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내커

스태그플레이션의 그림자

  오늘날 세계 금융시장 내지 경제가 휘청거리는 까닭은 갈수록 늘어만 가는 각국의 정부부채가 가장 큰 원인임은 이론의 여지가 없다. 부채의 함정에 이미 빠졌거나 그 벼랑 끝에 있는 나라들이 한둘이 아니다. 문제는 오랫동안 누적되어 쌓인 빚을 하루 이틀에 해결할 수단이나 방법이 도대체 없다는 점이다. 미국의 경우만 보더라도 베트남전 이래 지금까지 재정적자, 무역적자 즉 쌍둥이적자가 반세기 이상 누적되어 왔다. 이런 상황에서 “금융시장을 진정시킬 수 방안은 아랫돌 빼서 윗돌 괴고, 윗돌 빼서 아랫돌 괴는 부분적으로 한시적으로 진정시키는 “미봉책’이 있을 뿐이다. 그러나 그것은 근본 해결방안이 아니어서 위험과 혼란은 멀리 사라지지 않고 그저 눈앞에서 맴돌고 있다. 조금만 깊이 생각하면, 작금의 금융시장 혼란이 머지 않아 수습될 수 있다는 일부의 낙관론은 서투른 짐작일 뿐이다.

  전세계가 직면하고 있는 부채의 터널을 벗어나려면 길고 긴 고통을 함께 겪어야만 한다. 정부부채를 줄이는 길은, 세수를 증대시키거나 아니면 정부의 씀씀이를 줄이는 일 이외에는 다른 선택이 없다. 어느 나라고 정치척 이해를 떠나더라도 증세와 복지 감소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먼저, 세수를 늘이는 일은 지금과 같은 공급과잉 경제체제에서 쉽지 않다. 중국 혼자서도 전 세계 공산품 수요의 2배 가까이 만들어 낼 수 있는 상황에서 생산과 소비의 원활한 순환이 어렵다는 이야기다. 게다가 재정적자로 시달리는 나라들 대부분 빈부격차가 극심해지고 있어 소비기반이 자꾸 취약해지고 있다. 유효수요가 턱없이 부족한 상황에서 불황을 극복하며 세수를 늘이기가 어렵다는 것은 누구나 다 안다. 더우기 부채로 말미암은 세계적 불황이 도래한다면 세수가 더 줄어들어 재정적자의 증가속도가 더 빨라지는 악순환에 빠질 우려도 있다. 그리고 (정치적)여론을 막후에서 주도하는 부자들이 증세를 웬만해서는 허락하지 않을 것임은 지금까지의 경험에서 잘 드러나고 있다.
  다음, 씀씀이를 줄여 정부부채를 줄이는 일인데 이는 모라토리엄 같은 한계상황에 이르기 전에는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이 세상 모든 정치인, 관료들은 나라의 장래를 걱정하기보다는 자신들의 영역을 넓히려는 할거주의에 집착하기가 쉽기 때문이다. 극한적 상황이 벌어지기 전에는 정부 부채는 이래저래 야금야금 늘어나게 되어있다. 우리나라의 경우만 보더라도 지방자치단체들이 빚투성이 상태에서 호화청사를 무턱대고 짓고 있는 행태를 보자.

    전 세계를 뒤덮을 불황의 늪을 건너기 위한 대책은 재정완화와 유동성 완화 두 가지 방법이 있는데 빚의 덫에 걸려 있는 상황에서 재정확장 정책이 어찌 가능한 일이겠는가? 이럴 경우 남아 있는 선택은 어쩔 수 없이 유동성 팽창 방법뿐이다. 그리하여 고통스러운 인플레이션이 진행되면 화폐가치는 저하되어 실질적 재정부채의 크기는 감소된다. 교과서에 있는 인플레이션조세(inflation tax)가 바로 그것이다. 예컨대, 인플레이션이 년 7%씩 10년간 진행되면 부채의 실질가치는 35%로 줄어든다. 그러나 이 논리도 미국이나 일본처럼 자국 통화 베이스의 빚을 졌을 때 해당하는 이야기다. 남유럽처럼 외화표시 부채가 대부분인 나라에서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다. 일본의 경우 정부부채의 대부분을 자국민이 소화하고 있어 문제가 덜 심각한 편이다. 최근 엔화 강세를 보면 짐작할 수 있는 장면이다.

   헤어나기 어려운 재정적자와 불황을 생각할 때, 실업률은 상승하고 물가는 오르는 스태그플레이션의 그림자가 이미 가까이에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중산층, 서민들은 이중의 고통을 피해 갈 방법이 있을 수 없다. 나라가 어지러울 때 허리띠 졸라매는 의무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바로 백성들에게 있다. 어쩌면 미국과 서유럽국가들은 그 동안 힘들이지 않고 누려온 후생의 대가를 이제부터 지불하여야 하는지도 모른다. 글로벌 경제체제에서 소비위축의 여파는 전 세계로 퍼질 것이다. 

  한국의 재정적자는 아직은 위험수준이 아니라고 하지만 부채의 증가속도를 보면 마음 놓기가 어렵다. 가계, 기업, 공기업을 포함한 재정적자의 규모와 내용을 일반인들이 제대로 알기 어렵다는 점도 하나의 문제다. 투명성이 부족한 세상에서는 문제가 잠복되다가 어느 순간에 불거져 더 큰 혼란이 벌어지게 된다.

  해외의존도가 높은 우리나라는 미구에 닥칠 세계적 스태그플레이션과 그 파장을 피해가려는 묘수보다는 적극적으로 헤처나가라려는 자세가 필요하다.

(이 글은 중앙일보 11.9.7일자 비즈칼럼, 9.15일자 Korea Joongang daily(shadow of stagflation)에 게재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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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권감독원에서 증권제도연구실장, 조사부장, 조사연구국장 등을 역임하였다. 미시간 주립대 객원연구원, 이코노미스트, iweekly 편집위원을 역임하였으며 성도회계법인 부회장, 현재 선인장학재단 이사, 대한상사중재원 중재인, 비즈니스 워치 금융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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