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내커

한국인 자화상

    1977년 연간 수출 100억불, 1인당 GDP는 1,000달러에 이르자, 온나라가 흥분하며 야단법석을 쳤다. 2011년에 수출은 그 50배가 넘는 5,600억불, 소득은 25배에 가까운 25,000달러에 이르는데도, 직장인들이 택한 사자성어는 씁슬하게도 수무푼전(手無分錢)이라 한다. 주머니를 뒤져 봤자 땡전 한 푼 없다는 이야기다.(물론 황금방석에 앉아서도 마음의 여유가 없으면 거지나 다름없다) 가족의 생계를 짊어진 근로자들이 지치고 무엇인가 불안에 시달리고 있음을 짐작하게 하는 장면이다.
  게다가 통계청이 발표한 “2011 사회조사”는 우리를 더 우울하게 한다. 대한민국 국민의 58.7%가 평생을 노력해도 (경제적) 신분이동의 가능성을 찾을 수 없다고 답했다. 정말 가슴을 답답하게 하는 것은, 자신뿐만이 아니라 그들 자식들 세대의 신분상승조차 기대할 수 없다는 사람들이 무려 42.9%나 된다.

  심심하면 보도되는 바와 같이 우리나라는 전 세계가 부러워하는 “성장신화”를 가지고 있다. 그런데도 오늘날 다수의 사람들이 자긍심을 가지기는커녕 불안심리를 뿌리치지 못하고 패배주의 늪에 빠져있다는 사실을 어떻게 설명하여야 하나? 하물며, 자녀의 신분이동 가능성에 대해서까지 부정적 인식이 팽배하다는 사실은 우리사회에 아노미(Anomie) 현상 즉 목적의식을 잃고 무기력하게 방황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음을 의미한다. 한국경제가 성장제일주의 덫에 걸려 있다는 증상의 하나인지 모른다. 그 동안 성장! 성장! 하며 외쳐온 성장의 그림자가 지나치게 짙게 깔리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생각건대, 정직하게 노력하는 사람들이 빈곤에서 탈출하지 못하거나 꿈과 희망을 접어야 한다면, 자유와 평등이 굴절되고 전체주의 망령이 어른거린다고 할 수 밖에 없다. 신분이동이 제약된 봉건사회도, 공산독재체제도, 카스트 계층 국가가 아닌데도 많은 사람들이 신분이동의 가능성을 기약하지 못하는 한계상황을 어떻게 풀이하여야 하는가?

   메소포타미아, 인더스, 황하, 이집트 같은 4대 문명발상지 대부분이 근현대에 이르러는 경제발전이 더뎌지고 있다. 자연 조건이 좋아 우수한 두뇌와 개척정신이 뛰어난 종족들이 많이 몰려들어 일찍이 찬란한 문명을 일궈낸 이 지역이 제자리걸음을 하며 상대적으로 낙후된 까닭은 무엇인가? 신분이동 가능성이 거의 없는 전체주의와 함께 파벌간 극한 대립이 장기간 이어졌기 때문이었다. 북한의 경제상황이 저 지경까지 다다른 까닭은 무엇인지 길게 생각하지 않아도 알 수 있다. 최근 황하지역이 이 현대문명을 조금씩 따라잡기 시작한 것은 한마디로  신분이동의 가능성이 어느 정도 열렸졌기 때문이다.

  한국경제의 성장 원동력은 무어니 무어니 해도 사람들의 빈곤탈출 내지 신분상승 의지였다. 열심히 일하면 자신과 가족들의 생존과 미래에 대한 기대감이었다. 수출 100억불 달성의 주역이었던 가발공장, 방직공장에서 일했던 누나, 형들에게는 오로지 일만이 전부였다. 수줍어야 할 과년한 처녀가 화장실에 갔다가 치마나 바지도 제대로 다 못 올리고 방직기계 앞으로 뛰어간 것은 그저 살려는 생존본능 때문이었다. 자신은 몰라도 제 동생이나 제 자식에게는 좀 더 나은 환경을 물려주려고 이를 악물고 숨도 쉬지 않고 일한 것이 경제성장의 밑거름이었다. 

  오늘날 경제성장과 발전의 원동력이 되는 그 소중한 성취동기가 훼손되어 가고 있는 까닭은 무엇인가? 전시효과를 중시하는 가운데 숫자로 나타난 결과에 집착하면서 과정이 어떻든 성장의 내용을 무시하였기 때문은 아닌가? 구호는 같이 잘살자고 하면서도 경쟁탈락자, 무능력자들에게 비상구를 제공하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성장은 경쟁의 바탕에서 시작되는데 경쟁에서 진 사람들을 돌보지 않는다면 공정 경쟁이 이루어질 수 없다. 성장의 뿌리가 된 그 누나 형들은 지금 어디에 있는지 생각해 본 사람들이 있는가? 죽음을 무릅쓴 전투는 병졸들이 하고, 장수는 망루에 가만히 앉아 있다가 나팔은 저 혼자만 불었기 때문은 아닌지? 자유와 민주를 말하면서도 전체주의 사고방식에 젖어, 생각이 다르다고 무조건 불평분자로 매도하여 위화감을 조성한 것도 부분적 원인이 되었다고 나는 생각한다.
  지금은 너나없이 우리 모두에게 깊은 반성과 성찰이 필요한 때다.

                            졸고 패자부활의 지혜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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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권감독원에서 증권제도연구실장, 조사부장, 조사연구국장 등을 역임하였다. 미시간 주립대 객원연구원, 이코노미스트, iweekly 편집위원을 역임하였으며 성도회계법인 부회장, 현재 선인장학재단 이사, 대한상사중재원 중재인, 비즈니스 워치 금융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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