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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장과 분배의 허실

  우리나라에서 성장과 분배에 관한 논쟁만큼 불필요하면서 줄기차게 계속되는 논쟁도 없을 것이다. 조금만 생각하면 성장과 분배는 상반된 것이 아니고 상호의존관계에 있음을 금방 알 수 있다. 나눌 것을 만들어내야 나눌 수 있고, 나누어야만 소비수요가 창출되어 생산도 다시 활성화되는 인과관계에 있다.

  경제 순환과정에서 성장에 따른 공급능력과 분배에 따른 유효수요는 서로 맞물려 돌아가는 톱니바퀴와 같다. 어느 한 쪽에 문제가 있으면 다른 한 쪽도 따라서 문제가 생기기 마련이다. 생산을 늘리는 성장은 경제활동의 중간목표이며,  효용을 크게 하는 분배는 인간의 삶을 풍요롭게 하기에 모든 경제생활의 최종목표가 된다. 최종목표와 중간목표가 어찌 다를 수가 있겠는가?

  사이비 성장론자 중에는 파이를 키워야 한다며, 생산요소시장에 개입하여 시장을 억누르거나 끌어당기는 것이 마치 성장을 위한 일인 것처럼 착각하는 경우도 흔하다. 금리와 환율, 임금 등의 생산요소를 보다 싼 값으로 공급할 경우 수출단가가 줄어드는 등 일시적으로 반짝 효과는 볼 수 있다. 그러나 장기적으로는 시장이 왜곡되어 더 큰 부작용이 나타나고 기업이 기술개발을 등한히 하게 되어 성장잠재력을 저해하게 된다.

  반대로 어설픈 분배론자는 생산성을 초과하는 고임금을 분배의 정의인 것처럼 생각하고 무턱대고 임금인상을 요구하는 모습도 보이고 있다. 어떤 기업이고 생산성 이상의 임금을 분배하다 보면 결국 계속기업으로서 가치가 불투명해짐으로 장기적으로 일자리가 없어지는 더 큰 재앙이 초래되기 쉽다.

  성장위주의 정책이 오히려 성장잠재력을 해치고 분배 위주의 투쟁이 오히려 분배를 해칠 수 있다는 이야기다. 여기서 경제적 후생 즉 효용은 주관적인 것이므로 수치로 나타낼 수 없지만 성장은 통계적 수치로 나타낼 수 있어 전시효과를 중시하는 사람들의 경우 분배의 중요성보다는 성장 수치에 매달리기 쉽다.
  
  그런데 성장과 분배 논쟁의 밑바닥을 들여다보면 대부분 1차 분배와 2차 분배를 혼동하는 데서 비롯된다.

  1차 분배는 토지 노동 자본 같은 생산요소들이 부가가치 창출에 기여하는 대가로 지불되는 가격이다. 1차 분배가 외부개입이 없는 경쟁적 시장에서 이행될 때 효율적 자원배분을 가져오고 생산성이 향상되는데 이것이 바로 시장경제의 축복이다. 생산성 즉 능력에 따라 1차 분배가 이루어지므로 소득불균등은 불가피하게 발생하는데, 합리적 불균등이 오히려 경제적 동기를 유발하여 생산능력도 확충된다. 생산능력 증대야 말로 경제적 약자를 도울 수 있는 사회적 능력을 증대시키는 지름길이다.

  2차 분배는 조세, 사회보장기구, 자선단체 등에 의한 보정적 분배다. 그 경제적 순기능은 ①소비수요 안정을 통하여 재생산이 촉진될 수 있고, ②빈곤선(poverty line)을 완화하여 사회적 갈등을 해소하고 ③불확실성이 커지는 사회에서「누구나 자칫하면 경제적으로 추락할 수 있는 위험」에 대한 보험기능을 한다. ④경쟁에서 탈락하거나 경쟁력을 상실할 경우의 불안감을 줄여 과잉경쟁, 부당경쟁을 예방하는 효과가 있다.

  그러나 (과잉) 사회안전망은 공짜 심리를 유발하여 가난에서 벗어날 의지를 상실하게 하여, 삶의 근거를 뿌리째 흔들리게 할 수도 있다. (아무런 의욕도 희망도 없이 그저 동물적 모습을 보이는 미국의 일부  도시 빈민들의 모습이 그렇다.) 이와 반대로 가파른 누진세 등 2차 분배를  위한 부담이 과중하면 근로의욕, 기업가정신을 감퇴시켜 생산성을 떨어트리는 부작용이 나타날 수도 있다.

  시장기능이 발달하여 1차 분배가 합리적으로 잘되는 나라일수록 제2차 분배도 활발한 현상이 뚜렷이 나타나고 있다. 상속세 폐지를 반대하고 자기 재산의 90%를 기부한 워렌 버핏을 비롯한 미국의 부자들과 함께 스웨덴과 독일 등 서유럽의 경우가 그렇다. 페이스북 창안자 마크 저커버그는 약관의 나이에 천문학적 규모인 재산의 절반을 기부하겠다고 이미 서약하였다.

  그와 반대로 빈부격차가 극심한 남미 국가들의 경우 기부문화가 형성되지 못하고 있다. 열심히 일하고 저축한 사람들은 사회전체에 대한 애정과 배려를 크게 가지지만, 그럭저럭 큰돈을 번 사람들일수록 더 인색한 천민자본주의 행태가 나타나고 있다.

  나의모습은 과연 어떠한가? 그리고 우리 사회의 모습은 어떠한가?

                                                                        brightnew@hanmail.net

증권감독원에서 증권제도연구실장, 조사부장, 조사연구국장 등을 역임하였다. 미시간 주립대 객원연구원, 이코노미스트, iweekly 편집위원을 역임하였으며 성도회계법인 부회장, 현재 선인장학재단 이사, 대한상사중재원 중재인, 비즈니스 워치 금융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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