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하기로 했어? 그리고 그 옆에 있던 노신사는 누구냐?>

영남의 차를 타기가 무섭게 질문을 쏟아냈다.

“아이구 형님, 숨 넘어 가겠습니다. 찬찬히 다 말씀 드릴게요.”

노신사는 큰 주먹 출신으로 재벌의 보디가드를 지냈으며 승규와는 20년 이상 친하게 지내온 사이라는 것, 그리고 「남차장」으로 통한다고 설명 했다.

“결론적으로 말씀드리면 승규선배가 아무 문제없이 사회생활 할 수 있게 되면, 그리고 우리가 도와서 그렇게 되면 30억 원쯤 내 놓겠답니다.”

<그만하면 구미가 당기긴 하겠는데...... 하늘의 뜻이 어떠하냐가 문제지.>

“잘만하면 형님 뜻을 펼 수 있지 않겠습니까?”

<잘 되면 그렇지! 잘 못 되면?>

“잘 못 돼 봤자 본전 아니겠습니까?”

<본전이라니, 큰일 날 소리 하는구먼>

 

돈에 대한 집착, 너무도 쉽게 「잘 되겠지, 좋은 게 좋은 거지 뭐」 하는 식의 영남의 태도에 불안감이 싹트기 시작했다.

집 앞에 날 내려주고 그냥 가려는 영남을 <차 한 잔 하고 가> 하고 붙잡았다.

부산 쪽의 인연이 구해다 준 「남해 보리암 차」를 달일 준비를 하면서 「황당했던 지난 사건」을 얘기해줘야 하겠다고 생각했다.

영남이 날 그림자처럼 붙어 다니지만 때로는 1~2개월 쯤 못 볼 때도 있었다.

상해중의약대학 침술 연수 갔을 때, 환자와 함께 강원도의 약수터 갔을 때, 황당한 사건에 휘말렸을 때, 등등 제법 많았다.

일이 끝나고 나면 대개는 전말을 보고하듯 얘기해 줬지만 더러는 말 않고 넘어 가기도 했었으므로 영남은 내게 서운함을 간직하고 있을지도 몰랐다.

 

주차하고 올라온 영남이 차를 보더니 “우와 남해 보리암차 아닙니까? 공(孔) 선생이 보내 주신 게 아직 남아 있었습니까?”

차에 대해서는 도사라고 할 수 있는 공태욱(孔太旭)은 부산에서 서울의 타워팰리스로 매주 출근했던 열성파 회원이었다.

차는 좋은 물로 도기에 잘 달여 내는 것이 중요하고 정성이 중요하며 차를 달이는 사람의 깨끗한 마음이 중요함을 역설했던 공선생.

가끔 전화를 해서 가을에는 가을전어를, 봄에는 봄도다리를 잡수러 오라고 했던 공선생이 갑자기 그리워졌다.

<날씨 풀리면 부산 한번 가지 않을래?>

“좋습니다.”

맞장구치는 영남에게 두 손으로 차를 따르면서 「황당한 사건」의 보따리를 풀었다.
 

<몇 년 전에 내가 고양시에서 파주 가는 쪽에 있는 보광사 밑의 민가에서 다리 아픈 노인 돌봐주며 있었던 적이 있었지? 그러다가 3개월 가까이 잠적했던 것도 기억 할 테고. 그 다음엔 인왕산 밑에서 현묘학회(玄妙學會)와 선도원 맡았던 시절이고 그 다음엔 타워팰리스로 갔고>

“보광사 밑에 계실 땐 가끔 가 뵈었고 그러다가 어느 날 말씀 없이 사라지셔서 깜짝 놀랐던 적이 있었습니다.”

<그때 사실은 횡재를 꿈꾸며 과거의 인연에 이끌려 도곡동에 있는 럭키 아파트에서 식물인간처럼 누워있는 딱한 처녀를 만나고 있었어. 그 처녀의 명은 경신(庚申)년, 기축(己丑)월, 계축(癸丑)일 계축(癸丑)시 대운10 이었네.>

 
연세대 법학과를 졸업한 뒤 한국경제신문 산업부 기자로 활동하면서 명리학을 연구하여 명리학의 대가로 손꼽힌다. 무료신문 메트로와 포커스에 '오늘의 운세'를 연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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