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내커

왜 대학에 가야만 하나?

  오늘날 한국인들은 생의 주요 시기를 대학입학에 얽매어 산다. 마음껏 뛰어 놀아야하는 어린시절부터 대입 예비준비 스트레스에 시달리다, 어른이 되어서는 사교육비 지출로 휘청거린다. 가정파탄 위험이나  자식이 비행청소년이 될 위험을 무릅쓰고 이산가족이 되는 것도 자식을 좋은 대학에 보내려는 안간힘이다. 대학생이 등록금을 마련하려 위험한 아르바이트를 하다가 목숨을 잃는 비극도 그 “대학” 때문이다.

  대학진학률이 무려 85%에 달하니 수요·공급 원리로 보아 대학등록금이 세계에서 제일 비싼 것도 이상한 일이 아니다. 지연, 학맥, 교파를 중시하는 연고주의(nepotism)로 멍든 한국사회에서 등록금이 더 비싸다고 자식을 더 좋은 대학에 보내지 않을 학부모는 거의 없을 것이다. 미국 대학등록금이 더 비싼 것 같지만, 대다수 학생들이 다양한 장학금 혜택을 받는 사실을 감안하면 우리나라가 훨씬 비싸다. 
  그 비싼 학비를 내고도 대학에 가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하는 까닭은 무엇인가? 한마디로 단순노동 내지 “남이 하기 싫어하는 일”의 임금이 국민소득 수준에 비하여 턱없이 낮기 때문이다. ‘11년 현재 우리나라의 최저 임금은 시간 당 4,500원 안팎인데, 하루 10시간씩 20일을 일하면 한 달에 얼마를 벌 수 있는가? 집세 등 생활비를 감안하면 그저 하루하루 연명하기에도 벅찬, 이들에게 앞 날이 보일리 없다.

  세계 경제의 성장과 발달과정을 보면 열심히 일하는 사람 누구에게나 신분이동의 기회가 주어지는 사회에서 눈부신 경제발전을 구가하였다. 절대빈곤상태를 지나면 남이 하기 싫은 일의 임금이 급격히 높아지면서 사회도 안정되는 것이 선진공업국들의 경험이다. 서로 하고 싶어하는 고상한 일은 성취감 내지 지적 욕구를 충족시켜 일하는 그 자체가 보람이며 보상을 받는 셈이다. 과거 미국이 “기회의 나라”라고 불린 것은 (남이 하기 싫어 하지만 보수는 높은) 막노동이라도 열심히 하면 더 높은 계층으로 이동할 수 있는 가능성 때문이다.

  유럽의 한 예를 들어보자. 스웨덴에서는 시간당 임금이 약 50,000원이고 인도에서는 그 1/50 정도인 약 1,000원 내외라고 한다. 만약, 스웨덴에서 인도의 값싸고 수준 높은 인력을 받아들이면 스웨덴 기업의 경쟁력은 순식간에 향상된다. 그런데도 스웨덴은 타국 근로자의 유입을 철저히 막아 소위 허드렛일에 대한 임금하락을 예방하고 있다. 임금격차가 크게 벌어지는 사회에서는 빈부격차가 심화되어 갈등과 대립이 내연되고 결국 내수기반도 흔들리게 된다. 스웨덴은 자국 근로자를 보호하면서 사회안전망도 튼튼히 하고,  소비수요의 안정도 도모하고 있는 셈이다.

  변화무쌍한 미래사회에서는 누구라도 경쟁에서 탈락할 위험이 있는데, 허드렛일의 임금이 아주 낮은 사회에서는 승자와 패자 사이에 완충지대가 없어진다. 막일이라도 열심히 하면 누구나 생계안정과 저축을 통하여 다시 일어설 수 있을 때 완충지대가 있다고 할 수 있다. 지금 우리나라 현실은 불시에 직장을 잃은 중장년들이 저임금의 막일을 찾으려고 해도 외국인 노동자들이 다 차지하여 갈 곳이 없다. 이렇듯 재기의 기회가 바늘귀보다 더 작은 환경이 이어지면, 물불가리지 않은 막장경쟁이 기승을 부리게 되어 사회가 피폐해지게 될 수 밖에 없다.
  남이 하기 싫은 일을 하고 싶어 하거나 해야 하는 특별한 계층의 애국자가 있다고 착각하는 경우도 있다. 3D 기피증후군이라는 어려운 용어를 써 가며 “한국×들은 배만 좀 부르면 일을 안 하려한다.”며 개탄하는 어리둥절한 말을 하는 인사들이 있다. 도대체 그 얼마 되지 않는 돈을 받고 추운겨울 캄캄한 새벽 첫차를 타고 나가 하는 교실청소를 취미로 삼는 미화원이 그 얼마나 되겠는가? 무더운 여름, 숨이 탁탁 막히는 배 밑에 들어가 뜨거운 쇠붙이기를 하고 싶어서 안달이 난 용접공이 어디 있는가? 

  비싼 등록금을 내고도 모두 다 대학에 가려고 하는 까닭은 무슨 거창한 뜻이 있기 때문이 아니다. 그렇지 않으면 살아남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대학에 가지 않아도 열심히 일하면 살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어야 빈부격차, 갈등과 대립 같은 사회불안을 누그러트릴 수 있다. 그리고 높은 대학진학률에 따르는 막대한 비효율도 막을 수 있다. 미래 언젠가 큰 장인(匠人)이 될 큰 그릇이 그저 아무 대학이라도 진학하여야만 하는 이 안타까운 풍토를 냉정하게 바라보자.  

* 관련 글들은 네이버블로그에 정리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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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권감독원에서 증권제도연구실장, 조사부장, 조사연구국장 등을 역임하였다. 미시간 주립대 객원연구원, 이코노미스트, iweekly 편집위원을 역임하였으며 성도회계법인 부회장, 현재 선인장학재단 이사, 대한상사중재원 중재인, 비즈니스 워치 금융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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