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실패와 정부실패

입력 2011-09-30 11:29 수정 2011-10-05 08:47


   주가와 환율이 크게 출렁거리면서 시장개입 논의가 일고 있다. 그러나 기초경제여건을 무시한 시장개입은 비용만 크게 들고 부작용만 커지고 경제 질서까지 흐트러지게 할 우려가 있다. 주가, 환율, 금리 같은 금융가격지표를 막무가내 끌어당기려다, 국민경제에 커다란 시련을 안긴 정부실패의 사례를 되짚어 보자. 



  # 환율을 억누르려다 국민경제를 파탄으로 몰고 간 외환금융위기를 되새겨보자. 96.12. 840원대에 머물던 환율이 야금야금 오르기 시작하였다. 당시 경상수지 적자가 위험수준이라는 GDP의 4%를 넘어 4,7%에 이르고, 외환보유액이 월간 수입액의 3개월 치도 안 되는 극한상황이 되었다. 외국금융기관들은 우리나라에 대한 신용라인(credit line)을 좁혀가고 만기상환연장(roll-over)비율을 줄이며, 외국인 포트폴리오 투자(FPI) 자금도 동요하기 시작하였다.
  이처럼 불안한 상황에서는 리스크프리미엄이 높아져 금리나 환율이 급격하게 상승한다. 금리나 환율이 높아지면 외화유출을 주춤하게 하거나 나아가 외화유입을 유도하는 자동조절기능이 작동한다. 그런데도 환율을 억지로 억누르며“한국경제 「펀더멘털」이 좋다”는 말을 반복하였다. 영리한 투자자들은 이 바보들의 허풍을 읽고 역외시장에서 달라를 거저 줍다시피하였다. 시장에서 신뢰는 곤두박질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그 당시 환율이 900원을 넘어서면 불가능했던 “국민소득 1만 불 달성”이라는 구호는 몸은 씻지 않고 분단장과 값싼 향수만 뿌려대는 꼴이었다. ‘97년 10월과 11월 2달 동안에 약117억불에 가까운 외화를 투입하며 시장에 개입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외화가 바닥을 들어내고 한국경제의 기력이 탈진하자 달러 값은 훨훨 날라, 12월에는 무려 1,900원대를 넘어섰다. 이는 가만히 있는 억지로 누르다 놓치면, 높이 튀어 오르는 용수철 효과와 똑같은 이치다. 정부실패는 정말 시장실패보다 무섭다는 것을 피부로 느끼게 하는 장면이었다. 그 때, 우리나라와 달리 홍콩은 ON(over night)금리를 일거에 100%까지 올리고, 타이완은 환율을 하루 동안에 6%나 상승시켜 아시아 외환금융위기를 비켜갔다.
  # 주가를 밀어 올리려다 엄청난 사회적 비용을 지불한 사례도 절대 잊어서는 아니 된다. IMF사태 이후 신기술산업을 육성한다며, 코스닥 시장 활성화 방안, 건전화 방안 등을 거듭 발표하였다. 각종 조세지원을 통하여 코스닥 시장 상장을 유도하다가 급기야는 적자기업의 코스닥 등록도 허용하였다. 거래소시장에서 코스닥 시장 이전을 유도하다, 코스닥 시장이 지나치게 과열되자, 역으로 코스닥 기업의 거래소 이전을 유도하는 억지까지 연출하였다. 어떤 실세들이 코스닥 시장에서 한탕하려 한다는 유언비어(?)가 나돌기도 하였다. 어느 경제관료는“코스닥 시장이 아직 저평가되었다”는 무책임한 발언을 하여 시장을 혼란스럽게 하였다.
  이러한 배경아래 '96년 7월 100으로 출발한 코스닥지수는'98년 하반기 이후 불붙기 시작하여 99년 5월에는 288(지금의 지수 2880)을 훌쩍 넘어섰다. 이처럼 안개와 거품이 쌓여 있는 상황에서 멋모르고 뒤늦게 「코스닥 러시」에 뛰어든 투자자들은 차례로 수렁에 빠지게 되었다. 시장이 과열되면서 거금의 주식발행 초과금을 거머쥐며 횡재한 사람들이 나타나자, 많은 벤처기업들은 본연의 기술개발보다는 주식상장, 인수·합병 같은 연금술에 열중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염불은 하지 않고 잿밥에 눈독을 들이는 스님이 어찌 도를 깨우치겠는가? 벤처의 성공신화는 하나 둘 무너지고 그 영웅(?)들은 죄인이 되어갔다. 시장의 신뢰 상실로 유망 신기술 기업에 대한 자금 조달이 상당기간 불가능하게 되고 한국경제의 저력은 그만큼 훼손되어 갔다.

  세계화가 진행되고 경제규모가 커지면서 시장을 조율하고 견인하는 데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고 부작용은 커진다. 그런데도 정책의지에 맞도록 시장을 끌어당기려고 무리수를 두다보면 경제는 피로증후군에 빠지게 되고 정책일관성 문제도 불거지며 신뢰가 무너진다. 주가, 금리, 환율이 기초경제여건을 적정하게 반영하도록 하는 것이 경제를 위험에 빠트리지 않는 기본이며 첩경이다. 이를 무시하고 묘수를 부리다가는 어김없이 더 큰 대가를 치르게 된다.
  같은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으려면 비싼 대가를 치뤘던 실패를 교훈으로 삼아야 한다. 문제는 시장개입에 드는 모든 비용은 사회적 비용으로 전가되어 국민부담이 되고, 규제자들이 책임지는 일이 없었다. 그래서 정부실패는 계속되는지 모른다.

easynomics@naver.com






관련 글들은 네이버 블로그에 정리되어 있습니다.
http://easynomics.blog.me 을 클릭하시면 읽을 수 있습니다







증권감독원에서 증권제도연구실장, 조사부장, 조사연구국장 등을 역임하였다. 미시간 주립대 객원연구원, 이코노미스트, iweekly 편집위원을 역임하였으며 성도회계법인 부회장, 현재 선인장학재단 이사, 대한상사중재원 중재인, 비즈니스 워치 금융전문위원

ⓒ 한경닷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광고

투표김영란법 시행 1주년, 어떻게 생각하세요?

  • 부패방지를 위한 획기적 계기로 현행 유지해야 1786명 67%
  • 민생경제 활성화 위해 현실에 맞게 금액 수정해야 892명 33%
광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