사를 전달할 언어체계도 없습니다. 그래서 맨날 사자한테 당하고 사는 거죠.




그런데 말이죠. 과연 우리가 이러한 초식 동물들을 나무랄 수 있는가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주식시장에서 우리들의 모습은 어쩌면 얼룩말과 같은 것 아닌가 싶습니다. 얼마 전 주가 600선이 붕괴되고 신문에서도 ‘주가 대폭락, 세계경제 공황상태 오나’ 하는 식의 기사가 증권면을 장식했을 때를 기억하실 겁니다. 불과 2주전인 걸로 기억합니다. 그 때 개미들인 개인투자자는 너도 나도 투매를 했습니다. 그런데 그 몇일 후 주가는 다시 반등했죠.




이쪽에서 팔기 시작하면 본능적으로 불안하여 우르르 팔기 시작합니다. 마치 동료가 뛰기 시작하면 자신도 화들짝 놀라며 같이 뛰는 얼룩말처럼 말이죠. 왜 뛰어야 하는지, 어디로 뛰어야 하는지 알지도 못하면서 말이죠.




주가가 떨어지고 매도 물량이 나오기 시작하면 우리들은 불안해 지기 시작합니다. 그러다가 ‘아이고 이게 지금 장난이 아니구나!’ 하면서 마구 투매를 하기 시작하는 거죠. 이때가 되면 내가 투자한 주식은 지금 어떤 가치를 가지고 있고, 따라서 왜 팔아야 하는 지에 대한 이성적 판단은 기대하기 힘들게 되죠. 그냥 옆에서 파니까 불안하고 초조해서 손실을 감수하고 팔기 시작합니다. 그러다 다음날 주가가 올라 버리면 땅을 치고 통곡하죠…




최근에 저는 책을 통해 워렌 버펫을 만나고 있습니다. 그는 1957년부터 1969년 사이 다우존스 공업지수의 수익률이 거의 오르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펀드 수익률을 22%포인트 더 높게 실현한 경력의 소유자이죠. 특히, 인터넷주가 상종가를 치던 1999년에도 여전히 전통적인 산업의 내재가치가 높은 회사에 투자해서 인터넷 주가 하락기에 더욱 빛을 발한 사람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가 운영하는 ‘버크셔 해더웨이’라는 회사의 사무실은 세계 금융의 중심지인 뉴욕의 월 스트리트에 있는 게 아니라 미국 네브라스카주 오하마라는 곳에 있죠. 그리고 최근까지도 사무실 내에 그 흔한 컴퓨터나 주가 단말기조차 없었다고 합니다.(지금은 어떤지 잘 모르겠지만 말이죠 ^^;)




그의 투자전략은 의외로 아주 간단하답니다. 경기의 변동이나 주가의 변동에 개의치 않고 내재가치가 있는 기업이 일시적인 현상으로 말미암아 주가가 빠져 있을 때 매수를 해서 계속 보유를 하는 것입니다. 그러다가 자신이 생각하는 주가 수준까지 왔을 때 매도를 하는 것이죠. 따라서 그는 자신이 잘 알지 못하는 산업이나 회사에 대해서는 절대 투자를 하지 않는다는 거죠.




그의 이러한 투자 방식이 무조건 옳다고 할 수는 없겠죠. 하지만 근본적인 대책을 세우지 않고 자신이 어느 방향으로 왜 달려야 하는지도 모르고 막무가내로 달리는 초원의 얼룩말처럼 주가의 변동에 일희일비하며 부화내동하는 우리들이 본 받아야 할 모습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증권회사의 PEF 운용역으로 있으며, 저서로는 '알기쉬운 금융상식1,2,3', '부자의 첫걸음 종자돈 1억만들기' 등이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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