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재벌, 그들은 누구인가 ,,, 창업과 성공, 장수 비결은

입력 2014-06-12 11:38 수정 2014-06-13 10:26
1868년 메이지유신 이후 일본은 세계인들이 놀랄 정도의 빠른 스피드로 근대 국가체제를 정비했다. 그 원동력 중 하나가 파란만장한 시대를 대담한 행동력과 과감한 결단력으로 살았던 기업가들이다.

당대에 거대 재벌그룹을 일군 미쓰비시와 야스다, 에도시대부터 거대 상인 가문에서 발전한 미쓰이, 스미토모... 4대 재벌로 불리는 이들 전통 기업으로부터 시멘트 목재 광산 증권 등에 특화해 급성장한 신흥 재벌, 그리고 도요타자동차 등 현대 일본을 대표하는 기업들이 있다.

일찍부터 일본에선 ‘4대 재벌’로 불리는 재벌이 존재했다. 미쓰비시, 미쓰이, 스미토모, 야스다. 메이지유신 후 급성장해 일본 경제를 키운 이들 기업은 어떻게 형성됐고 성장해 왔을까. 이들의 성장과 생존 스토리는 한국 기업에도 시사하는 바가 많다. 

아시아에서 가장 먼저 서구화의 길을 걸어 세계 2위 경제대국으로 올라선 일본 경제의 성공을 이끈 거대 재벌의 창업과 성공, 장수 비결을 찾아본다. 메이지유신과 1,2차 세계대전, 한국전쟁, 고도 경제 성장기, 장기 침체기 등을 거치며 글로벌 초일류 기업으로 장수하고 있는 일본 재벌들의 성장과 생존은 우리 기업들에도 시사점을 줄 것이다. 

메이지유신 시대에 탄생한 일본에서 역사가 가장 오랜 기업은 미쓰비시그룹이다. 창업자는 1800년 대 중반 도쿠가와 막부 말기 동란기를 극복한 인물이다. 하층무사에서 맨손으로 재벌로 일어선 이와사키 야타로가 주인공이다. 그는 정치 상인으로서 뛰어난 수완을 발휘했다. 야타로가 내다본 미쓰미시의 미래는 어떤 모습이었을까.

이와사키 야타로는 도사 번(번은 영주가 다스리는 지역 개념, 현 고치현)의 하층 무사 출신이다. 번의 실력자인 요시다 토요에서 배운 것으로 계기로 신분 상승을 이뤘다. 1867년 ‘가이세이칸 나가사키상회’의 책임자로 발탁됐다.

가이세이칸 나가사키상회는 번의 경제 활성화를 위해 설립된 번 직영 상사였다. 나가사키와 오사카에 거점을 뒀다. 나가사키에 부임한 야타로는 천부적인 상인 기질을 남김없이 발휘했다. 도사번의 특산품 수출과 서양 국가들로부터 함선, 무기 수입에 분주했다. 1868년 나가사키상회의 폐쇄 결정에 따라 오사카상회로 옮겨 도사번을 위한 무역 업무에 매진했다.

1870년 오사카상회는 이름을 ‘99상회’로 바꿨다. 야타로는 오사카에서 번으로부터 매입한 3척의 배를 기반으로 해운업을 시작했다. 초기엔 도쿄~오사카, 고베~고치 간 화물 수송에 주력해 사업을 키웠다. 오사카 상인과 외국 상인들을 대상으로 물품 매매도 했다.

메이지 정부의 번 폐지 조치로 ‘도사번’이 없어진 뒤 1873년 사명을 ‘미쓰비시상회’로 개명했다. 야타로는 이때부터 명실상부한 오너로 미쓰비시를 이끌게 됐다.

미쓰비시는 1874는 본사를 도쿄로 옮기면서 도약기를 맞았다. 메이지 중앙정부의 대만 출병이 회사 성장의 회사 도약의 계기가 됐다. 미쓰비시는 정부를 대신해 정잰 전략 물자 수송을 맡아 국가에 큰 공헌을 했다.  1875년 ‘일본국 우편증기선회사’ 가 해체되면서 소유 선박은 미쓰비시로 넘어갔다.

야타로는 본사의 도쿄 이전에 맞춰 정부와의 업무 협조를 공고히 하기 위해 회사 조직도 개편했다. 미쓰비시는 일본군의 조선 출병, 내전 등에도 병력과 물자 수송을 담당했다. 정부의 항로 개척에도 앞장섰다.   미쓰비시가 일본의 해운을 독점하게 되는 배경이다.

야타로는 회사 운영에서 철저한 1인 독재 경영 체제를 만들었다. 1875년 제정한 사내 규정의 제 1조에는 “회사 경영의 모든 결정, 상벌 등은 사장의 독재를 인정해야 한다”고 실려있다. 1878년의 새 사내 규정도 ‘사장 독재’를 명기했다.

경영인으로서 야타로의 카리스마는 야타로의 카리스마는 대단했다.    그는 맹렬한 ‘1인 사장’이었으나 인재를 발탁하는 혜안과 적재적소에 배치하는 탁월한 능력을 가졌다.
친 동생으로 미쓰비시의 2대 사장에 오른 야노스케도 비슷했다. 그는 매사 자신에게 매우 엄격한 경영인이었으나 사원들을 사랑하는 온후하고 냉정한 성품의 소유자였다.

야타로 초대 사장이 경영에서 특히 신경을 쓴 부분이 ‘인재 등용’이었다. 그는 서양문명 도입에 열심히던 후쿠자와 유키치에 심취했다.서양 학문을 배운 학생이나 외국인을 적극 채용한 것도 이런 배경에서다. 초대 사장인 야타로는 미쓰비시가 근대적 기업으로 진화하는 기초를 닦았다는 평가를 듣고 있다.

미쓰비시는 1878년 이후 보험, 광산, 은행, 부동산 등 각종 사업으로 영역을 넓혔다. 회사가 급성장하는 와중에 야타로는 위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1885년에는 ‘우편기선미쓰비시회사’와 ‘공동운수회사’는 합병,‘일본우선회사’가 됐다. 미쓰비시재벌 본류 기업의 탄생을 알렸다. / 이어집니다

1988년 말 한국경제신문에 입사했습니다.
2004년 3월 도쿄특파원으로 발령받아 2007년 3월 말까지 도쿄에서 근무했습니다. 2004년 3월 도쿄특파원으로 발령, 도쿄특파원 근무를 마친 후 2011년 3월부터 한경닷컴 뉴스국장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숙명여대, 선문대 등에서 대학생을 대상으로 교양 글쓰기 강의를 하고 있습니다.

저서로 '일본 기업 재발견(중앙경제평론사)' '다시 일어나는 경제대국,일본(미래에셋연구소)' '창업으로 하류사회 탈출하기(중앙경제평론사)' 등이 있습니다.

ⓒ 한경닷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광고

투표김영란법 시행 1주년, 어떻게 생각하세요?

  • 부패방지를 위한 획기적 계기로 현행 유지해야 1838명 67%
  • 민생경제 활성화 위해 현실에 맞게 금액 수정해야 920명 33%
광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