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상 승규와 마주앉게 되자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떠오르지 않았다. 그저 멍하니 바보처럼 웃고 있는데 승규가 입을 열었다.
“오랜만에 뵙습니다 선배님, 영남이가 선배님 말씀을 하도 많이 해서 아직까지 귀가 멍멍할 정도입니다.”
여전히 딱히 할 말이 떠오르지 않아 가만히 듣고 있었다.
“대학생 시절에는 선배님이 모범생이셨고 저는 농땡이 아니었습니까, 제가 운이 좋아 어떻게 사법시험에 합격했지만 사실 따지고 보면 제 인생은 개판에 가깝습니다.”
‘개판이라... 사법부가 개판이라는 소린가...? 유전무죄 무전유죄의 중심에 있었단 얘긴가?’
개판의 정확한 실상은 가늠하기 어려웠다. 그렇지만 솔직하고 화끈한 구석은 있어 보였다.
“영남이가 사주 상으론 아직 갈 때는 아닌 것 같다고 하는데......”
혼잣말인 듯 아닌 듯, 뒤로 갈수록 목에 힘이 빠지는 듯 “왜 이렇습니까?” 까지는 들렸는데 그 다음 말부터는 잘 들리지 않았다.
<오진일 수도 있을 터이니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인명재천(人命在天)이란 말처럼 모든 게 하늘의 뜻이니 마음 편하게 잡수는 게 제일입니다.>
「굼벵이도 밟으면 꿈틀 거린다」는 속담은 그 뒤에 「사람도 운명에 밟히면 꿈틀 거린다」가 생략된 것일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열심히, 희망을 향해, 행복추구에 목숨 건다’는 명분을 내세우며 자신의 이익을 위해 싸우고 이기적인 나날을 보내는 사람들.
특히 성공할 것처럼 보이는 사람일수록 대개는 지독히 전투적이고 겉으론 부드러워도 속으론 스스로를 신(神) 처럼 생각하며 세상을 좌지우지하려 드는 속성이 있는 것이다.
<사주는 절대적일수도, 상대적일수도 있으며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는 것은 위험합니다. 하늘과 지구, 그 양면성을 잘 살려야 함에도 그렇지 못한 경우가 많습니다. 아픔이 병으로 작용하는 것이 가장 고통스럽고 힘들 수 있습니다. 그 본질은 태양계의 부조화로 비롯된 것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만이 갖는 독특한 태양계의 기운을 가지고 있습니다. 지구상에 있는 모든 개개인은 자신만의 소행성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볼 수 있는 것이지요.>
강의하듯 말이 길어지고 있는데 영남이 나타났다.
<오 헨리의 마지막 잎새 읽으셨지요? 신념과 희망을 놓지 마십시오. 영남이가 잘 할
것입니다. 저도 옆에서 돕겠습니다>.
승규는 “선배님께서 직접 좀 맡아 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하고 붙들었다.
 

이미 하지 않기로 작정한 터이지만 그 자리에서「하기 싫다」고 딱 잘라 말할 순 없었다.
<저도 돕고 싶은 마음은 태산같지만 기력이 쇠해서 거동도 힘이 듭니다. 그래도 젊은 영남이가 기운이 싱싱하니 저보다 나을 것입니다. 일심동체의 기운은 부부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닙니다. 모든 파트너, 환자와 의사, 선생님과 학생, 동업자, 주인과 점원처럼 관계를 맺고 사는 모든 인연이 그렇지 않겠습니까?>
한 마음 한 뜻으로 통하는 게 참 중요함을 역설했다.
누구나가 갖고 사는 「나만의 인생」은 사실은 조상과 후손의 중간자 역할을 할 뿐이고 잘 되고 잘 못 되고는 전적으로 조상과 후손의 기운에 의해 좌우 된다고 할 수 있다.
연세대 법학과를 졸업한 뒤 한국경제신문 산업부 기자로 활동하면서 명리학을 연구하여 명리학의 대가로 손꼽힌다. 무료신문 메트로와 포커스에 '오늘의 운세'를 연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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