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내커

가난은 나라도 못 당한다?

    지하철 승객들이 읽다 던져 둔 공짜신문을 수거하는 어른들이 늘어나고 있다는 느낌이다. 요즘에는 50대쯤 되어 보이는 중장년층도 간혹 보인다. 줍는 사람들이 늘어나서 그런지 그들의 헌 신문 뭉치가 그만큼 더 가볍게 보여 안쓰럽기도 하다.
  얼마 전에는 초노의 부인이 수거한 신문부대자루가 넘어져 헌 신문종이들이 바닥에 널브러졌다. 그 아주머니는 얼굴이 빨개지며 당황하여 어쩔 줄 몰라 했다. 마침 옆에 서있던 나는 부대를 일으켜 세우고 흩어진 신문들을 다시 담도록 도왔다. 그리고 “요기나 하세요.”하며 남모르게 만원을 쥐어드리자, 허름한 차림세이면서도 단정한 모습의, 그 아주머니는 겸연쩍어하며 몇 번이나 사양하였다. 그 아주머니가 자루를 끌고 지하철에서 내리며 내게 조용히 한 말은 놀라웠다.“이 돈은 저의 이틀 벌이에요.” 흔들리는 전철에서 사람들 틈사이 오가며 헌신문지를 수거하는 그 분의 하루벌이가 설농탕 한그릇 값도 안된다는 이야기다. 세상물정 모르고 사는 내가 어찌 “삶과 인간”에 대하여 이야기할 수 있다는 말인가? 

  사람 사는 곳 어디에나 있기 마련인 허드레 일자리조차 그 아주머니가 찾지 못하는 까닭은 무엇인가? 말할 필요도 없이 고용구조가 악화되었기 때문인데, 외국근로자 유입에 따른 부작용이 가장 큰 원인이다. 그 아주머니는 동남아의 어떤 젊은 여자에게 어떤 식당의 주방 일자리를 빼앗겼는지 모른다. 저임금 외국인 근로자가 막일거리의 임금수준을 낮춰 수출경쟁력은 높아지고 (한계)기업의 이윤은 늘어났는지 모른다. 그 대신 경쟁력이 없거나 뜻하지 않게 경쟁에서 탈락하여 갈 곳이 없어진 중장년 내국인 근로자들은 허드레 일자리조차 구하기 힘들게 되었다. 어쩌면 저기술산업을 지원하겠다며 손쉽게 해외인력을 받아들이는 근시안적 대책의 희생양이 그 아주머니인지도 모른다. 물론 우리나라와 같은 고학력 사회에서 큰 고생 없이 자란 젊은이들이 비숙련 단순노동을 기피하는 현상도 벌어지고 있다.
  경쟁력 강화는 저임금, 저금리 같은 값싼 생산요소를 투입하여 싼 물건을 만들도록 하는 일이 아니다. 선진기술을 도입하거나 개발하여, 더 많은 임금을 지불하면서도 더 좋게, 더 싸게, 더 빨리 상품을 만들어 내는 일이다. 봄비가 촉촉하게 내리면 내 논만이 아니라 이웃 논까지 적시듯 적하효과가 각 부분으로 넓게 퍼질수록 국가경쟁력은 더 더욱 강화된다. 기초학문이 튼튼하여야 고기술산업이 계속하여 성장하고 발전하는 이치와 같다.

  우리 옛말에 “가난은 나라님도 못 당한다.”고 하였다. 농경사회와 같이 생산량이 해마다 엇비슷한 단순재생산 사회에서, 게으르고 방탕하게 사는 사람들에게 꼭 들어맞는 말이다. 그러나 오늘날과 같이 단박에 크나큰 부가가치를 만들어 내는 확대재생산 사회에서, 열심히 일하려는 사람들에게 해당되는 말은 결코 아니다. 지금은 자본축적과 획기적 기술혁신을 결합하여 생산성을 무한히 높일 수 있는 시대다. 어느 인사의 말처럼 똑똑한 사람 혼자서 수만, 수십만 명의 몫을 혼자서도 벌어들이기도 한다. 그런데 그 많은 돈을 혼자서 쓴다면 결국 그가 생산한 상품들도 팔리지 않아 하등의 가치가 없어지게 된다. 이러한 공급과잉사회일수록 능력 있는 소비자들이 많아져야 소비수요가 안정되어 경기도 안정되고, 더불어 생산의 경제적, 사회적 의미도 높아진다. 그래서 조세, 기부 같은 2차분배를 통하여 소비수요을 확충하는 길이 훌륭한 사람들이 더 큰 일을 할 수 있도록 유도하는 길이다.
                                 졸고 “성장과 분배의 허실” 참조

   생각해 보니, 나는 정말 부자라는 느낌이 들었다. 당시 내 지갑에 있었던 11만원의 반만 드렸다면, 그 아주머니의 열하루 벌이에 해당하는 크나큰 효용을 창출할 수 있었다는 아쉬운 생각이 들었다. 큰 능력을 가진 사람들만이 아닌 소시민들도 소중한 가치를 만들어 낼 수 있다는 교훈이 아니겠는가? 같은 크기의 재화를 가지고도 잘 나누면 재화의 한계효용을 크게 하며 사회적 후생의 총량을 증대시킬 수 있다. 생산극대화는 효용극대화를 통하여 더욱 가치 있는 길이 된다는 이야기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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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권감독원에서 증권제도연구실장, 조사부장, 조사연구국장 등을 역임하였다. 미시간 주립대 객원연구원, 이코노미스트, iweekly 편집위원을 역임하였으며 성도회계법인 부회장, 현재 선인장학재단 이사, 대한상사중재원 중재인, 비즈니스 워치 금융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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