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내커

아웃소싱의 길목에서

사업을 하면서 자기 생산시설을 보유한다는 것은 둘 중의 하나이다. 아주 크게 성공하거나, 남들보다 크게 망하거나.

 자동차부품을 주로하는 무역회사로 시작한 나는 애초부터 공장을 보유하려는 생각은 없었다. 그런데 어쩌다보니 발가락양말을 하게 되었고, 또 어쩌다보니 공장을 갖게 되었다. 처음에는 조그맣지만, 유럽의 바이어들이 주문량을 늘리면서 공장의 규모도 커졌다. 그러면서 필맥스 제품의 우수성과 독특함이 시장에 퍼지면서 홈 페이지를 통하여 OEM생산에 대한 문의가 들어오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 모든 요구에 응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Feelmax만을 위하여 양말을 만들기로 이미 파트너들과 협의를 하였기 때문이다. 문제는 유럽에 중국산이 들어오면서 시장이 무너지기 시작한 2005년경이었다. 

우리는 ‘시장의 경쟁’에 대하여 잘못 생각하고 있는 것이 있다. ‘독점적인 시장은 성장에 한계가 있다. 그래서 경쟁자가 있어야 시장이 커간다’. 어느 정도는 맞는 말이다. 단, 경쟁자도 잘 만나야 한다. 예를 들면 ‘삼성과 LG’와 같은 경쟁자라면 시장이 같이 키우면서 서로의 파이도 키워갈 수 있다. 삼성과 LG의 경쟁은 어느 곳을 보나 사생결단의 싸움은 아니었다. 두 그룹의 경쟁은 ‘누가 더 먼저, 더 많이’의 싸움일 뿐이다. 그 과정은 상생이면서 파이를 키워가는 게임이었다. 삼성 LG는 매 시장마다 독립된 게임을 벌렸다. 그러나 실제 게임판은 한국시장 전체였고, 게임의 결과를 현재까지로 돌아본다면 삼성LG뿐만 아니라 주변인까지 이득이 되는 플러스 섬 게임이었다. 흔히 생각하는 내가 이겨야 네가 지는 사생결단의 게임이 아니다. 얼핏보면 경쟁자와의 관계는, 경쟁적인 것으로서 승리와 패배의 관계다. 경쟁자가 게임에 들어오면, 당신은 잃게 마련이다. 그러나 일단 게임에 들어온 뒤에 당신이 경쟁자와 상호작용을 하면서 함께 승리할 수있다면, 그렇게 많이 잃는 것은 아니다. 이는 경쟁자들과 전적으로 전쟁만을 하는 것이 아니다. 결과론적으로 보면 삼성과 LG는 좀 다른 방법의 게임을 한 것이다. 

삼성LG는 제품의 질, 서비스의 질을 경쟁했지 가격경쟁을 하지 않았다. 바로 상대방을 무한절벽의 낭떠러지로 떨어뜨리지 않는 전술이다. 그 것은 바로 마케팅의 방법을 달리하는 것이었다. 삼성이 글로벌 차원의 스포츠 마케팅을 대대적으로 추진한다면, LG는 권역별로 토착화된 스포츠마케팅을 구사하고 있다. 가령 삼성이 전 유럽을 대상으로 브랜드 홍보를 하는 반면, LG는 거점국가를 선별하여 집중 공략하는 전술을 주로 사용하였다. ‘중국에서는 탁구로, 이라크와 브라질에서는 축구로’라는 모토가 있을 정도로, LG는 철저한 현지화전략으로 스포츠마케팅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만일 이들이 무한 소모적인 가격경쟁을 하였다면 현재와 같은 상생발전은 하지 못하였을 것이다. 삼성LG는 50년간 서로의 뺨을 후려치기는 했지만 밥 그릇을 깨는 경쟁자는 아니었다. 삼성LG는 끊임없이 게임을 변경하면서 확대시킨 것이다.


