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내커

정말 나는 혁신적일까?

정말 나는 혁신적일까?


혁신이라는 말은 항상 새롭게 뭔가를 만들어 간다는 말인데, 뭐하나 제대로 변변하게 이루어 놓은 게 없는 구멍가게 사장들도 혁신을 해야하나? 그럼 ‘안정화’가 먼저인가, ‘혁신’이 먼저인가?

돌이켜보면 나의 어려움은 2005년도에 시작되었다. 유럽에서 섬유쿼터가 풀리고, 중국산 발가락양말이 유럽에 필요한 수요량의 몇 배이상이 수입되면서 시장은 순식간에 초초과 공급상태가 되었다. 어떻게 보면 지금 내가 겪고 있는 어려움은 안정화 또는 공고화를 추구하다가 다양화 내지는 위험회피를 제대로 하지 못해서 겪는 것이다. 사실 필맥스는 발가락양말에서 나름대로 다양화와 혁신을 이루었다고 생각했다. 문제는 필맥스라는 게 그저 시작한 지 2-3년에 불과한 신생기업이었고, 유럽시장에서 패셔너블한 발가락양말의 개념을 처음 소개하였다. 그리고 우리는 그 새로운 개념을 시장에서 공고하게 하면서 점유율을 높이고자 했다. ‘내가 뭘 잘못했지?’ 전 세계에서 필맥스가 처음으로 만든 제품을 꼽아보자. 3-4세 유아용 발가락양말, 순수 천연 비단으로 만든 ‘비단양말’, 스포츠 양말과 같은 타월구조의 아웃도어 양말, 참숯발가락양말, 은나노 발가락양말, 발열성 섬유로 만든 겨울용양말, …. 그리고 위 제품중 발열성양말을 빼고는 모두 다 나름대로 시장성을 인정받아 상당한 판매성과를 이루기도 하였다. 이만하면 충분히 혁신적이지 않았나? 그런데 왜 난 시장을 지배하고 있지 못할까? 도대체 얼마나 더 혁신적이어야 할까? 1999-2003년 사이에 우리는 여러 가지 신제품을 내면서 황무지같던 유럽의 발가락양말시장을 활성화시켰지만, 2004-2005년 사이에 시장자체가 무너지는 것을 보면서 우리는 아연실색할 수밖에 없었다.

차근차근 돌이켜 볼 수록 아가사 크리스티가 지은 ‘그리고 아무도 남지 않았다’를 연상케 한다. 인디언 섬이라는 무인도에 여덟 명의 남녀가 정체 불명의 사람에게 초대받는다. 여덟 명의 손님이 섬에 와 보니 초대한 사람은 없고, 하인 부부만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다. 뒤이어 섬에 모인 열 사람이 차례로 죽어간다. 한 사람이 죽자, 식탁 위에 있던 열 개의 인디언 인형 중에서 한 개가 없어진다. 인디언 동요의 가사에 맞춰 무인도에 갇힌 열 사람은 모두 죽고 한 사람도 살아 남지 못한다. 인디언 섬에는 이들 열 명 외엔 아무도 없다. 섬에 갇힌 사람이 모두 살해되었으니 범인은 도대체 누구일까?

마찬가지로 시장에서 거의 항상 기업들을 갈아치우는 범인도 있다. 내가 장사를 시작한 17년동안 무수히 많은 사람과 업체를 만났지만, 아직도 남아있는 사업체는 반이나 될까? 인디언인형이 하나둘 사라지듯, 내가 알던 사업체들은 소리소문도 없이 사라져갔다. 그럼 범인은 누굴까? 그건 말 그대로 시장 그 자체이다. 기업은 인간과 마찬가지로 죽기위해 태어난 운명이다. 보통 3-4년, 길면 10년, 아주 드물게 100년을 넘은 기업도 있지만. 기업은 시장보다 조금 빨라도 죽고, 조금 늦어도 죽고, 못하면 죽고, 모자라면 죽고, 너무 잘하려다 죽고 …… 정말 마음에 들지 않지만 기업은 시장에 적응해야 한다. 중이 절 싫으면 중이 떠나야지, 절이 중을 떠날 수는 없다. 카스 소여가 지은 ‘그룹 지니어스’를 읽다보니 비즈니스를 하는 것도 마치 즉흥극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에서 주요한 사례로 드는 것은 연극에서 배우들이 대본없이 관객과 호흡하면서 진행하는 즉흥극이다. 그래 맞다! 비즈니스도 사실은 끊임없이 벌어지는 새로운 사건, 환경등에 수시로 적응해야 하는 일종의 즉흥극이라고 보면 어떨까? 사실 난 너무 도식적으로 비즈니스를 해왔다고 할 수있다. “배우들이 만들어가는 즉흥극은 여러 갈래로 뻗어나갈 수있는 가능성이 항상 열려있다. 즉흥극 배우들은 다의성을 예술적인 형식으로 고양시킨다.”

