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내커

가계부채 비상구는 어딘가?

  대기업집단 가운데서도 비상경영을 선언하고 생존전략에 골몰하는 모습도 보인다. 이는 기업이 생산하는 모든 재화와 용역의 최종 소비주체인 가계의 병이 깊어진 까닭이다. 가계가 부실해져 소비수요 탄력을 잃으면, 기업이 아무리 좋은 제품을 싸게 만들어내도 아무 소용없는 일이다. 먹이사슬의 밑바탕인 풀밭이 황페해지면 결국 공룡도 살아남기 어렵다는 교훈을 주고 있다. 한국경제가 「IMF 구제금융」 사태를 그럭저럭 극복할 수 있었던 것도 당시 높은 가계저축률이 말해주듯 가계가 나름대로 튼튼하였기 때문이다.
                         졸고 ;적자생존과 공생관계  참조

  한국경제를 불확실성의 절벽으로 몰아가고 있는 가계부채를 해결하는 길은 무엇인가? 먼저, 부채의 (상대적) 크기를 줄이기 위해 ① 빚을 탕감하거나 ② 통화가치를 하락시키는 방법이 있다. 다음, 부채상환 능력을 키우기 위해 ③ 경제성장을 통해 가계소득을 증대시키거나 ④ 부채 담보물의 유동성을 높이는 길이 있다.

  # 먼저, 부채의 크기를 축소시키려면
  ① 가계 빚을 직접 탕감해주는 방법이 있다. 그렇게 되면, 근검절약하며 살 필요 없이 적당히 빚을 지며 살려는 공짜심리가 넘실대며 도덕적해이(道德的解弛)가 극성을 부리게 된다. 파산선고 같은 불이익 없이 개인의 빚을 탕감해줄 경우 빚을 갚지 않고, 나아가 부채를 더 늘리려는 사람들도 나타나 경제 질서는 뿌리 채 흔들릴 것이다. 배보다 배꼽이 더 커질 것이 분명해진다.

  ② 점진적 인플레이션을 진행시켜 부채의 상대 가치를 떨어트린다. 금리인하를 통하여 통화가치를 하락시키고 명목소득을 높여, 사실상 빚의 크기를 줄이는 일이다. 물론 사회, 경제적으로 상당한 고통을 각오하여야 한다. 그러나 완만한 물가상승은 최악의 상황을 피해가는 차악(second worst)의 선택인지 모른다. 멈칫거리다가 가계부채와 맞물린 부동산침체가 금융 대혼란으로 이어지면, 도리없이 유동성을 크게 팽창시켜야 하고 자칫 경기침체와 물가앙등을 동반하는 스태그플레이션의 늪에 빠질 가능성이 크다는 점을 직시하여야 한다.

  # 다음 가계의 부채상환 능력을 키우려면
  ③ 경제성장으로 가계소득을 늘려 부채의 비중을 낮추는 일이다. 그러나 세계경제가 공급과잉(供給過剩) 상황에 있어 경기회복을 기대하기 어렵고, 한국경제는 이미 저성장 기조에 접어들었다. 설사 지속적 경제성장이 이루어진다 하더라도 지금과 같은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계속된다면 부채상환 능력은 개선되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먹을 것 먹지 않고, 입을 것 입지 않고 빚을 갚아야 하는데 우리나라 가계 중에서 허리 띠 졸라 맬 여력이 있는 가계가 얼마나 되는지 의심스럽다. (고도성장기, 금융억압 상황에서 (특정)기업이 저리로 대출받는 것은 공짜나 다름 없었다. 기업이 성장하면서 빚의 상대적 크기가 작아지는데다 인플레이션이 진행되면서 빚은 흐지부지 되었다. 후진국에서 자본축적 수단의 하나로 재벌 형성의 토대가 되었다.) 

  ④ 가계부채와 맞물려 있는 부동산시장 유동성을 높이는 일이다. 가계부채의 상당부분이 부동산 담보대출인데, 부동산시장 역쏠림현상으로 거래가 없다보니 마지막으로 부채열차(loan train)를 탄 사람들은 벌금을 물고 내리려도 내릴 수가 없다. 빚을 지고 산 집을 손해를 보고 팔려고 해도 팔리지 않으니 부채의 사슬에 묶인 것과 다름 없게 되었다. 한 번 빚쟁이가 되면 옴짝달싹하지 못하고 얽매여야 되는 상황이 전개되고 있다. 부동산 쏠림현상이 극성을 부리던 시기에 만든 거래제한과 보유억제를 위한 제도들은 벌써 오래 전에 원점에서 재검토되어야 했었다.
                                졸고 ; 빚의 올가미  참조
 
  가계부채를 직접 탕감하면 그 부작용이 더 크고, 내외 경제환경을 감안할 때, 가계소득증대 또한 기대하기 어렵다. 그렇다면 가계부채의 덫에서 벗어날 비상구(emergency exit)는 어딘가? 점진적 인플레이션을 유발하고 부동산시장의 유동성을 높이는 고육지책이 남아 있다. 막연히 “어떻게 되겠지” 하다가 혼란에 빠진‘97년 구제금융 사태의 뼈아픈 교훈을 되새기자. “엎지른 물”을 주워 담으려 야단법석 떨지 말고, 먼저 물동이가 깨지지 않도록 하는 선제적 대응이 요청된다.
  우리나라에서는 사전에 위험을 예방하는 일은 눈에 띄지 않고 그저 일이 터지고 나서 뒷처리를 하는 일이 대단한 것처럼 포장되어 왔다. 이 같은 생색내기 전시행정 때문에 위기는 반복되는지 모른다. 가래로도 막지 못하는 것을 호미로 막는 사람들이 더 높이 평가받게 하는 장치는 없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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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권감독원에서 증권제도연구실장, 조사부장, 조사연구국장 등을 역임하였다. 미시간 주립대 객원연구원, 이코노미스트, iweekly 편집위원을 역임하였으며 성도회계법인 부회장, 현재 선인장학재단 이사, 대한상사중재원 중재인, 비즈니스 워치 금융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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