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남은 “설날 오후2시에 S호텔 커피숍에서 승규와 만나기로 했다” 면서 “오후 1시쯤 사부님 모시러 오겠습니다” 하고는 사라졌다.
승규는 무슨 생각으로 날 만날까?
무조건 살려 내라고 할까?
어떻게 변했을까?
대학 때의 승규는 핸섬보이에 멋 내고 다녔었다. 날씬 했고 노는데 주력했던 것으로만 기억에 남아있다.
당시 나는 기를 쓰고 고시공부에만 매달려 있었으므로 「저런 법대생도 있는가?」 싶은 생각 속으로 승규를 밀어 넣었던 기억이 떠올랐다.
공부하지 않는 법대생을 「한심거사」로 매도하며 쳐다보지도 않았던 시절의 대학생활은 추억 속으로 묻혀 버렸는데…….
그런데 승규는 당당히 고시에 패스했고 나는 낙방거사로 지내다 「이상한 길(?)」에 빠져 수십 년 만에 다시 만나게 된 것이다.

 

운명을 연구하고 보다 행복한 삶의 길을 탐구하면서 명리학의 오묘함에 놀라고 두려워하게 되는 것은 세월이 흐를수록 심해지는 것 같다.
설날 아침, 목욕하고 제사지내는 동안 승규 만날 생각으로 머릿속은 복잡해졌다.
제자들의 방문은 입춘 날에 한 바탕 치렀고 구정 때는 친척집 조카와 조카들이 달고 오는 아들, 딸들에게 한바탕 세뱃돈 지불하고 덕담 몇 마디 하는 것으로 때운다.
어울려 고스톱치고 술 한 잔 하며 시간 보낼 여유가 내겐 없다.
동지 때도, 신정 때도, 입춘, 구정 모두 새해로써의 행사를 하는 셈인데 이때 나는 간절히 기도하는 것이 있다.
<사람다운, 제대로 된 제자를 한 명 이라도 보내 주십시오.>
재주만 배우려고 드는 제자, 배신하는 제자, 욕하며 다니는 제자 등.
제자들은 한결같다고 할 만큼 주판 알 튕기며 계산하는 장사치뿐이었다.
어찌 보면 그래도 영남이가 제일 낫다고 할 수 있었다.

 

생식 한 그릇 타서 먹는데 영남이 나타났다.
세배를 하더니 가부좌 틀고 앉는다.
한손은 동그라미, 한손은 바닥이 하늘로 향하게 하여 절간의 부처님 모양을 흉내 내고 있다.
5년쯤 전에 차를 뽑으면서부터 해마다 영남은 동지, 신정, 입춘, 구정, 이렇게 다 설이라며 세배를 했다. 그럴 때 마다 나는 영남의 하늘로 향한 손에 백 원짜리 동전 7개씩을 놓으며 「복 받아라」 라고 했다.
이 행사는 영남의 일주 정유(丁酉) 때문에 생겨난 것으로 새해 기념식이 됐다.
정화일주(丁火日柱)는 벽갑인정(劈甲引丁) 이면 최고라고 할 만 하기 때문이다.
 

백 원짜리 동전은 갑목(甲木)을, 7개는 경금(庚金)을 각각 뜻한다.
영남이 쓰는 통장 비밀번호, 이메일 주소와 비밀번호, 공인 인증번호, 차량번호, 핸드폰 번호, 금고, 사무실집기, 집안 가재도구, 집 좌향 등 모든 일상에서 명리학적 요소가 없는 것은 하나도 없다.
차를 살 때 애국심 운운하며 검은색 에쿠스를 뽑으려고 했을 때부터 벽갑인정의 활용법은 심화되기 시작했다.
에쿠스는 하극상의 기운이 강하기 때문에 ‘죽 쒀서 남 주고 싶으면 에쿠스 타라, 검은색보다는 흰색이 잘 맞는다’ 고 살짝 힌트를 줬다. 영남에게 흰색은 ‘돈이 되는’ 의미가 있다.
영남의 차는 흰색 벤츠다.
처음엔 c220을 몰았는데 어느 날 s500으로 바뀌어 있었고 <5라는 숫자는 아들이 속 썩이고 사고 나고 돈 나갈 수 있다> 고 했더니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번호로 바뀌고 말았다. 영남의 차는 s700 인데, 흰색, 벤츠, s700 모두 금수지기(金水之氣)를 강화하기 위한 묘법(妙法)이라고 할 수 있었다.
연세대 법학과를 졸업한 뒤 한국경제신문 산업부 기자로 활동하면서 명리학을 연구하여 명리학의 대가로 손꼽힌다. 무료신문 메트로와 포커스에 '오늘의 운세'를 연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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