하지만 나의 비즈니스 언어는 오로지 하나의 의미만을 갖고 있었다. ‘필맥스’ 그 이름이 세상만사를 비추어보는 프리즘이었다. 내가 보는 세상은 일단 ‘필맥스’라는 프레임에 고정이 되어있었다. 그 프레임안에서 책을 읽고 해석해왔던 것이다. 그 것도 내가 해왔던 일에 비추어 세상을 해석해왔지, 세상이 어떻게 왜 변하는 지에 대한 해석은 하지 않았다. 시간상으로 따지면 불과 4-5년사이에 유럽과 미국에서 중국산 양말제품의 수입수량을 연간 4-5억 켤레로 제한하는 쿼터제가 있는 세상에서, 누구나 무한정으로 미국과 유럽에 양말을 수출할 수있는 세상으로 바뀌었다. 하지만 난 여전히 그 틀안에서 우리가 품질과 가격이 우수한 선도자이니 경쟁자가 들어오더라도 그 잇점을 살릴 수있다는 교과서적인 틀안에서 비즈니스를 보았다. 그러니까 못되 먹은 형으로만 여겨지던 ‘놀부’도 시대가 바뀌니까 부지런하고 시대를 잘 읽는 사람으로, ‘흥부’는 어리버리하게 있다가 그저 운이 좋아서 제비가 물어준 박씨로 벼락부자가 된 사람으로 새로이 해석해서 마당극을 하는 데, 난 그 변한 마당극을 제대로 볼 줄을 몰랐던 셈이다.

한달에 약 11.57권을 읽으면서, 난 세상을 다양하고 변화있게 볼 수있는 안목을 가지려고 노력한다고 생각했지만, 실제로 돌이켜 보면 그렇지 않았다. 특히 양말의 상황이 어려워진 이후에는 더욱 그랬다. 번트 슈미트가 지은 ‘빅싱크 전략’을 읽으면서 난 ‘작은 생각’에 머물러 있었음을 깨달았다.

“ ‘작은 생각’은 ‘대담한’ 아이디어를 내놓지 못하면서도 현상 유지에 집착하고, 예전과 똑같은 절차, 계획방식, 전략지도, 연구보고서등에만 매달리고 있다. ‘작은 생각’은 다음 분기의 수익보고서에 온 정신이 가있다. ‘작은생각’은 항상 일이 벌어져야 발동하고, 그 것도 아주 느리게 반응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왜 그렇게 수많은 기업들이 전략을 세울 때 이런 ‘작은 생각’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일까? ‘작은 생각’은 관리자들이 잘 알고 있는 텃밭이기 때문이다.”

“ ‘큰 생각’은 비전을 추구하는 창조적인 사고방식이며 ‘대담한’ 아이디어와 행동을 불러일으키는 리더십 스타일이다. ‘큰생각’은 앞장서면서 생각하는 방식이다. 아이디어를 수집하고 평가하며 전략을 개발하고 실행하는 데 있어 나름의 창의적인 방법론과 도구를 갖고 있다. ‘큰생각’은 경쟁의 본질을 바꾼다. 어떤 업종에서 ‘큰생각’이 하나 실현되면 업종은 완전히 바뀐다. 과거로 돌아가는 법은 없다.”