그런 경쟁자를 만나는 것은 서로에게 행운이다. 하지만 아쉽게도 중국의 경쟁자는 그렇지 못했다. 우선 무한가격 경쟁이 그들과의 주된 경쟁방법이다. 그건 그렇다 치더라도, 시장을 망가뜨리지 않을 정도의 품질은 되어야 했지만, 그들은 기존의 소비자들을 실망시키는 품질의 발가락양말로 유럽의 시장을 공략하였다. 그저 가진 것은 대량 생산을 통한 가격경쟁 뿐이다. 그 당시만해도 Feelmax의 가격은 켤레당 10유로가 넘었었다. 한국돈으로 켤레당 1만원이다. 지금도 우리는 그 정도의 가격을 유지하고 있다. 문제는 우리 가격과 품질이 아니라, 그 당시의 유럽시장이 무엇이 좋은 지를 판단할 정도로 성숙되지 못했던 점이다. 거의 시장에서 독점이나 다름없어서 백화점이나 의류 전문판매점에서 우리 이외의 공급자를 찾고 있던 차에 유럽의 섬유쿼터가 풀려서 무한정의 양말 수입이 가능해지고, 그들은 그저 모든 발가락양말이 같을 줄 알고 시장 수요의 거의 10배이상을 일시에 수입을 했다. 그러자 갑자기 시장은 포화가 되었지만, 중국산의 품질에 실망한 소비자는 발가락양말의 구매를 줄였다. 그리고 우리도 어려워졌다. 


바로 그 때 미국에서 10만장에 대한 OEM요구가 들어왔다. 사실 공장의 생간능력이 남아도는 입장이고, 10만장이면 대략 3달정도는 유지할 수 있는 분량이었다. 한참을 고민했지만 결국 받지 않기로 하였다. 사람들은 흔히 같은 기계, 같은 재료를 사용하면 같은 제품이 나올 줄 알고 있지만, 누가 어떤 식으로 만드는 가에 따라 차이가 난다. 똑같은 라면을 끊이더라도 어떤 사람의 라면은 좀더 쫄깃한 면발이 있다. 라면을 끊이는 시간, 물의 온도에 더하여, 끊는 라면에 찬 물을 약간 부어주는 정도에 따라 라면의 쫄깃함이 달라진다. 그 것은 라면을 끊이는 사람의 기술과 성의가 다르기 때문이다. 그 차이가 적을 수도 있고, 많을 수도 있다. 많든 적든 그 차이가 내 제품의 특성으로 나타난다. 그리고 그 특성 때문에 ‘내 브랜드’를 유지하게 해준다. 만일 남의 이름으로 만들어 납품하는 데 만족한다면, 내 제품의 특성은 남의 특성이 된다. 그래서 브랜드 제품은 대체로 자기 공장에서 만들거나, 특별히 지정된 공장에서 만든다.

헤르만 지몬이 지은 ‘히든 챔피언’에 나오는 모든 기업이 생산 과정의 많은 부분을 아웃소싱하지 않고, 자체 생산을 하는 이유가 그렇다. 

스위스의 시계 생산회사인 스워치시계를 만든 장본인이자 당시 스워치사장을 맡고 있던 니콜라스 하이에크는 시장의 하위에 있는 저가부문을 저임금을 지불하는 국가의 경쟁사들에게 양도하지 말라고 경고했다. 프리미엄 부문에 있으면서 가장 효과적으로 방어할 수있는 전략은 하위에 속해있는 부문과 경쟁하는 것이다. 점점 더 많은 히든 챔피언들이 이 전략을 따르고 있다. 그래서 센서기술로 시장 지배력을 지닌 회사들 중 하나인 ‘시크’는 모든 수단을 동원해서라도 과도하게 높은 수준의 품질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지 않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 그렇게 되기 위해 직원들은 다음과 같은 개발 과제를 부여받았다.

1. 보통 부문에서 동일한 성능의 제품을 25% 낮은 원가로 생산하기
2. 프리미엄 부문에서는 같은 가격에 25% 더 높은 성능을 내기 

히든 챔피언들은 스스로 하는 것을 유독 선호하고 아웃소싱을 반대하는 입장을 잘 보여주고 있다. 아웃소싱은 현대적 경영이론서에서 흔히 만병통치약처럼 칭송받고 있다. 많은 기업들이 아웃소싱을 통해 스스로 아무 것도 하지 않아도 되므로 임금과 고정비용을 거의 들이지 않아도 된다고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한다. 그러나 사실 아웃소싱을 결정하게 되는 주요 원인은 대체로 원가 때문이다. 하지만 제품의 품질은 히든 챔피언들의 경쟁상의 최고 장점이다. 그래서 이런 품질에 대한 요구로 인해 핵심성분의 생산을 다른 회사에 맡기지 않는다. 그렇게 하면 제품이 가진 유일무이한 장점이 상실될 게 뻔하다. 아웃소싱함으로써 발생할 수있는 또 다른 위험은 노하우의 노출이다. 

