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화(神話)가 힘을 잃으면 철학(哲學)은 시작된다.

입력 2014-09-11 14:04 수정 2014-09-11 23:04
철학자란 무엇이냐. 다른 존재와 달리 인간은 무엇을 행하고 겪는 것이 합당하냐 하는 점을 탐색하고 그것을 알아내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이다(플라톤). 요즘 강박증 청년을 치료 중에 있다. 몇 년 전부터 상담치료도 받고 수년째 정신과를 다니며 약을 먹고 있지만 호전되지 않아 찾아 온 친구다. 트라우마가 강한 부모에게서 자란 여린 청년의 비극이다. 자식이 심리적으로 고통을 호소하고 있지만 부모는 그 심각성을 인지하지 못한다. 스스로 알아서 하라는 것이다. 인간은 의도적으로 망각을 이용한다. 특히 자신의 불행했던 과거는 무의식에 묻어 버리거나 최대한 빨리 합리화시킨다. 살기 위한 회피다.
 

밝은 성격에 보편타당한 이성을 가진, 배려가 많은 착한 친구다. 강박 성향이 강한 어머니로부터 받은 반복된 거부가 무의식에 잠재되어 있다가 병이 되었다. 강박증의 핵심은 자존(自尊)감 저하다. 자존감을 떨어뜨리는 원인에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부모의 양육태도가 가장 큰 원인으로 작용한다. 자존감은 인간이 살아가는 원동력이 된다. 증상이 있다고 해서 일반적인 사람과 전혀 다를 것이라는 생각은 오해다. 통상적으로 증상이라고 할 수 있는 몇 가지 공통된 특이점을 갖고 있을 뿐이다.

똑똑한 친구여서 공부도 잘했고 고등학생 때도 줄곧 우등반에 있었다. 대학생인 지금 자신의 병으로 인해 과거처럼 좋은 성적을 내지 못하는 것에 매우 힘겨워 하고 있다. 늘 과거를 회상하며 후회하고 실망하는 일을 반복한다. 그런 자신을 친구들이나 후배들이 알면 비웃을까봐 노심초사(勞心焦思)하느라 해야 할 일에 집중하지 못한다. 생각은 분산되고 의지는 약해져만 간다. 이성과 감성은 혼돈되고 생각과 행동은 불일치한다. 옳고 그름은 분명히 알지만 행동하지 못하고 생각만 하고 있다.

 

내가 존재해야 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굳어 버린 머리를 하고도 살아야 하나? 이렇게 살아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인가? 죽고 싶지만 죽지 못한다. 용기가 없다. 아무도 자신의 말을 들어 주지 않을 것 같아 다가서지 못하고 늘 외롭다. 분노가 있지만 그 분노의 원인을 모른다. 부모에게 이야기 해 보지만 무관심에 질타(叱咤)만 돌아온다. 동생은 괜찮은데 너는 왜 그래? 갈 곳도 기댈 곳도 없다. 상담실을 오는 것이 너무 행복하다. 2시간은 온전히 자신의 것이고 한 순간도 놓치지 않고 경청해주는 선생님이 너무 좋다. 자신의 문제에 최선을 다해 고민해 주고 방법을 제시해 주니 그지없이 행복하다.

 

사람은 누구나 외롭다. 인지할 수 있는 환자는 더욱 외롭다. 힘겨운 일을 겪으면 철학자가 된다. 철학의 아버지 탈레스는 본질(本質)에 대한 물음을 시작했다. 이 세계에 아주 다양한 형태로 나타나고 있는 모든 것이 무엇인지를 탐색하려고 했다. 이 모든 것의 본질은 무엇인가? 어디에서 생겨났으며 무엇이 기원인가? 이 모든 것을 각기 그것이 되도록 만들고 있는 그 하나, 모든 것을 포괄하는 그것, 그 원칙은 대체 무엇인가? 이 물음은 지금도 철학의 핵심 논제(論題)다. 철학한다는 것은 자신의 본질(本質)을 알아가는 것이다.

 

부모의 본질, 자식의 본질, 관계의 본질, 행동의 본질, 생각의 본질, 결단의 본질, 사유의 본질, 삶의 본질, 생명의 본질, 죽음의 본질... 더 나아가 가정의 본질, 집단의 본질, 사회의 본질, 국가의 본질...인간은 기본적으로 철학하게 되어 있다. 생각 없이 산다는 것은 죄악이다. 생각해 보건데 그것이 보편적 인식에서 옳고 바른 것인지 이기적 욕심만을 위한 것인지를 분별해야 한다. 분별심이 없다면 타인의 판단을 빌려서라도 공부해야 한다. 그것이 인간과 동물의 차이이며 인간이 인간된 이유다.

 
오미경사람연구소(구.정신분석연구소.사람과삶) 대표로 집단상담 및 개인심리상담치료가 및 작가로 노인문제, 가정폭력문제, 성희롱 및 성폭력 상담과 교육. 인성교육 및 프로그램도 함께 운영하고 있다. [남자요리99]의 작가로 남자의 심리를 예리하게 파헤친 책을 출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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