이미 시장의 큰 틀은 바뀌었는 데도 독일과 핀란드의 파트너들이 커다란 기적을 만들어주기만을 기다리며 발가락양말의 전성기를 회상하고 있었다. 그러면서 좀 더 효율적으로 일할 생각과 공장유지비를 충당하는 현상유지적인 활동만 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다가 핀란드에서 ‘맨발신발’을 개발했을 때 난 좀 더 커다랗게 전략을 만들어야 했다. 나는 내 깐에는 창조적이고, 항상 새로움을 구한다고 했지만, 결과적으로 보면 ‘작은 생각’의 범위를 벗어나지 못했다. 양말이 어려우면 새로운 아이템을 구해서 새로운 시도를 해보고, 필맥스가 아닌 새로운 브랜드를 추구해보거나, 유럽과 카나다가 아닌 중남미나 미국을 좀 더 적극적으로 시도해보았어야 했다는 생각이 이제사 든다. 아니면 아예 업종을 바꾸어서 무역이 아닌 종목으로 가보는 시도도 해보았어야 하지 않을까? 가장 좋은 방법은 기존 아이템의 시장을 넓히면서 새로운 품목으로 제품의 판매범위와 시장범위를 같이 넓혀놓았다면 좋을 것이다.

문제는 혁신이란 것이 내가 무엇을 찾고 있을 지 모른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기존의 일어났던 일들을 모아두고 정리하는 것은 명확하게 드러난 문제를 풀어가는 데 유용하지만, 혁신은 뭔가 문제가 있지만 그걸 어떻게 풀어가야할 지 모를 때 일어나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일들은 각자의 독특한 상황에서 벌어지는 것이기에 어느 교과서나 책에서도 그 전례를 찾아보기 어렵다. 그래서 해결책도 막막한 상태에서 필요한 것이 혁신이다. 기존의 시스템을 조금 바꾸는 것은 ‘개선’일 뿐이다. 물론 개선도 필요하기는 하다. 처음부터 완벽하게 시작하는 장사는 없다. 그러니 일단 시작하고 조금씩 바꾸어가면서 소비자의 취향에 맞추어가는 것도 필요하다. 하지만 장사는 그리 쉬운 문제가 아니다. 어느 날 갑자기 애플에서 스마트폰을 내놓았다. 그러자 일반 핸드폰을 하던 수많은 업체들, 그 안에서 일하던 종업원들은 갈 곳을 일었다. 이런 경우는 아무리 자기 안에서 개선을 한다고 해서, 좀 더 일을 효율적으로 하여 비용을 줄인다고 해서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스마트폰시장에 적응하거나, 아니면 새로운 업종으로 변경해야 한다. 결과적으로 스마트 폰은 핸드폰 시장뿐만 아니라, 닌텐도의 게임기 시장, MP3, 자동차 네비게이션, 지하철의 무가지 시장을 순식간에 없애 버렸다. 모두다 최전성기를 구가하면서 휘파람을 불다가 1년도 안되는 아주 짧은 시기에 거대한 몇 개의 산업이 휘파람처럼 날라 가버렸다.

이제와서 보니 처음 발가락양말을 시작할 때 이것저것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내는 것은 사장이라면 누구나 일상적으로 하는 것이었고, 또한 자기가 이루어 놓은 것을 더욱 확실하게 키워가고자 하는 것도 일상적인 사장들의 일이다. 그런데 그 안에서 몰입하다보니 더 크게 변해야 하는 시점을 놓쳤다. 그것도 일상적인 사장들의 일이고, 사라진 기업들의 일이었다. 현재의 일을 잘해야 하지만, 그걸 잘 부셔서 새로운 수익원을 만들어내는 ‘창조적 파괴’를 잘해야 한다. 그래서 ‘혁신’이 어려운 것인가보다.

사진출처 : http://kevicrental.tistory.com/44

89-95년 대한무역진흥공사 근무, 95년부터 드미트리상사 운영.
Feelmax 라는 브랜드로 발가락양말을 핀란드등에 수출하고, 맨발 운동용 신발을 수입하고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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