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의 세습과 빈곤의 상속

입력 2011-09-01 01:08 수정 2013-05-09 16:52


  먹이사슬(food chain)의 밑바닥이 망가지면 꼭대기에 있는 포식자의 생존도 불가능해진다. 플랑크톤이 없어지면 이를 먹고 사는 정어리의 살 길도 막막해진다. "바다의 목초" 또는"바다의 쌀"이라고 불리는 정어리 떼가 굶어죽으면 다랑어, 고래 같은 대형 물고기도 결코 살아남을 수 없다.

  “국내 30대 재벌 직계가족 118명의 자산 중에서 지난 1년 동안 증권시장을 통하여 불어난 자산가치만 13조원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상장사 주식 시세 차익과 배당금을 합친 것으로 비상장 주식을 포함하면 실제 불어난 금융자산은 훨씬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세계일보.‘11.7.1) 연봉, 부동산 소득 같은 것을 제외하고도, 1인당 평균 약 1,100억 원에 달하는 이 금액은 중산층의 기준이 되는 중위소득 년 1,900만원의 무려 6,000배에 달한다. 이른바 88만원 세대에 비하여는 12,000배가 넘는다. "우리나라에서 만연하고 있다"고 하는, 변칙적 부의 세습을 위한 대기업 일감 밀어주기 대상회사들이 대부분 비상장사임을 감안하면 이와 같은 비교는 사실상 무의미하다 하겠다.

   반면에 신제품 개발 초기단계에는 활기하게 돌아가던 중소기업이, 시장이 커지면 오히려 맥을 추지 못하고 넘어지는 현상이 자주 목격되는 까닭은 무엇일까? 일시적으로 성공한 기업이 경거망동 사업을 확장하는 것도 하나의 원인이다. 그러나 자본력, 교섭능력(bargaining power), 방어능력이 뛰어 난데다 브랜드 가치가 높은 대기업들이 가하는 유형, 무형의 압력을 견디지 못하기 때문이라는 시각이 유력하다. 이는 인간 생활의 기본이 되는 의식주산업에서 자고, 입는 것은 물론 먹는 것까지 대기업집단이 장악해 가고 있는, 나라의 장래가 정말 걱정되는, 우울한 현상과 무관하지 않다. 지금과 같은 막무가내 약육강식 사태가 진행되면 먹는 것과 관련된 산업도 대부분 대기업집단이 장악할 것이다. 이미 라면, 빵, 음료, 두부는 물론 소비가 늘어나는 품목 들은 대부분 대기업들이 잠식해가고 있다. 1인당 GDP 3만불을 바라보는 나라에서 위생문제 때문에 재벌기업이 두부를 생산해야 경쟁력이 붙는다는 어느 경제단체의 논리는 목불인견(目不忍見)의 차원을 넘어섰다.

   독과점, 부패, 거품, 탈세가 아닌 기술혁신으로 큰돈을 버는 사람들이 많이 나타나는 것은 사회발전을 위하여 정말 바람직한 일이다. 그러나 소수의 사람들이 대부분의 부를 다 차지하게 되면 경제의 순환이 막혀 결국 그 자신들도 주저앉게 된다. 예컨대, 콩을 심는 사람들이 있어야 두부공장이 돌아간다. 두부를 사먹을 능력이 있는 사람들이 있어야 비로소 두부 생산의 의미가 있다. 경제력 집중 현상이 지금과 같은 속도로 진행된어 돈벌이되는 모든 것을 몇몇 대기업집단이 싹쓸이 하게 되면 어떻게 될까? 그렇게 되면 먹이사슬이 끊어져 시장경제 시스템이 훼손되어 결국 고래나 상어도 살지 못한다. 콩을 심고, 두부를 만들고, 두부를 파는 일을 몇 사람이 장악하게 되면 끼리끼리 서로 두부를 사먹어야 하는 지경에 이른다. 우리 옛말에도 9,999석 추수하는 욕심쟁이가 한 섬 하는 가난한 이웃의 것까지 뺏어 만석을 채우려 든다는 말이 있다. 그렇게 되면 사회전체가 활력을 잃고 사양길로 접어들어 결국 욕심쟁이가 먼저 넘어지는 것은 동서양의 역사에서 수없이 반복되었다.

   시장경제의 강점은 다수가 경쟁하고 결과적으로 지속적인 시장청산을 통하여 유도되는 기술혁신에 있다. 시장참여자가 점차 줄어들고 경쟁이 제한되는 상황이 되면 성장과 발전이 제약되는 쇠략의 길을 갈 수밖에 없다. 그리고 이 세상에서 부자도 그리고 부자나라도 혼자서는 살 수 없는 시대가 이미 깊숙이 전개되고 있다. 쉬운 예로 중국과 미국이 각축하고 있는 것같이 보이지만 실상은 서로 기대고 있는 상호의존(inter dependence) 관계에 있다. 제품 고도화로 융합생산이 절대 필요한 환경에서 대기업과 중소기업은 경쟁관계라기 보다는 협업과 분업관계에 있는 불가분의 상호연결(inter connected) 관계에 있음을 상기하여야 한다.

   경제성장 역사가 일천한 우리나라에서 부의 세습은 3대를 거쳐 이제는 4대로 이어지고 있는데, 이는 봉건사회가 아닌 자본주의 역사에서 그 유사를 찾아보기 어렵다. 반면에 허리가 휘어지는 사교육비, 끼리끼리만 먹고 살겠다는 네트워킹 사회에서 신분이동의 가능성조차 생각하기 어려운 영구빈곤이 이제는 대를 이을 조짐이 짙어지고 있다.

  부의 세습과 빈곤의 상속 즉 영구빈곤사이에는 어떤 상관관계 또는 인과관계가 있는지 실력 있고 공부 많이 한 사람들이 더 깊이 연구하고 풀어야 할 다급한 과제다.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빈곤의 상속이 계속되다 보면 결국 부의 세습도 아무 소용없게 되고 만다는 점이다. 한강 백사장에 아무리 으리으리한 백화점을 세운다한들 손님이 없으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미래사회는 공급과잉사회로 생산기반 못지않게 수요기반도 중요하다는 사실을 망각해서는 절대로 안 된다는 이야기다.

  공급과잉과 반대로 수요부족으로 빚어진 비극이 바로 저 유명한 대공황(the Great Depression)임을 우리는 잊고 있다는 말인가?

 * 관련 글들은 네이버 블로그에 정리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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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권감독원에서 증권제도연구실장, 조사부장, 조사연구국장 등을 역임하였다. 미시간 주립대 객원연구원, 이코노미스트, iweekly 편집위원을 역임하였으며 성도회계법인 부회장, 현재 선인장학재단 이사, 대한상사중재원 중재인, 비즈니스 워치 금융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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