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대 흐름을 타고 앞서간 미쓰비시그룹, 강한 조직력이 경쟁력 비결 >

일본우선회사의 설립으로 미쓰비시는 주요 사업군에서 해운업을 포기해야 했다. 미쓰비시의 2대 사장인 이와사키 야노스케(야타로의 친 동생)는 새로운 사업 진출을 결심했다. 회사명도 ‘미쓰비시사’로 바꿨다. 신규 사업의 주력은 다카시마탄광과 나가사키조선소였다.

다카시마탄광을 신사업의 핵심으로 삼은 야노스케는 막대한 자금을 탄광에 투자했다. 굴삭 기술의 강화와 굴삭량 증가에 힘을 쏟았다. 다카시마탄광은 품질과 생산량에서 일본 최고 광산으로 성장했다.

나 가사키조선소는 메이지정부가 만든 조선소였다. 일본 정부는 1884년 민간에게 조선소를 넘기기로 결정했다. 1887년 야노스케가 대장상(기획재정부 장관 해당)인 마쓰카타 마사요시에게 인수를 신청해 미쓰비시의 소유가 됐다. 야노스케는 조선소에도 거액을 투자해 미쓰비시조선이 세계적인 조선업체로 성장하는 초석을 놓았다.

미쓰비시는 1893년 상법 시행에 따라 합자회사로 바뀌었다. 야노스케는 이를 계기로 사장 자리를 히키야(창업자 이와사키 야타로의 아들)에게 물려줬다. 3대 사장의 탄생이다.

미쓰비시는 히키야의 경영 아래 사업을 공격적으로 확대했다. 가장 돈벌이가 되는 사업은 광산업이었다. 1902년께 전국 각지에 광산과 탄광을 소유해 막대한 양의 금속과 석탄을 채굴했다.

조 선업도 순조롭게 성장했다. 1899년 해군이 군함 건조를 민간에 발주하기 시작했다. 조선업계 선두인 미쓰비시는 큰 수혜을 입었다. 미쓰비시는 1905년 고베조선소를 설립했다. 최첨단 조선기술을 집적한 조선소였다. 일본 최고 조선소의 탄생이다.

## 주력은 중공업, 세계 굴지의 신병기도 생산 ##

미쓰비시합자회사는 은행부, 영업부, 광업부 등의 사업부제를 채택했다. 독립채산제로 각 사업부가 일정 한도의 자본금을 설정했다. 사업부 책임자가 자본금 한도 내에서 책임 결재하고 경영을 하는 형태다.

이 들 사업부를 분리, 독립시켜 미쓰비시를 거대 그룹으로 만든 주역이 4대 사장인 이와사키 고야타이다. 고야타는 2대 사장인 야노스케의 장남으로 영국 케임브리지대학에서 유학했다. 귀국 후 미쓰비시합자회사 부사장을 거쳐 1916년 4대 사장에 취임했다.

그는 사장 취임 이듬해부터 각 사업부의 분리, 독립 작업을 실행했다. 미쓰비시조선, 미쓰비시상사, 미쓰비시광업, 미쓰비시은행 등이 설립됐다. 이들 회사들이 분리, 통합 과정을 거쳐 미쓰비시전기, 미쓰비시화성공업 등이 출범했다.

이 들 중 그룹의 중핵 역할을 맡게된 회사가 미쓰비시중공업이다. 미쓰비시조선과 미쓰비시항공기가 1934년에 합병해 탄생했다. ‘중공업’이란 용어도 일본에서 고야타가 처음 만들었다. 그는 철강, 비철금속가공, 화학공업, 기계제조 등 대규모 설비로 무거운 제품을 생산하는 공업을 뜻하는 영어의 ‘heavy industry’를 ‘중공업’으로 표기했다.

군수산업도 미쓰비시 성장의 밑거름이 됐다. 항공모함과 함상 전투기가 주요 생산 병기였다. 미쓰비시합자회사는 1943년 주식회사 미쓰비시본사로 사명을 변경했다.

## 재벌 해체 후 재결합, 조직의 미쓰비시로 재편 ##

일 본 재계에서 미쓰비시는 ‘조직의 미쓰비시’로 불린다. 그만큼 강한 단결력을 자랑한다. 태평양전쟁 종전 후 미쓰비시그룹은 유엔군최고사령관총사령부(GHQ)의 재벌해체 조치로 토막토막 분리됐다. 1차 해체 대상 그룹은 미쓰비시, 미쓰이, 야스다, 스미토모 등 4대 재벌이다. 미쓰비시그룹의 경우 업종별로 쪼개졌다. 새로 설립된 회사 수는 100여개를 넘었다.

하지만 얼마 안지나 GHQ의 재벌 해체 정책이 바뀌게 됐다. 1949년 중국의 탄생과 1950년 한국전쟁 발발이다. 미국은 중국에서 공산 정권이 출범하고, 한국 전쟁이 터지자 ‘일본을 경제적으로 지나치게 약화시키는 조치가 동아시아 지역에 혼란을 가져올 것’으로 판단했다. 일본경제의 민주화 정책의 변경을 가져온 배경이다. 1952년 미국과의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 발효를 기점으로 구 재벌계 기업의 재통합 작업이 시작됐다.

미쓰비시는 쪼개졌던 미쓰비시상사 관련 회사들을 잇따라 합병, 그룹 통합 작업에 나섰다. 상사들은 1953년 4개사로 합쳐진 뒤 이듬해 미쓰비시상사가 부활했다. 신미쓰비시중공업, 미쓰비시일본중공업, 미쓰비시조선은 1964년 합병해 다시 미쓰비시중공업이 됐다. 같은 해 미쓰비시제강과 미쓰비시강재도 합변, 미쓰비시제강으로 다시 출범했다.

미쓰비시중공업의 재탄생은 세계적으로 주목을 받았다. 당시 미국의 주요 경제지들은 대서특필했다. 새로 통합된 미쓰비시그룹은 강한 단결력을 과시하며 21세기 들어서도 강력한 기업집단으로 존재감을 보여주고 있다. / 이상
1988년 말 한국경제신문에 입사했습니다.
2004년 3월 도쿄특파원으로 발령받아 2007년 3월 말까지 도쿄에서 근무했습니다. 2004년 3월 도쿄특파원으로 발령, 도쿄특파원 근무를 마친 후 2011년 3월부터 한경닷컴 뉴스국장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숙명여대, 선문대 등에서 대학생을 대상으로 교양 글쓰기 강의를 하고 있습니다.

저서로 '일본 기업 재발견(중앙경제평론사)' '다시 일어나는 경제대국,일본(미래에셋연구소)' '창업으로 하류사회 탈출하기(중앙경제평론사)' 등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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