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늘게라도 흐르는 물줄기는 혹한에서도 얼어붙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사람 사는 곳 구석구석 돈이 돌아야 경제순환이 제대로 된다. 2013 현재, 한국경제는 극심한 돈의 홍수와 가뭄 현상이 맞물려 있다. 한편에서는 갈 곳을 잃은 돈이 이리저리 넘쳐나고, 다른 한편에서는 돈이 메마를 대로 메말라 있다. 글자 그대로 돌아야 할 돈이 돌지 않고 있다. 
  돈은 실물거래와 금융거래에 따라 움직인다. 경기가 침체되면 실물부문 상품거래가 뜸해지고 그 반대방향으로 움직이는 돈 또한 돌지 않는다. 미래 경제를 어둡게 보고 상대방의 신용을 의심하게 되면 금융부문 자금거래가 어려워진다. 신용경색(credit crunch) 현상이 심해지면 높은 금리로도 돈을 빌리거나 빌려주지 못하여 돈이 돌지 못한다.

  돈이 돌지 않는 까닭은 무엇인가?

   # 빈부격차가 갈수록 확대되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더불어 같이 돈을 벌면 자연히 소비수요가 늘어난다. 그러나 몇몇 사람들이 다른 사람의 몇 만 배를 벌어 쌓아두면 돈이 돌래야 돌 도리가 없다. 혼자서 어떻게 상어 지느러미 요리 몇 만 그릇을 먹을 수 있겠는가?

  수출증대도 중요하고 발 빠른 성장도 물론 중요하다. 그러나 대다수 서민들이 어려운 상황이라면 경제운용의 패러다임을 다시 생각해 보아야 한다. 국리와 민복은 동행하여야 하는데, 민복(民福)을 외면하고 국리(國利)만을 추구할 때 (19세기) 중상주의, 전체주의 국가의 비극이 다시 초래될 수 있음을 경계하여야 한다.

졸고, 패자부활의 지혜 참조

  # 고령화가 진전되면서 미래에 대한 불안심리가 커지고 있어 설혹 돈이 있어도 소비하기 두렵다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다. 사실 대부분의 한국인들은 청장년 기에는 교육불안, 고용불안, 주거불안에 시달리다가 중장년 기에 들어서는 노후불안이 더해진다. 특히 은퇴 이후 연금지급 개시 시점까지의 긴 「은퇴 크레바스」도 사람들을 더 불안하게 한다. 서로 밀접한 연관성을 가진 이 모든 불안들은 결국 돈 문제로 귀결된다. 미래를 내다보기 어려운 고령사회에서 자칫 고려장을 당할지 모르는데 설사 여유가 있어도 소비 확대를 두려워한다. 한 때는 국민연금보험이 노후를 보장한다는 과잉홍보로 과도소비 현상이 나타났었다. 이제는 연금수령액이 점차 줄어들거나 고갈되어 노후보장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불신감이 조성되고 있다. 중장년들의 소비수요가 늘어나기 어려운 실정이다. 게다가 개인연금보험 실태를 보면 높은 수수료를 떼고 나면 물가상승률을 따라잡지 못하는 실정이다.  
  # 부동산시장의 거래비용이 지나치게 크다. 우리나라 베이비 붐 세대 대부분은 번듯한 집 한 채 갖는 것이 인생의 목표인 경우가 많았었다. 그런데 사정에 맞게 집을 바꾸려도 취득세, 등록세만 5~6%가 넘는데다 높은 중개수수료까지 부담해야 한다. 과거 고성장시대에는 큰 부담이 아니었는지 몰라도 잠재성장률이 2%대로 떨어진 저성장시대에는 부동산 거래의 커다란 장애물로 작용하고 있다. 경제 성장률만큼 자산가격이 상승한다고 가정하면, 어림잡아 3년 이상 올라야 거래비용을 감당할 수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땅이나 집을 팔고 싶어도 팔지 못하니 유동성 없는 부동산(不動産)이 되었다. 돈이 돌기 어렵게 되었다.

   # 크고 작은 유통망을 일부 기업이 장악해 가며 중간상, 영세 소매상들의 설자리가 없어지고 있다. 쉬운 예를 들어보자. 속초에서 오징어를 잡아 올리면, 어부로부터 공판장 경매와 중간상을 거쳐 어물전을 거쳐 소비자에 이르기까지 7~8단계를 거치면서 매 단계마다 돈이 돌게 된다. 생산자에서 소비자에게 이르기까지 여러 단계의 유통과정을 거치면서, 그만큼 화폐유통속도가 빨라지고 일자리도 생겼다. 이제는 대형 유통업체들이 어선으로부터 직접 물건을 구매하여 바로 소비자에게 파니 돈이 돌지 않는다. (물론, 중간상들의 이윤이 없어져 물가상승 압력이 줄어들었지만, 재래식 시장에 비해 유통단계가 축소된 대형 매장의 물가가 그리 싸지만은 않은 이유는 무엇인가?)

  돈이 돌지 않는 현상은 어떠한 모습으로 나타나는지 다음 회에 살펴보자.


* 관련 글들은 http://easynomics.blog.me 를 클릭하면 테마 별로 정리되어 있습니다



증권감독원에서 증권제도연구실장, 조사부장, 조사연구국장 등을 역임하였다. 미시간 주립대 객원연구원, 이코노미스트, iweekly 편집위원을 역임하였으며 성도회계법인 부회장, 현재 선인장학재단 이사, 대한상사중재원 중재인, 비즈니스 워치 금융전문위원

ⓒ 한경닷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