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편한 자리는 되도록이면 빨리 털고 있어나는 것이 상책이다.

적당한 때에 영남이가 나타나 고마웠다.

내가 일어서면서 승규와 악수를 나누는데 강박사가 커피숍 모서리 깊은 곳 구석 쪽에서 일어서며 손을 흔들었다.

한 시간 정도는 걸릴 것으로 예상한 승규와의 만남 시간은 30분도 안되어 끝나버렸다.

강박사 쪽으로 다가 가면서 느꼈다. 무척 만나고 싶어 했던 사실이 나의 내면 진하게 자리 잡고 있었음을……

 

강애란(姜愛蘭)박사와 김경호(金景浩) 사장은 서울대 문리대(지금의 사회계열) 같은 학과 동문이다.

둘 다 경기(京幾高 와 京幾女高) 출신이다.

결혼 후 아들을 낳았고 강박사는 하버드대학으로 유학을 떠났으며 김사장은 직장 다니면서 아들을 키웠다.

내가 그들을 만났을 때 강박사는 대학 원장이었고 김사장은 대기업에 납품하는 중소기업 사장이었으며 아들은 중학교 3학년 이었다.

강박사는 저녁 귀가 시간이 대체로 늦었다. 교수모임, 정치가와의 만남, 동창모임 등 왕성한 사회 활동이 원인 이었다.

제법 술이 취해서 오는 때도 있었다. 그 즈음 강박사는 스트레스와 뜻대로 안된 일 때문에 짜증스런 생활을 하고 있었다. 대통령 선거에 관여해 잘 만 했으면 장관이 될 뻔 했으나 틀어져 버렸던 것이다.

 

김사장은 잘나가는 아내의 늦은 귀가와 자신보다 똑똑한 아내의 많은 모임에 대해 가장으로서의 권위가 안 서고 자존심이 상했던지 화를 내지 않을 일도 터무니없이 화를 내기 일쑤였다.

김사장은 때때로 미친 듯이 고함을 지르며 꺽꺽 울기도 해 [정말 미쳤나?] 하고 가족들이 생각할 정도였다.

김사장은 가족 몰래 간경변증인가 간경화로 치료를 받으며 약을 먹고 있었다.

병원을 몰래 다니는 것은 가장으로서의 권위(?) 때문이며 그런 사실을 가족이 눈치 채지 못하는 것은 자신에게 애정이 없기 때문으로 여겼다.

 

아들은 아들대로 한숨 쉬는 삶을 살았다.

아들은 부모가 자신보다 사회적 성취감에 매달려 산다고 느꼈다.

다행인 것은 능력 있는 부모가 용돈을 넉넉하게 줌으로써 돈을 잘 쓸 수 있는 것이었다.

반면 이것저것 함부로 사먹으며 수음(手淫=손장난) 을 지나치게 해 손가락의 지문이 잘 나오지 않을 만큼 망가져 가고 있었다.

손바닥에는 항상 진땀이 고여 축축했다.

그들에게 다가가면서 그들에 대한 기억들을 끄집어내고 있었다.
 

강박사는 신(申)월의 경신 (庚申)일, 계미(癸未)시였고 김사장은 진(辰)월에 을축(乙丑)일, 정축(丁丑)시, 아들은 기사(己巳)년, 정묘(丁卯)월, 기축(己丑)일, 계유(癸酉)시였던 것 까지만 기억이 났다.

남자로 태어났더라면 좋았을 강박사. 아무리 좋은 아내라도 만족 할 수 없는 김사장.

김사장의 명은 [여성적이며 돈을 사랑한다]고 할 수 있다는 설명을 한 것도 기억났다.

아들은 음팔통(陰八通)이어서 여성 그 자체라고 할 만하며 친구를 [잘 사귀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고 한국보다는 미국이 잘 맞을 것이라고 했었던 것도 떠올랐다.

집안의 기둥은 사실 강박사라고 할 수 있는데 김사장이 자신이 남자고 가장이라고 내 세운다면 불협화음이 생길 수 있다고 지적한 것도 생각났다.

그들은 아무 문제 없이 잘 살고 있는 것일까?
연세대 법학과를 졸업한 뒤 한국경제신문 산업부 기자로 활동하면서 명리학을 연구하여 명리학의 대가로 손꼽힌다. 무료신문 메트로와 포커스에 '오늘의 운세'를 연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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