하지만 이들에게 조차도 자가생산은 결코 쉬운 일만은 아니다. 그 것은 바로 끊임없이 들어오는 OEM의 유혹, 더 저렴한 생산가격을 제시하는 아웃소싱업체의 제안들을 무시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매번 생존과 관련되 결정을 해야한다. 아웃소싱 생산은 생각처럼 단순히 비용과 연관된 문제만은 아니다. 장기적으로 자기 제품의 특성을 유지할 수있을 뿐더러, 제품 개발의 방향을 결정지을 수있다. 우리는 브랜드를 단순히 마케팅의 관점에서만 바라본다. 그러나 모든 판매의 기본은 좋은 제품이다. 좋은 제품은 광고할수록 더 팔리지만, 나쁜 제품은 광고할수록 더 적게 팔린다. 차라리 소문이라도 나지 않으면 우연히라도 소비자가 선택하지만, 잘 알려진 나쁜 제품은 우연히라도 선택되지 않는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브랜드 제품이 아무 공장에서 만들어지지 않는다. 다 까다로운 과정을 거쳐서 자사 디자인에 맞는 제품을 만들 수 있는 지 점검한 다음에 하청을 준다. 특히 핵심제품은 자사 전용공장에서 만드는 게 일반적이다. 이런 경우에는 브랜드를 소유하고 있는 마케팅 회사가 공장에 상당한 정도의 생산 물량과 적절한 가격을 보장해주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 제품을 생산할 만한 정도의 투자를 할 사람이 없다. 아웃소싱된 특성없는 제품의 브랜드는 소비자의 입장에서 보면 역시 언제나 대체가능하기 때문에, 항상 자사만의 특성을 갖춘 생산시설에 관심을 갖어야 한다.

사실 자가생산의 위험도는 매우 높다. 자체 생산의 가장 큰 문제는 유연성이다. 자가 생산시설은 당연히 고정자산에 많은 투자가 필요하다. 토지.건물.생산시설은 물론이고, 고정적인 운영비가 아웃소싱할 때보다 굉장히 높아진다. 그런데 요즘처럼 팍팍 변하는 사회에서 금방 노후화될 고정자산에 투자를 해야하는 지에 대한 걱정이 당연히 앞선다. 뿐만 아니라 제품 판매가 원활하지 못할 때 그 부담의 차이는 엄청나게 크다. 시장 상황이 좋지 못할 때는 돈을 퍼부어도 퍼부어도 독의 밑바닥은 보이지 않는다. 그 고통을 오래 겪다보면 아주 깊은 바다속으로 빨려들어가는 암담함이 있다. 그리고 그 속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는 경우가 아주 많다. 초기 투자비도 많이 들어가지만, 부족한 유연으로 인한 위험부담과 자금부담이 매우 크다. 하지만 이런 문제를 넘길 수있을 정도의 충분한 돈이 있어도 기술과 경험이 없으면 자가 생산을 하지 못한다. 

옛날에 짚신장수를 아버지로 둔 사람이 있었다. 그의 아버지가 만든 짚신은 동네에서 가장 잘 팔렸다. 그래서 아버지 옆에서 곁눈질하며 짚신을 배웠다. 하지만 겉모양이 같은 데도 사람들은 아버지의 짚신만 샀다. 오랜 시간이 지나고도 여전히 사람들은 아버지의 짚신만 사가자, 답답한 아들이 아버지에게 물었다. “아버지의 짚신과 저의 짚신의 차이가 무엇인가요?”. 아버지가 대답했다. “잔털”. 아버지는 짚신을 팔기 전에 잔털을 제거하였고, 그랬기 때문에 신어보면 부드럽고 따갑지가 않았다. 

이런 건 돈으로도, 기술로도 해결되는 것이 아니다. 바로 만드는 사람의 ‘정성’이다. 그런데 남의 제품을 그 정도의 성의를 가지고 만들어 줄 사람이 어디 있을까?

명품이 그냥 명품이 아니다. 남들이 귀찮아 하는 것을 하고, 보지 못하는 것을 보기 때문이다. 애초부터 생산비의 개념은 생각만큼 중요한 요소가 아니다. 장사를 하다보면 ‘원가계산’, ‘소비자 가격’이 중요하기는 하다. 하지만 자가 생산시설이 있으면 그런 요소로부터 상당히 자유스러워진다. ‘내가 만든 만큼 받으면 된다’는 생각을 할 수있기 때문이다. 누가 만드는 가에 따라 생겨나는 제품의 그 미세한 차이가 나의 브랜드인 ‘Feelmax’만의 특별함을 만들어 준다고 믿기 때문이다. 실제로 그 차이는 현재까지 우리를 살아남게 하는 힘이 되고 있다. 그래서 난 내 제품은 내 공장에서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89-95년 대한무역진흥공사 근무, 95년부터 드미트리상사 운영.
Feelmax 라는 브랜드로 발가락양말을 핀란드등에 수출하고, 맨발 운동용 신발을 수입하고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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