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 경제력과 국민 행복지수의 괴리가 가장 높은 나라가 우리나라라고 한다. 한국의 경제양극화 현상을 잘 모르는 외국 기고가도 "부자이면서도 불행한 한국인들"이라고 했다. 12년 8월 현재, 가치관의 혼란과 공동체의식 부재로, 우리에게 내일이 없는 것 같은 광경이 여기저기 보인다. 무질서, 무규범의 혼돈 상태인 아노미(Anomie) 증상들이 언뜻언뜻 보인다.

  # 전국시대 법가(法家) 한비자(韓非子)는 “소인이 힘 좀 얻었다고 해서 감히 태산을 움직이려다가 작은 흙더미에 걸려 넘어지기 쉽다”고 하였다. 큰일을 도모하려면 사소한 규칙도 지키고 조그만 원한도 사지 말라는 뜻이렸다. 세상 모든 권모술수를 종행무진 피력하던 동양의 마키아벨리라는 그도 진나라 간신 이사의 모함에 걸려 비명횡사했다.
  그런데 일세를 풍미하던 유력인사가 법정에서 “한 달에 오천만원씩 12달 동안 받은 육억원은 그리 큰돈이 아니다”라며 작은 흙더미에 비유하며 큰일을 하다보면 그럴 수도 있다는 뉘앙스를 풍겼다. 그 기사 옆에는“햇살론”오백만원을 갚지 못하여 끝내 개인회생을 청구한 자영업자 이야기가 있어 가슴을 짓누른다.

  # 아들에게 추행 당한 “(아들의 친구인) 피해 여학생이 인격 장애를 앓고 있다는 허무맹랑한 문서를 꾸며 배포하였다"는 삐뚤어진 모정이 기가 차다. 치열한 경쟁을 뚫고 명문대에 진학한 아들을 변명하려는 모정이 애끓기도 하도 모질기도 하여 안타깝다.
  사람들은 어이하여 제 자식이 귀하면 귀할수록 남의 자식도 똑같이 귀하다는 사실을 모르는 것일까? 남의 자식을 귀하게 여길 때 내 자식은 더 더욱 귀해지게 되는 단순한 진리를 어이하려 외면하는가? 남이야 어떻게 되든, 저 귀한 줄만 알고 자란 자식이 커서 어떻게 될지는 쉽게 짐작할 수 있다. 크게 출세하여 힘이 얻을수록 더 많은 사람들에게 더 큰 피해를 입히는 사회악(社會惡)이 될 가능성이 커짐은 한국의 근대사가 말해준다.

  # 다른 것은 몰라도 치안은 안전하다는 우리나라에서 무차별 칼을 휘두르는 사건이 연이어 일어나 인심이 흉흉하다. 또 길가는 아낙네들을 이유 없이 무차별 폭행하여 중상을 입히는 사건이 벌어졌다. 경찰에게 구원을 요청했는데, 아무 소용 없었다고 한다. 국민소득은 늘어났다는데 범죄는 더 극성을 부리는 까닭은 무엇일까? 이러다가는 국민 각자가 생명과 재산을 스스로 보호하지 않으면 안 되는 지경에 이를지 모른다. 벌써 사설 경호사업이 번창할 것이라는 이야기가 들린다. 그러나 저러나 먹고 살기도 힘든 소시민들은 어떻게 하여야 하나?

                   졸고 ;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 참조

   이 빌어먹을 사회병리현상이 이처럼 깊어지고 있는 까닭은 무엇인가?

   먼저, 페어플레이 정신이 실종되고 있다. 한 번 패하면 벼랑으로 몰리기 쉬운 사회구조, 완충지대가 없는 환경에서 사람들은 경쟁 스트레스 내지 강박관념에 시달리기 쉽다. 패자에게 퇴로가 없는 상황과 승자독식의 세계에서 일시적으로 성공하더라도 그 다음을 생각하면 불안하고, 실패하면 전전긍긍하다 자칫 분노하기 쉽다. 남의 패배가 나의 승리가 되는 사회에서 패자의 아픔을 어루만지는 진정한 승자는 어디에 있는가?

  다음, 믿고 따르고 존경할 인물이 너무 귀하다. 헛기침하는 인사들일수록 그 속을 들여다 보면 보통사람들보다 더 지저분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사회의 귀감이 되고 도덕적으로 무장한 지도층 인사를 찾기가 어렵다. 원칙이 없는 사회에서 성공(?)하려면 편법과 변칙을 불사하며 수단 방법 가리지 않는 그악한 승부를 벌려야 하기 때문인가?
  그 다음, 법이 엿가락처럼 늘어지고 있다. 똑같은 죄라도 큰 인물(?)이 범한 죄는 사회적 파장과 폐해가 커지기 때문에 더 큰 책임과 벌을 받아야 한다. 그러나 힘이 정의라는 관념이 팽배한 가운데 돈이 많은 사람, 높은 사람들의 범죄는 흐지부지하는 세상에서 누구를 존경하겠는가? 반대로 백화점에서 참기름 두 병을 슬쩍한 무의탁 노인에게 일벌백계로 2년의 실형을 선고한 나라에서 어찌 법의 균형을 이야기할 수 있는가? 

  힘만 있으면 모든 것이 해결되었던 환경, 옳고 그른 것을 모르는 상황, 사람의 도리가 외면되는 사회에서는 패자만이 수렁에 빠지는 것이 아니다. 다 뿌리치면서 저 혼자만 살겠다고 하면, 같이 죽는 것이 아니라 저 먼저 죽게 되는 것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한결같은 역사의 경험이다.
  어느 여류가 쓴 “멀리 가려면 함께 가라”는 책 제목이 말해주듯, 공동체의식 구축이 경제성장보다 더 시급하고 더 절실한 과제다. 많은 인사들이 툭하면 꺼내는 통합과 윈-윈의 시대는 진정 언제쯤 올 것인가?  

무섭다 / 허홍구
미친 사람이 칼 들고 있으면 무섭다
무식한 사람이 돈 많은 것도 무섭고 권력을 잡으면 더 무섭다
그러나 그보다 더 무서운 게 있다
실력 있고 잘난 사람들 중에 사람이 아닌 사람은 더 무섭다
참 무섭다
언제나 웃고 있는 너그러워 보이는 탈을 벗기면
흉악한 얼굴들이 보인다. 언뜻 언뜻 나의 얼굴도 보인다.
몸서리치게 무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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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권감독원에서 증권제도연구실장, 조사부장, 조사연구국장 등을 역임하였다. 미시간 주립대 객원연구원, 이코노미스트, iweekly 편집위원을 역임하였으며 성도회계법인 부회장, 현재 선인장학재단 이사, 대한상사중재원 중재인, 비즈니스 워치 금융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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