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번 걸려들면 여간해서 벗어나기 어려운 것이 빚의 올가미다. '98외환·금융위기도, '08세계금융위기도 그리고 '11금융혼란도 모두 빚의 덫에 치여서 발생한 위기와 혼란이다. 오늘날 세계경제는 가계, 기업, 정부 모두 부채의 함정에 빠져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빚이 얼마나 이 세상 인간사를 뒤틀리게 하는지 들여다보자.

  # 1904년 일제는 조선경제를 파탄에 빠뜨리기 위한 책략의 하나로 차관도입을 유인하였다. 일제는 이 빌린 돈으로 조선을 억압하기 위한 경찰조직 확장, 일본 거류민을 위한 편의시설 등을 마련하는데 쓰도록 강요하였다. 1907년에는 대한제국이 걸머진 외채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1,300만 원으로 늘어났다. 조선은 적으로부터 빚을 내서 적을 위하여 써버린 그 빛의 올가미에 걸려 옴짝달싹할 수 없게 되고, 조선의 경제적 주권은 아무런 저항도 없이 송두리째 일본으로 넘어가게 되었다. 양식 있는 사람들 사이에 국채보상운동이 일어났지만, 일제는 일진회 같은 매국노들을 앞세운 집요한 방해공작으로 이 운동을 중도에 좌절시켰다. 빚에 올가미에 걸린 조선은 불과 수년 후에 하릴없이 경술국치를 당해야 했다.

  #  세계경영을 표방하며 확장을 거듭하였던 일부 재벌기업의 몰락도  빚을 가볍게 보았기 때문이다. 경제개발초기에 높은 인플레이션, 그리고 시장금리가 12%에서 15% 가까이 되는 환경에서 1% 내외의 초저금리 구제금융을 받아 기업을 확장해 갔던 대기업 주인들은 빚은 갚는 것이 아니고 시간이 지나면 그저 없어지는 것으로 생각했을 것이다. IMF 구제금융 사태 이후 신용경색으로 금리가 치솟으면서 시중자금이 몇몇 재벌기업으로 몰리면서 본격화되었다. 시장에서 20%가 훨씬 넘는 고금리로 회사채를 발행하여 생각 없이 자금을 끌어들인 결과, 나중에는 금융비용 즉 이자도 감당하지 못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처음에는 거의 공짜로 돈을 빌려 쓰다가, 세상이 바뀌어 제대로 시장금리를 물게 되자, 다시 말해 제 값을 다 주고 돈을 쓰다가, 빚의 덫에 걸린 것이 아니겠는가?

  # 군복무 후 대부업체에서 400만원을 대출받은 한 대학생은 44%의 이자를 물어내다가 10개월 후에는 빚이 1,300만원으로 불어나고 월 이자만 90여만 원을 물게 되었다. 이틀 공부하고, 삼일 일하는 이 학생은 빚의 함정에서 빠져나올 가망이 없어지자 우울증, 불면증으로 시달리다 결국 법원에 개인회생을 신청하였다.(중앙일보‘11.8.12) '11.6말 현재 대학생 약 5만 명이 대부업체로부터 800억 원 가량의 빚을 지고 있다는 우울한 통계가 있다. 인생초반에 자칫 신용불량자로 전락할지 모를 위험이 이 젊은이들 가까이에 도사리고 있는 셈이다.
  우리 속담에 "외상이면 소도 잡아먹는다."고 하였다. 미래를 생각하지 못하고 당장 눈앞의 것만 생각하고 일을 벌이거나, 낭비하는 생활을 하다보면 만사를 그르치기 쉽다는 경고다. 부채는 짐을 머리에 이거나 등에 지고 있는 것과 다름없이 빚진 자의 행동을 부자유스럽게 한다. 일단 빚을 지면 시간이 흘러도 그 짐을 벗기보다, 되레 더 짐이 무거워지기 쉽다. 기업도 부채가 늘어나면 새로운 제품, 새로운 시장이 출현하여도 자금조달이 어려워 기회를 놓친다. 그래서 주식 투자에 있어서도 다른 조건이 비슷하다면, 부채비율이 업종 평균치보다는 낮은 종목을 선택하라고 말하고 싶다. 빚이 많게 되면 결국 빚 갚을 약속을 지키지 못하는 경우가 일어난다. 시쳇말로 돈이 거짓말하지 사람이 거짓말하는 것이 아닌데도 빚진 사람의 인격 즉 신용등급이 타락한다. "엎친 데 덮친다."고 빚은 늘어나고 이자는 높은 이자를 물게 되는 이중의 고통을 당해야 한다. 

  한국경제 복병 중에 가장 무서운 것은 말할 것도 없이 가계부채다. 기업의 부채, 정부의 부채는 고통스럽기는 하여도 기업해체, 공적자금 투입을 통하여 국민부담으로 해결하는 방법이 있다. 그러나 법인격이 아닌 개인은 목숨을 버릴 수도 없고, 그렇다고 개인의 부채를 탕감해 주기 시작한다면, 너도나도 빚쟁이가 되려는 도덕적 해이가 판을 치게 경제 질서가 순식간에 와해될 우려가 있다.
  모두가 심혈을 기우려 연구해야 할 과제인데도 가계부채 관련 폭탄은 자꾸 커가고 있는 까닭은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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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권감독원에서 증권제도연구실장, 조사부장, 조사연구국장 등을 역임하였다. 미시간 주립대 객원연구원, 이코노미스트, iweekly 편집위원을 역임하였으며 성도회계법인 부회장, 현재 선인장학재단 이사, 대한상사중재원 중재인, 비즈니스 워치 금융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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